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산․ 성덕대왕신종과 인왕산 ․ 원각사종-강우방(이화여대 교수)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10-08    조회 : 4581
경주박물관에 있을 때는 우람한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과 다소곳한 선도산(仙桃山)이 내 마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종의 탄력 있는 곡선, 힘찬 용트림, 아름답고 은은한 소리가 내 몸과 마음의 일부가 되었다. 아침 일찍 반월성(半月城)의 새소리를 들으며 뫼와 같이  우뚝한 신종 앞에 서서 여러 상념에 묻히다가 문득 머리를 들면, 그 멀리 서편에 부드러운 능선의 선도산이 미소짓는다. 독립된 삼각형 모양의 우뚝한 산, 저녁에는 그 산 너머로 해가 지는데, 특히 여름의 일몰은 장관이였다. 여름 무더위가 절정에 오르고 있는 동안, 해는 선도산의 산정 모퉁이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해도 이글거리고 구름도 뭉게뭉게 천태만상이어서 매일 매일이 경이로움이었다. 산너머로 해가 사라지면서 어둠이 피어오른다. 죽음 저 너머로는 지금 이곳에서 넘어간 해가 아직도 빛을 발하는 또 다른 세계로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그 선도산의 정상에 아미타대불(阿彌陀大佛)이 서 있는지 모른다.
   만일 나의 오랜 경주 생활에서 신종과 선도산이 없었다면, 예술적 체험도 종교적 체험도 그리 깊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언제라도 책상 옆 창문으로 눈을 돌리면 늘 선도산 자체가 아미타여래가 되어 나에게 응답하곤 하였다.
종신(鍾身)의 첫머리에 김필해(金弼奚)는 이렇게 쓰고 있다.

지극히 완전한 진리는 온 누리를 싸고 있으므로 그 모양을 볼 수 없는 것이고, 진리의 소리는 온 누리에 차고 넘치는 까닭에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지극히 깊은 진리를 우리 중생들도 깨달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진리의 본보기로 가설(假設)하여 신종을 매어 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선도산과 신종이 모두 여래(如來)였다.
    경주에서 서울로 ―8세기에서 20세기로 돌입한 내 꼴은 마치 돈키오테와 같았다.
    옛 국립중앙박물관의 미술부에는 커다란 창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이번에도 그 앞에다 내 책상을 놓았다. 그 커다란 창문을 통해서는 우람한 인왕산(인왕산)이 액자 속에 넣은 듯 그 웅자(雄姿)함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산은 너무 가까이 있는 탓인지 경주에서처럼 낙조의 장관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늘 이산을 보면서 나는 겸재(謙齊)의 <仁王霽色圖>의 솜씨에 감탄하곤 했다. 만일 서울생활에서 이 산을 바라보는 즐거움마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든 산 하나를 만들어 놓았을런지도 모른다.
    중앙청으로 이사올 때, 파종(破鍾) 하나가 박물관 기록 카드에 등록되었는데 세조 때 만든 원각사종(원각사종, 1468년 제조)으로 지금은 박물관의 서편 뜰에 옮겨져 편히 쉬고 있다.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 통일신라의 기념비적 종이라면, 원각사종은 조선왕조의 기념비적인 종일 것이다. 두 종은 그 크기도 비슷하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나는 먼저 이 종을 찾곤 한다. 다시는 칠 수 없는 천수(天壽)를 다한 종― 종의 모양은 일그러지고 표면은 거칠며 용트림도 헤벌어졌으나, 보면 볼수록 그 덤덤한 모양이 백자 달항아리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두 종은 모양도 조성 연대도 다르건만 나는 그 둘을 똑같이 사랑한다. 양 극을 달리는 두 종을 보고 있노라면 닥치던 혼란, 착잡한 마음은 서서히 사라져 버리게 된다. 국력을 기울인 그 두 종 모두가 우리 민족의 원형(原型)이었기 때문이다. 석굴암대불(石窟庵大佛)과 운주사천불(雲住寺千佛) 두 가지가 역시 우리 민족의 원형이듯이. 그래서 이 두 가지 원형에 대하여 앞으로 만족할 만한 글을 쓰고 싶은 것이 나의 원대한 목표이다. 그 양식과 형식의 문제도 두 종을 통하여 완전히 풀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원각사종은 중국적 형태이지만, 양식은 얼마나 한국적인가.
    매미소리를 들으며 원각사종을 쓰다듬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보면 우람한 인왕산이 가히 위압적이다. 원각사종과 인왕산, 신종과 선도산은 모두 시대도 역사도 형태도 다르다. 그러나 이들을 둘러싼 곳의 환경은 같다. 나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미묘한 느낌에서 지극한 행복은 찾아도 좋을지 모르겠다.

※ 이글은 강우방 선생님의 『미의 순례』(예경, 1993)에서 발췌했습니다.
저서로는『圓融과 調和』,『한국불교의 사리장엄』,『한국 불교조각의 흐름』,『감로탱』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