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함께 한 사람들-예용해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06-06    조회 : 4799
승려인 의순은 전라도 무안 장씨로서 흔히 ‘초의 대사’로 불리는데 초의는 그의 법호이고 의순이 법명이다. 어려서 절로 들어가 고승 완호의 법을 받았으며 강진에 귀양갔던 정약용의 초당에서 글을 배워 부처님의 가르침은 말할 것도 없고 유교와 도교에 통달하였고 시와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나서 조선시대 말기의 이름난 유학자와 교분을 가진 훌륭한 ‘스님’이었는데 차로 말하자면 그때에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순조 28년인 1828년에 의순이 지은 『다신전』이나 그 다음으로 영조의 사위요 선비로서 멋을 알았던 홍석주의 청을 받아들여 지은 『동다송』은 다 같이 우리나라 차에 대한 성전과 같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차를 찬양하는 『동다송』가운데서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차가 중국 남녘에서 나는 차에 비겨 질이 떨어진다고 하였으나 차의 빛이나 향기나 맛이 조금도 차이가 없으며 또 중국 육안 지방에서 나는 차는 맛으로 꼽히고 몽산 지방의 차는 약효가 뛰어나다고 일컬었으나 우리 차는 그 두가지를 함께 겸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지리산 화개 골짜기에는 차나무가 40,50리에 걸쳐 자라니 우리나라 차밭으로는 가장 넓을 것인데, 그 골짜기 안에는 옥부대라는 언덕이 있고 그 아래에 칠불선원이라는 암자가 있어서 참선하는 스님들이 언제나 늙은 찻잎을 따서 뙤약볕에 말려 섶을 쳐서 불을 지펴 차솥의 물을 끓여 쑥나물 국처럼 고니 차의 빛깔은 툭지며 붉고, 맛은 쓰고 떫어서 세상에서 좋은 차를 어줍은 솜씨로 그르친다고 한탄했다. 그렇다면 차를 제대로 맛과 멋을 함께 갖추어 마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의순은 차를 마시는 데는 아홉 가지 어려움이 있고 네 가지 향내가 있어서 제대로 즐기기에는 그윽한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그 어려움의 첫째는 차를 다스리는 일이요, 둘째는 차를 가리는 것이요, 셋째는 물을 붓는 그릇의 선택이요, 넷째는 불을 지피는 일이요, 다섯째는 물의 질이요, 여섯째는 덖는 일이요, 일곱째는 가루를 만드는 것이요, 여덟째는 끓이는 일이요, 아홉째는 마시는 것이라 했다.
차를 마시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음은 차란 숭늉 마시듯이 마시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는 시사로서 거기에는 높은 안목의 범절이 따라야 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마음가짐이 깃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음일 것이다.
차의 어려움과 그것이 간직한 깊은 뜻과 거기에 따르는 범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딴자리를 빌어 해야겠으나 단순히 잎차를 달여 마시는 ‘차례’를 큰 줄기만 추려 적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맑은 찬물을 무쇠나 구리로 된 차솥에 알맞게 부어 화로에 피워둔 참나무 숯불 위에 얹어서 끓인다. 물끓는 소리가 처음에는 소나무 가지에 스치는 바람결과 같다가 이윽고 전나무에 빗방울이 튀듯이 후둑후둑 소리를 내며 들끓기 시작할 무렵에 차솥을 내려서 물의 온도가 섭씨 70도쯤으로 식었을 때에 따로 찻잎을 알맞은 분량만큼 덜어서 사기나 질로 구워진 찻주전자에 옮겨 부어서 차가 적당히 우러났을 때에 찻종에 따라 조금씩 혀 위로 굴리며 마신다.
차가 분량이 많으면 쓰고 적으면 싱거우며, 물이 너무 뜨거우면 찻잎이 익어서 산뜻한 맛이 가시고 물이 식으면 차맛이 설어서 제맛이 나지 않는다. 차를 제대로 알맞게 우려 마시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매우 어려워 말이나 글로 배우기보다는 손수 익히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것이다.
  
차에는 다섯 가지 맛이 두루 갖추어져 있고 그것을 마시면 마음이 맑아지고 건강에도 지극히 보탬이 된다고 일러온다. 그런데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갑자기 차를 즐기는 버릇이 시들어 깊은 산속에 있는 절의 스님들이나 얼마 안되는 선비들만이 간신히 차를 마시는 멋을 이어왔던 것은 우리나라의 물맛이 좋고 차의 생산이 극도로 제한되었던 일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이웃 중국이나 일본은 물과 흙이 드세어 들과 산에서 나는 물을 함부로 마실 수가 없어 꼭 끓여 마셔야 하는데 우리는 산과 물이 함께 아름다워 어디서나 맹물을 마실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는 달리 나라의 기틀을 유교로서 잡게 되면서 나라나 여염의 의식에서 차를 쓰는 일이 줄게 되고 이에 곁들여 그 시대의 납세는 현물로 바치게 되어 있었으니, 차가 나는 고장에서는 차를 토산물로 나라에 바쳐야 했으니 너무나 지나친 차의 공납을 감당키 어려웠던 백성들이 그 괴로움을 모면할 생각으로 차나무를 가꾸기보다는 뿌리째로 뽑아버려 수요에 앞서 공급이 결딴이 났으니 많은 사람들이 차를 즐길 수 있는 형편이란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차를 마시고 싶어도 차가 손쉽게 구해지지 않는 세월이 오래 쌓이고 보면 드디어는 차의 맛과 멋이 생활의 둘레에서 잊혀져가게 되는 것은 물이 높은 데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치와도 같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지난날에 차로 이름있던 고장의 따사롭고 빛이 알맞게 들며 싱그러운 바람이 스치는 산비탈에는 어디에나 향기로운 차나무가 무성하다. 조선시대와는 달리 공급에는 큰 문제가 없는데 탈이 있다면 무관심이 불러오는 수요의 엉성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차를 마셔야 할까? 정약용의 술을 즐기는 백성은 망하고 차를 즐기는 백성은 흥한다는 말이 차를 마셔야 하는 까닭에 대한 가장 손쉬운 그러면서 절실한 대답이 될 듯하다.
(『뿌리깊은 나무』, 1977년 3월)

※『차를 찾아서』(대원사,1997)에서 뽑아 실었습니다.
글을 쓴 예용해(1929~1995)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문화와 차 문화 등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의 공예와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데 힘썼습니다. 저서로는 『인간문화재』(1963년), 『이바구저바구』(1979년)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수필과 민속공예 조사보고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