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보상문화전-최순우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11-12    조회 : 5618
  

경주 임해전이라 하면 신라 문화가 한창 꽃피고 열매 맺던 시절, 신라 왕궁의 궁원으로서 한국 고대의 조원사(造園史)에서도 드물게 보는 아름다운 유적이다.
왕궁인 월성의 동북쪽 지척에 자리잡고 첨성대를 서족으로 바라보면서, 불과 수백 미터 동쪽에는 신라 최대의 불교 가람인 황룡사의 우람한 기와 지붕들과 2백여 척의 높은 목조 9층탑을 그림처럼 우러르던 터전이었다. 황룡사의 은은한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노을 비낀 황혼의 안압지 기슭을 거닐었을 신라 궁녀들의 비단 신발 맵시를 지금 연상해 보면 언뜻 아름답고 섬세하고 또 신비로운 신라인의 발소리가 이 보상화문전에 스며 있는 듯, 여기에서도 신라인들의 참멋을 알아 느낄 듯만 싶다.
지금도 그 안압지 서쪽 기슭 잔디밭을 터전으로 했던 임해전 건물 자리가 천년 풍우에 씻기면서 남아 있고, 이 보상화문전은 바로 이 임해전 옛터의 밭 가운데에서 해방 후 어느 농부의 손으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명작 중의 하나였다.
  

흙으로 구워 만든 이러한 전돌로 궁전이나 법당의 바닥을 깔아서 장식하는 격식은 이미 중국의 고대에 시작되었고, 당나라 때에는 매우 훌륭한 보상화무늬의 문양전이 만들어져서 지금도 당나라 옛터에는 그러한 유물이 발견되는 예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당나라의 보상화문전들은 그 굽는 기술과 더불어 거기에 새겨진 무늬가 고작 세련미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당나라 것에서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작품들이 오히려 신라 것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자랑스러움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특히 신라 것에 새겨진 보상화 무늬가 그 본고장인 당나라 형태에서 재빨리 벗어나서 상념적인 이 보상화의 신비로운 꿈을 그렇게까지 현실화해서 예술 작품의 경지에까지 승화시켜 놓은 신라인의 그윽한 불교적 신앙과 사색,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준 솜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 된다.
  


사진1) 안압지출토 보상화문전과 명문
사진2) 통일신라 보상화문전
사진3) 통일신라 누각문전 세부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