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해인사편-정시한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03-30    조회 : 4168
병인년(丙寅年 : 1686) 7일 가끔 맑았다가 흐림

  
아침에 인현과 함께 먼저 법당을 구경하고 다음에 판전(板殿), 진상전(眞常殿), 해행전(解行殿) 등을 구경하였다. 당의 섬돌이 높고 견고한 것과 불전이 장엄하고 기교한 것과 불상이 높고 엄숙한 것이 마치 하늘의 조화인 듯하고 인력(人力)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듯했다. 당(唐) 나라 덕종(德宗) 18년이 신라(新羅) 애장대왕(哀莊大王) 3년인데 이때에 승려 순응(順應)과 이정(利貞) 두 사람이 창건했다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900여 년이 된 셈인데 뚜렷한 모습이 마치 새로 지은 듯했다. 후세의 인재가 옛 사람보다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 알겠다. 판전(板殿)이 60칸인데 경판(經板)을 쌓아 놓은 것이 질서가 매우 정연하여 보는 자가 자연적으로 마음이 숙연하였다. 다만 지키는 사람이 없다보니 사람들과 승려나 속인과 구경을 다니는 사람들이 날마다 수백 명인데 가끔 마음대로 목판을 뽑아다가 책상 위에다 흩뜨러놓기도 하고 더러는 목판을 훼손시키기도 하니 이점이 안타까웠다.
  
아침을 먹은 뒤에 상헌(尙憲)과 함께 석조(石槽)를 두루 보고 홍제암(弘濟庵)에 있는 사명당(泗溟堂)으로 가서 먼저 유정(惟政)의 비석을 보고 다음에 영정을 보았다. 진품이 아닌 듯하여 물어 보니 “신해년 경에 진본(眞本)은 도난당하고 다시 본떠서 그려 놓았는데 뒤에 들어보니 부산 왜관에서 팔렸다고 하더라.”고 하였다.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다시 학사대(學士臺)로 올라가 한동안 둘러 보고 도로 상헌(尙憲)의 방으로 와서 본사의 사적과 세조대왕(世祖大王) 때에 인출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책 한 권을 보았는데, 장정과 인쇄 상태와 자획이 정교하고 조금도 상한 곳이 없었으나 글 뜻을 알지 못했다. 또 세조대왕이 본사를 완호(完護)한 자필 문자와 고려 왕의 수적을 만져 보고 한동안 읽어 본 뒤에 또 상헌(尙憲), 인현(印玄), 정몌(井袂)와 함께 무설당(無設堂)과 만월대(滿月臺)를 보고 함허당(涵虛堂)을 지나 지족암(知足菴)에 이르러서 잠시 쉬었다가 또 희랑굴(希朗窟)에 이르러서 희랑대(希朗臺)에 올라가 한동안 앉아 있다가 혼자서 백련암(白蓮菴)에 올라가니 암자가 가야산 중턱에 있었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종장인 혜능(惠能)은 나이가 72세였는데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학도인 태보(太普), 각총(覺聰)보헌(寶憲)이 모두 재주가 있는 듯하여 사랑스러웠다. 또 백억달(白億達)이란 자가 있는데 나이는 17세였고 침착하여 마음에 들었다.
  
밤에 종사(宗師)와 억달과 함께 유숙하였다. 별채의 창문 앞에 바위가 서 있는데 높이는 3,4장 쯤 되었다. 특이하게 생겨서 볼만 했다. 암자 뒤에 석벽이 병풍처럼 빙 둘러 있고 암자 앞에 석봉이 숲처럼 서 있었다. 실로 가야산에서 구경할 만한 곳이었다. 석양이 되자 주지 인현(印玄)과 승통 윤일(允一)과 노승 정익(淨翼)과 상헌(尙憲) 등이 방문하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