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걸작, 보관을 쓴 미륵반가사유상-존 카터 코벨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05-16    조회 : 5351
  
한국 미륵불상의 아름다움을 중국이나 일본 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여준 것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또 하나의 금동미륵불이다.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한국미술 5천년전’의 주요 전시품목으로 선정돼 1979년 이래 2년에 걸쳐 미국 내 8곳의 도시를 순회전시하며, 2백만에 이르는 미국인 관객들로부터 찬탄을 받는 동안 이 미륵반가사유상은 박물관의 어두컴컴한 불교 조각실에 외로이 앉아 있었다. 역시 국보(78호)인 이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한 자리에 몇 년이나 앉아 있었음에도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해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따뜻한 눈길을 받는다면 외로울 리가 있겠는가). 이 미륵보살상은 진홍 벨벳 같은 천으로 뒤 배경을 세워주는 배려도 없이 그저 약간의 철책이 둘려 있을 뿐이다. 약 600년경 만들어진 이 미륵상은 애초엔 화려한 장식을 걸치고 연화대에 안치돼 있었을 것이다.
1957년 한국미술이 처음으로 미국에 해외전시됐을 때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두 미륵반가사유상은 모두 전시품목으로 선정되었다. 각각 93.5cm, 83.2cm 높이의 이 두 불상은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고대 유물이자 당대의 가장 큰 청동불이다. 당시 박물관장이던 김재원 박사를 만나 왜 위험천만하게도 두 미륵불 모두를 해외전시에 내보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 박사의 언급은 “그때 한국 박물관에 뭐가 있었나요. 그러니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건 모두 가져다 보여줄 수밖에요”라는 대답이었다. 오늘날은 다르다. 1970년대의 많은 발굴 결과, 기대를 넘어선 보물들이 다수 출토되어 거의 매주 새로운 발굴품이 선보였다. 이제 서로 닮은 두 미륵반가상 중 하나가 해외 전시중일 때 다른 하나는 서울 집에 앉아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미륵상이 머금고 있는 미소는 좀더 고풍스럽고 옷주름의 처리는 약간 뻣뻣한 듯한 것이 앞서 언급한 국보 83호 미륵불상보다 몇 년 앞선 듯하다.
고대 신라의 땅 안동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하는데 보존 상태는 아주 뛰어나다. 옷은 두 어께에서 뾰죽한 소매를 형성하며 신체 전부를 덮고 있다. 옷자락 밑으로 느껴지는 신체는 감각을 최소화시켰다.
불상은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아열대지역 인도로부터 받아들였지만 한반도에 와서는 유교적 분위기에 눌려 옷을 걸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짝을 이루는 93.5cm의 국보 83호 미륵불상은 83.2cm인 국보 78호 미륵불상과 거의 같은 크기다. 하지만 83호 미륵반가상은 목 아래와 팔뚝에 몇 개 주름 접힌 부분이 있을 뿐 78호 미륵반가상보다 더 나신이다. 허리 위 상체에는 아무것도 안 걸친 인도식 불상 모드인 것이다.
국보 78호 미륵반가사유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특별한 관을 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독자들은 5세기 신라금관에서 보았듯 당대의 정교한 금동세공술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금동세공 장인들은 불교 도입 이후 금관을 만들던 솜씨로 불상을 만들어내었다. 따라서 7세기 청동불상이나 목조불상이 다같이 정교한 금속보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놀랄 것 없이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국보 83호 삼산관미륵반가상도 애초에는 지금의 간단한 삼엽형 삼산관 위에 정교한 청동투조보관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이 미륵반가상의 사본으로 알려진 일본 고류지의 목조미륵불도 애초에는 머리에 청동관이 얹혀 있었음을 시사하는 구멍이 뚫려 있다.
장인은 그의 솜씨를 금속보관으로 과시해보이려 했던 것이다. 이 보관은 작은 탑 모양 장식을 지니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애초에는 이런 탑 장식이 3개 있었을 것이지만 그 동안 1개가 부러져 나갔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불교는 너무 억압된 나머지 그 상징의 대부분이 불행히도 망실되고 말았다. 그런데 78호 미륵반가상은 정교한 금속보관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집중되는 힘이 앞서의 미륵반가상(국보 83호)보다 덜하다.
 
 
 
 
 
 
 



  
어찌됐든 1m가 채 못 되는 두 미륵반가상을 보노라면 미륵신앙이 최고조에 달했을 시절, 한국의 절에 분명히 안치돼 있었을 커다란 미륵불상들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금속 예술품을 다루는 솜씨가 귀신 같았던 신라 장인들은 이번엔 젊고, 아름답고, 정감어린 보살로서 미륵불상을 만들어내는 데 온 열정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라의 젊은 귀족 같은 미륵, 실재 싯다르타 왕자였던 석가모니를 연상케 하는 불상이 제조되기에 이르렀다. 젊고, 날씬하고, 몸에는 인도왕자처럼 보이는 보석 장식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옷을 걸친 채 수인(手印) 같은 것 없이 생각에 잠겨 앉아 있는 미륵인 것이다. 한국의 미륵불상 가운데 이것이 절정에 이른 수준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