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좌의 <송하보월도>-근원 김용준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01-26    조회 : 6320
......<송화보월도>는 길이 약 1.9m, 너비 약 80cm의 대작이다. 바탕은 견본 담채화이며, 화면 중심부에 층암 절벽에 붙어 비바람과 싸우면서 기구하게 자라난 거창한 소나무가 있다. 나무는 모진 바람에 불리면서도 거센 자세로 버티고 있다. 우편 아래는 먼 산들이 보이고 소년을 데리고 달밤을 거니는 한 사람의 인물이 있다. 인물의 옷자락은 세찬 바람에 휘날린다. 화면 좌편에는 꺼먼 절벽이 튼튼히 서 있고, 또 한 그루의 솔가지가 조금 보인다. 화면 좌편 위에는 둥근 달을 그렸다. 달은 연분(鉛粉)으로 그렸던 것인지 지금 사진으로 보아서는 변색한 연분처럼 검은 빛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나무의 크기가 화면 길이의 약 이분의 일에 해당하고 먼 산을 극히 낮게 처리하였으며, 인물들도 바짝 줄이어 작게 처리함으로써 화면세계는 무한히 넓은 공간을 연상케 한다.
  
이 작품을 구상함에 앞서 작가 이상좌는 야경을 염두에 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야경으로 될 만한 조건으로서 달을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없다. 달이란 낮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어서 달이 있다는 그것만으로는 야경으로 성립되지는 못한다. 그러면 야경을 조형적으로 처리함에는 어떠한 조건들이 필요한가. 흔히 이렇게들 생각하기 쉽다. 즉 그것은 우선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야경이란 먼저 주위가 어두워야 하며 어두움을 통하여 달빛에 비치는 자연과 인간들이 몽롱하게 불명확한 윤곽으로 묘사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이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 느끼는 야경의 필수적 조건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러나 그렇게 묘사 된 화폭들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갖다 주겠는가. 복잡한 색채의 변화와 광선에 의한 명암 변화로써 처리하게 되는 유화라면 또 모르되, 조선화가 가지는 재료적 특수성은 그러한 방법으로 야경을 처리한다는 것은 더 많은 연구를 거칠 것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조선화의 역사적 발전은 재료의 제약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자연을 관찰하는 관점 여하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밤을 조형(造型)한다는 것과 어두운 것을 그린다는 것과에는 적지 않은 차이점이 있다. ‘어두움’을 직접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자연과학적 방법이며, ‘밤’을 조형한다는 것은 예술적 창조의 방법이다. 즉 과학적 사유와 예술적 창조의 방법이다. 과학적 사유와 예술적 사유와의 분기점은 여기서부터 나타난다.
우리의 선조들은 객관 사물을 감성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예술적 형상을 통하여 개괄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유산들은 객관세계가 그대로 화면에 옮겨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을 통하여 객관세계를 정리하고 그 정수만을 뽑아내어 화면세계를 창조하였던 것이다. (여기 주관을 통한다는 말은 객관세계를 부인하는 주관주의적 주관이 아님은 물론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작가가 노린 목적이 다만 어둡다는 분위기 그것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요해(了解:깨달아 알아들음)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야경을 처리한 어떠한 옛 작품에서도 ‘어두움‘이라는 기분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처리할 것인가 하는, 그와 같은 피상적인 문제에만 머리를 쓴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밤에 있은 사실‘ ’밤에 느낀 감정‘ 바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밤‘을 택하는 것이며, ’화면에서 밤이란 캄캄한 것이다‘하는 속류들의 논리는 조선화에서 적용될 수 없다. 화면에서의 밤은 캄캄한 것이 되기보다는 캄캄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밤은 검게 처리할 수도 있고 검지 않게 처리할 수도 있다. 가사(假使:가령) 화면이 검지 않게 처리되었을 경우에도 어둡게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어떠한 방법이 적용되든 그것은 작가의 자의(自意)에 속한다. 그러나 야경을 취급한 작품이라면 밝게 그렸을지라도 우선 어둡게 느껴져야 하며 또 어둡게 느껴진다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무엇을 왜 그리려 하였느냐 하는 문제가 화면을 통하여 설명되어야 한다. 때문에 야경을 그리는 목적도 결국은 어두움만을 목표로 그리는 것은 아니다. 어두움을 통하여 본 그 무엇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 무엇이 중요한 것이며, 어두움이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무엇이 뚜렷하게 표현될 때 어두움이란 따라서 해결되는 것이다. 조선화의 야경 처리에서 왕왕 사건의 전말을 두드러지게 하면서 ꡐ어둡게ꡑ하는 데 주의를 덜 돌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상좌의 <송하보월도>는 이와 같은 좋은 실례의 하나다. 희멀건 달이 중천에 솟아 있고 초가을 밤바람이 꽤 요란하게 설레이는 분위기 속에서 기이하게 서 있는 소나무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한 인물이 거닐고 있다. 화면은 달과 소나무와 인물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게 한다. 그러나 달은 주제를 설명하여 주기 위한 보조역이며, 인물도 소나무에 비하면 오히려 부차적 위치밖에 못 가진다. 학포 이상좌는 이 화면을 통하여 뚜렷하게 소나무에 그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소나무는 누가 보든지 거센 바람과 싸우면서 수십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험난한 과거를 말하여 주는 듯하다. 가파른 언덕 바위틈에 겨우 붙어서 맞부딪치는 바람결에 이리저리 쏠리면서 혹은 꺾이기도 하고 혹은 휘기도 하면서, 그러나 소나무는 물러설 줄 모르고 악을 쓰며 자라 왔다. 소나무는 죽지 않았으며 외외(巍巍:풍격이 높고 뛰어난)한 모습을 자랑한다. “누가 이 기개를 꺾을 자가 있겠는가.” 소나무는 그렇게 말하는 것도 같다.
사시장청(四時長靑) 푸른빛을 가실 줄 모르는 송죽의 절개라는 말과 같이, 이상좌는 간고(艱苦)한 시련을 통하여서도 불굴의 투지를 보이는 그 장쾌한 기질을 소나무를 통하여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얼마 전에 성삼문(成三問)은 다음과 같은 시조를 쓰지 않았던가!

