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털어놓는 에밀레종 이야기(2) - 정양모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4-05-17    조회 : 5087
1963년 2월부터 그 해 말까지 당시 원자력연구소에서 고종건, 함인영 두 박사 팀이 삼국시대에서부터 통일신라(일부는 고려시대)까지의 우리나라 금동불상과 범종 등의 금속 유물을 중점적으로 조사한 일이 있었다. 이분들은 불상 등을 특수촬영(감마선 투과 촬영)하여 얻은 필름을 분석해서 주물을 만들기 위한 기본 소조(塑造)의 골조, 주물기술 등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고고학상의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 했다. 이 상세한 보고서는 『미술자료』(국립중앙박물관, 제 8․9호, 1963‧1964년)에 수록하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주물을 하기 위한 기본 골조는 매우 우수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日月冠)은 불신(佛身)의 주물 벽이 매우 얇아서 이렇게 얇은 주물이 당시에 어떻게 가능했는지 불가사의하다고 하였다. 또 용접 기술도 뛰어나고 주물에 기포(氣泡)가 없어 불신의 주물 벽이 얇아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것을 아울러 밝히고 있다.
이분들은 그때 성덕대왕신종도 촬영하였는데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종은 크기 때문에 불상들과 달리 종신(鐘身) 벽이 두껍고 장중하여야 하며, 매달아서 소리가 잘 나야 한다. 촬영 결과는 이 종이 완벽한 종이라는 것이다. 주물의 완벽성 이외에도 주물을 하기 위하여 만든 내외의 거푸집이 완벽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보신각종을 다시 만들 때의 기록영화를 본 일이 있다. 특수 용광로를 여러 개 만들고 이 용광로를 이용해서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넣는 장면은 가히 숭엄한 장관이었다.
우선 종의 기본은 소리가 잘 나야 하리라 생각된다. 소리가 잘 나기 위해서는 완성되고 난 다음에 주물에 기포가 없어야 될 것이다. 도자기도 치밀하게 완전히 자화(磁化)되어야만 소리가 곱고 외형도 아름답다. 속에 구멍이 숭숭 뚫리면 버석버석하는 소리가 날 것이다. 기포를 없애기 위해서는 합금비율 등 여러 가지 배려가 필요하고 쇳물을 여러 군데서 한꺼번에 일정하게 부어야 하며, 강한 압력을 주어서 공기를 모두 빼내 기포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그 당시부터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종소리가 나지 않아 스님이 애기를 시주로 받아 넣었더니 종소리가 잘 났다고 하였다. 이것은 여러 번 실험하고 난 연후에 갖은 정성을 다 들였더니 비로소 맑은 소리가 났다는 이야기일 것이고, 뼈 속에 있는 인 성분이 쇠를 녹이고 순화시키는 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가설이 있어서 생겨난 전설일 것이다(1997년부터 종에 대한 본격적이 조사로 종의 성분 분석결과 인은 검출되지 않았다).
25톤의 쇳물이 부어져 내리면 그 압력은 대단할 것이다. 그 압력에다가 기포를 없애기 위한 압력을 가하면 더욱 압력이 상승할 것이니 이를 견뎌낼 거푸집이 필요했을 것이며, 또 압력을 넣어 기포가 빠져 나오게 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였을 것이다(1998년 봄에 종의 무게를 정확하게 측정한 결과 19톤이었다).
옛날 언제 생긴 것인지 모르나 이 종의 한 면에 갈려나간 자리가 길게 파여 있다. 이 종신을 갈아 마시면 수태를 한다든가 하는 어떤 효험이 있다는 속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갈려서 파인 자리가 마치 유리알같이 매끄럽다. 미세한 기포도 거의 발견되지 아니한다. 지금 종을 그대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렇게 완벽한 주물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당시 조사자들은 말하였다.
종을 거는 핵심인 철봉을 옛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철봉이 길어 잘라냈는데 황 실장은 그 단면을 보더니 이것은 여러 가지 합금해서 넓고 기다란 판을 만들고 그 판을 단조(鍛造)로 때리면서 말아서 철봉을 만든 것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철봉이 강하기만 하면 부러지고 유영ㄴ하기만 하면 휘기 때문에 강하고 유연한 것을 합금과 단조로 절묘하게 조절하였기 때문에 휘지도 부러지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종은 때려야 소리가 난다. 그리고 종소리는 아름다워야 한다. 종은 때려서 깨지지 않아야 할 것이며 때려서 우그러들어도 아니될 것이다. 소리 또한 너무 강해도 아니되고 너무 부드러워도 아니될 것이다. 종은 단조가 아닌 주물이기 때문에 끈끈하고 강한 맛이 조화를 이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끔 종을 어루만지면서 손바닥으로 때려 보면 이 종은 강하면서 마치 찰떡과 같이 찰지고 끈기가 있다고 늘 생각하였다.
