장인열전(1)-多利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4-09-25    조회 : 5230

장인은 원래 목수를 가리키는 말에서 출발하여 특수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그 종류는 『경국대전』이나 『육전조례』에 실린 것이 100가지를 넘는다. 그들은 각 관서에 배속되어 왕실이나 국가의 필요에 따라 물건을 제작하였다. 그들은 주문대로 공작에 임했을 뿐 스스로의 발상에 의해서 창의적인 작품을 자유롭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들의 신분은 낮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대부의 눈으로 보면 장인들이 하는 ‘짓’은 천기이고 어쩌다 양반 계급의 사람이 그림에 능하다 해도 그것을 예술로 보지 않고 ‘소기’라고 하여 자랑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교에 젖은 안목으로 그들을 보았을 때 잡직으로 분류되었고 품계로는 오품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가장 필요성을 느끼던 회화 분야에서도 “화공은 천한 것들이니, 직품은 오품에 한한다”(『세조실록』)라고 하였고 그들은‘작직한품지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양반 계급과 동렬에 설 수 없었다.
신분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앞으로 장인 몇 사람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 다리(多利)
1971년 공주 송산리에서 한 고분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놀랍게도 백제 제25대 무녕왕의 능이었다.
무녕왕릉의 지석과 능자리 땅을 싸다는 매지권이 함께 매장되어 있어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한국에서 삼국시대 고분이 수없이 많이 발굴 조사되었지만 피장자를 밝힐 수 있는 근거가 출토된 고분은 하나도 없었는데, 이 고분에서는 피장자를 밝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명문이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 명문은 “경자년 2월 다리작 대부인분 이백삼십주이”라는 17자가 은제팔지 안쪽에 새겨져 있었다. 이 명문은 매우 중요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어서 적지 않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먼저 이 내용을 해석하면 ‘경자년 2월에 다리가 만든 대부인의 팔찌고, 무게는 230주다’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다루려는 부분은 이 팔찌를 만든 ‘다리’라는 장인에 관해서이지만 전체를 분석해보면, ‘경자년’은 무녕왕 20년(520)이고, ‘대부인’은 무녕왕비를 가리키는 말이고, ‘이백삼십주’는 이 팔찌의 무게다.

이 은팔찌를 만들 장인 다리는 물론 백제인이다. 당시 공작물에 작자의 이름을 새기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고, 특히 신라시대 이전의 작품에서는 거의 볼 수 없어서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다리’라는 장인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중대한 문제가 일본 법륭사 금당의 석가삼존상의 작자로 알려져 있는 ‘도리’이다. 일본에서는 도리를 중국에서 귀화한 사마달의 아들 다수내의 아들로 보아서 결국 중국계 인물, 남양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일본인들 아이에서도 일본측 역사기록에 모순된 내용이 많아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가 있으나 중국의 귀화인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한편 최근에 한국의 학자들은 고구려사람 혹은 백제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는 좀 다른 각도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다리’ 식의 이름, 즉 이름 끝자가 ‘리(利)’자로 끝나는 이름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인명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때로는 발음이 같아서 ‘리(里)’자를 쓰기도 한다.
예를 들면, 고구려의 창조리, 신라 남산신성비의 가사리정리일리, 오작비의 일리, 영천청제비의 제술리, 감산사석불상의 아호리관초리고파리고로리수힐매리, 상원사동종의 휴도리 등이 있다. 이상에서 보면 사료의 부족으로 백제나 고구려의 예가 적으나 인명에 ‘利’자 혹은 ‘里’자가 붙는 풍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다리’와 ‘도리’는 같은 고구려사람, 혹은 백제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법륭사 금당 석가삼존상을 비롯하여 소위 ‘도리식’이라고 하는 불상의 상현좌의 양식이다.
  

이 양식은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의 본의리 요지에서 발견된 도제대좌의 양식과 흡사하다.
  

결국 ‘도리’라는 인물이 고구려보다도 백제사람 또는 그 후손이라고 생각되며 이 점은 백제와 일본과의 불교 전파 과정을 보아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된다.


(사진 1) 무령왕릉 출토 은제팔찌(왕비)
(사진 2) 법륭사 금당 석가여래 대좌
(사진 3) 백제불상 대좌
* 진홍섭, 『묵재한화』(대원사, 1999)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