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귀한 비천, 상원사종-존 카터 코벨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03-01    조회 : 5110
  

모든 사람들에게 에밀레종, 더 정확하게 부르면 종에 새겨진 대로 ‘성덕대왕신종’은 고대 종들 가운데 가장 걸작품으로 인식된다. 그것말고도 신라종 3구는 너무 아름다워 당연히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3구 중에 실상사종은 앞서 논했다. 그러나 예술애호가들에게는 고풍의 평면 조각에서 둥근 삼면체 조각으로 옮아가는 결정적 순간의 조각, 그리고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정신적 느낌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곡선의 우아함보다는 활력이 강조되며 세속화되는 기점의 작품을 본다는 사실 때문에 또 하나의 오래된 신라종-상원사종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런 기점의 결정적 순간을 나타내는 종이 아직도 종루에 걸려 있는 강원도 오대상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이다. 이 종에는 신라 성덕대왕 24년, 즉 725년에 주조되었음을 나타내는 명문이 있어 분명한 연대를 말해준다.
이 종은 1469년 현재의 상원사로 옮겨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데 이 시기는 콜럼부스가 “서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동쪽에 가 닿을 것”이란 논리를 확신하기도 전이다. 그 전에 상원사종은 안동 남문에 걸려 있었다. 다른 종이 발견되지 않는 한 이 종은 따라서 한국불교 범종(梵鐘)의 최고 시조와 같다. 이보다 더 오랜 종은 기록에 49만 근(12만 근 기록의 에밀레종은 19톤이 나간다. 이 같은 비례로 따지면 현재 도량 단위로 80톤이 된다)나가는 경주 황룡사대종이 있었으나 사라졌다. 상원사종은 무게가 약 330관(약 1.3톤) 나간다. 이 종이 상원사로 옮겨진 것은 조선 초 세조의 어명에 따른 것이었다. 머리 위로 가벼운 옷자락을 날리고 있는 두 비천상을 세조도 좋아했던 나머지 그런 명을 내렸을까? 세조는 1455년 왕위를 찬탈해 왕좌에 오른 인물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종을 관리할 수 있었다.
 
 
  
 
 
  

  
어쨌든 하늘을 날고 있는 두 비천상(산스크리트어로 Apsaras)은 반 무릎 꿇은 자세인데 아랫다리가 상당히 부자연스러우면서도 고풍스럽게 바깥쪽으로 뻗쳐 있다. 그러나 이 다리 모양은 전체 구성에 일종의 리듬감을 더해준다. 왼쪽의 비천은 공후(箜篌)를 켜고 있는데 악기의 윗부분이 뺨을 치받히듯 높이 솟아 있다. 오른쪽 비천은 길고 가느다란 악기 생(笙)을 입에 대고 불고 있다. 이 또한 앞에서 마주볼 때 왼쪽을 향해 상당한 예각을 이루며 악기를 틀어잡고 있다. 다같이 악기를 다루고 있는 비천상은 뚜렷하게 두드러진 부조 조각이며, 전체 선이 보는 이에게 무의식적으로 일종의 긴장감을 준다. 비천상의 팔과 다리, 위쪽을 향하고 있는 발바닥 또한 아주 약간 부자연스럽게 비틀린 듯한 긴장을 더해준다. 그렇긴 해도 이들은 주악(奏樂) 비천상의 위쪽으로 너울거리며 솟아오르는 옷자락의 침착한 곡선과 상대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고대 상원사종의 비천상은 긴장감과 평화로운 선의 율동이 조화되어 주목하게 한다. 구름 무늬는 경주 성덕대왕신종보다는 덜 세련됐으며 두 비천상은 따로 떨어진 독립 비천이 아니라 분명히 2인조의 한쌍인 것으로 보인다. 성덕대왕신종보다 훨씬 작은 높이 1.67m의 상원사종에서 2인조 비천상은 상대적으로 적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상원사종과 성덕대왕신종은 두 종 모두에 분명히 새겨져 있는 연대에 따라 50년의 세월 차가 난다. 유럽 식으로 말하자면  신라종의 주조는 ‘초기 고딕’ 양식에서 ‘완숙 고딕’ 양식으로 옮아간 것이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지기 이전의 예술 형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원사종은 디자인과 주조에 관한한 한국예술의 ‘비조’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거론된 것 가운데 빠진 사실 하나는 서양 종과 극동 종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 종은 종 안쪽에서 종벽을 치는 추가 있는데 아시아의 종은 바깥쪽에서 큰 종목으로 종을 쳐 소리낸다. 이런 방식은 종의 안벽을 때릴 때 나는 쇠소리 대신 ‘울려 퍼지는’ 음질을 낸다. 따라서 종의 무늬는 종목이 와서 닿는 부분을 특히 보강하게 돼 있다. 보통은 커다란 화판무늬로 종목이 닿는 당좌(撞座)를 꾸민다. ‘쿵’하고 종목이 와서 칠 때의 충격을 받아들이기 위해 보강된 당좌 화판은 비천상 부조의 정반대편, 말하자면 종의 몸통에서 두번째와 네번째 위치를 점하는 자리에 놓여진다. 후대 종에 와서는 비천상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대신 당좌의 꽃 무늬가 더 커지며 중요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