이 몸이 죽어 죽어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蓬萊山) 상상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이상좌는 그가 이 세상에서는 가장 불행한 종놈이란 신분을 타고났고, 종이란 압박자들로부터 갖은 학대와 굴욕 속에서 견디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한 인간 최하층의 신분인 것이다. 이와 같은 불우한 처지에서 그는 그가 가진 기술 역량을 다 바쳐, 세상의 모든 불우한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간악한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간고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꿋꿋이 자기의 절조(節操)를 굽힐 줄 모르는 그러한 사람들을 바로 하나의 소나무를 빌어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였던 것이다. 아니 이 소나무는 바로 이상좌 그 자신을 상징하였는지도 모른다. 이상좌는 자기의 기도한 바를 보다 선명하게 보이기 위하여 나무 아래를 거니는 사람을 배치하고 있다. 여기 나오는 인물을 비록 선비이기는 하나 몹시 불우한 인상을 준다. (혹시 복잡하던 당시 사회의 반영이나 아니었을까) 설레이는 바람을 묘사한 것은 그려진 인물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대변하여 주기 위해서인가. 인물은 기구한 운명을 뚫고도 외외하게 하늘을 치뚫으며 솟아오른 소나무를 바라본다. 그는 무엇인지 호소하는 것과도 같다. 소나무는 인물에 대하여 마치도 승리에 대한 신심을 가르쳐 주는 태도와도 같다.
이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먼저 이 작품이 가지는 삼엄한 분위기에 놀라게 된다. 화면을 싸고도는 이 삼엄한 분위기는 달이 있건 없건, 바람이 설레이는 달밤을 연상케 하고도 남는다. 주제를 뚜렷하게 살리면서 화면에 공간과 여백을 설정하는 것은 관자(觀者)에게 여운을 느끼게 하는 것이며, 달밤을 묘사하는데 화면을 어둡게 하지 않고 사물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똑똑히 묘사함으로써 주제 내용을 선명하게 인식토록 하는 것 ― 이와 같은 것은 조선화 조형상의 전통적 처리방법이며 높은 예술적 표현을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 된다.
이상좌의 이 작품은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 ― 바람과 달과 하늘과 사람과 먼산과 바위들과 절벽과 나무들과,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한테 어울려서 화면의 중심을 처리하고 있는 높다란 소나무로 집중된다. 그리하여 화면은 보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커다란 기운생동(氣運生動)으로 충만되어 있다.
이 작품은 얼른 보아 치밀한 묘사로 그린 세화(細畵)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은 세화가 아니며, 산과 나무둥치 같은 것은 이상좌의 독특한 소방(疏放:너그럽고 시원스러움)하고도 대담한 필치로 처리하였고, 솔잎과 인물묘사는 비교적 치밀한 필치로 다듬고 있다......

그림 위) 전(傳) 이상좌/송하보월도/15세기말/견본담채/197×82.2/국립중앙박물관소장
그림 아래) 윗 그림의 부분

<조선시대 회화와 화가들>(근원 김용준 저,열화당)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