얼마 전 보신각종을 새로 만들 때 이 성덕대왕신종을 재현하는 데 노력하였다고 전한다.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지금에 그보다 더 훌륭한 종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고 ‘재현’이었다. 음향학을 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종(특히 내부)의 형태, 종에 장식한 여러 가지 문양, 특히 한국종에 붙어 있는 음관 등이 음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撞座)의 위치에 따라 또한 음향이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덕대왕신종이 산과 같이 우뚝하면서 유연하고 아름다운 특유의 곡선을 지녔던 것은 소리를 아름답게 내기 위한 내면의 형태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얻어진 결과일 것이다.
또한 아직까지 그 기능에 대해서 밝혀지지 아니한 음관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데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종의 어깨 윗부분 가장자리의 연판문(蓮瓣文), 종 옆 위쪽의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 어깨띠(肩帶)와 연판문의 납작한 구유(九乳, 종의 위쪽에 있는 9개의 젖꼭지모양의 돌기물), 능(稜) 모양의 구연부와 역시 선이 굵은 보상당초문으로 된 구대(口帶, 구연부의 띠), 4개의 유곽 밑에 있는 4구(軀)의 비천상, 종머리 부분의 용뉴, 음관‧축(軸)과 같은 방향으로 유곽 사이의 밑에 있는 2개의 연판문 당좌, 이 반대 방향으로 유곽 사이의 밑에 있는 2개의 연판문 당좌, 이 반대 방향으로 있는 명문(銘文)들이 종합적으로 종소리의 울림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문양들은 불교적 의미를 지니면서 표면을 장식하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종의 울림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적당히 도드라지고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크기로 시문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당시의 과학과 예술의 혼연한 합일이고 조화였을 것이다. 당시의 과학자가 종의 기본 형태와 음관의 위치, 크기, 울림에 필요한 외부 장식의 위치, 장식의 높이 등을 제시하면, 그것이 썩 잘 어울리면서 아름답도록 예술가가 표면설계를 하는데 아마 많은 절충과 토의를 하였을 것이다. 창조란 그만큼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성덕대왕신종은 모든 부위가 기능이 있고 불교적 뜻이 있으면서 혼연히 하나가 되어 아름답다.
산사에 가서 종 치는 연유를 스님께 물으니, 지옥의 중생이 종소리를 듣고 모두 깨어나 극락으로 간다고 하였다. 그 청정하고 맑은 소리가 지옥에 떨어진 중생의 죄도 사하여 주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박물관에 달려 있는 신종을 쳐보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싶어함일 것이다. 에밀레종 소리를, 그 아름다운 희열을 모두에게 들려주어 청정한 마음을 잠시라도 지니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나라의 보물을 함부로 칠 수도 없고 또 수시로 치면 손상할 위험도 있다.
신관으로 이사 와서 종을 무사히 달아놓고 쳐보았다. 이 소리를 그대로 녹음해서 듣고 싶은 이에게 언제든지 들려줄 수 있도록 할 작정이었다. 6월 중순쯤 한밤 고요할 때 종을 치고 그 소리를 녹음하기로 하였다. 경주박물관이 산업도로변이라 대형 트럭이 질주하지 않는 틈을 타서 종을 친다. 여운이 끝없이 계속되어 그 여운이 끝나기 전에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또 다시 하고 하였다. 그러다가 요행히 여운이 끝날 때까지 차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면 문득 개골개골 맹꽁맹꽁 소리가 은근하면서 요란하다.
자동차 소음에만 신경을 쓰고 논에 그득히 모여 밤새 노래를 불러대는 개구리, 맹꽁이의 합창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다음날 전직원의 협조를 얻어 근처 논에 한 사람씩 작은 돌멩이를 들고 섰다가 꽝하고 종을 쳐 종소리의 여운이 끝날 때까지 개구리, 맹꽁이의 합창을 잠시 멈추도록 하였다. 밤새워 천신만고 끝에 개구리, 맹꽁이 소리가 끼어들지 아니한 맑은 소리를 수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언젠가 불국사의 월산(月山) 스님을 맞아 개구리, 맹꽁이 때문에 애를 먹었다고 하니까, 스님 말씀이 “아! 종소리에 개구리, 맹꽁이 소리가 들어가면 어떻습니까. 더 자연스럽죠” 한다.
성덕대왕신종을 만든 옛 스님네도 이런 마음으로 저 종을 만들었을 것이니, 저토록 의젓하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종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개구리 소리를 빼려고 기를 쓴 오늘의 안목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끝)

사진1) 주종 장면
사진2) 성덕대왕 타종 행사
사진3) 성덕대왕신종 구연부 하대

※ 정양모, 『너그러움과 해학』(학고재, 1998)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