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소반-아사카와 다쿠미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01-19    조회 : 4172
  
...필자는 종종 노련한 장인들의 작업장을 방문하여 그 숙달된 손놀림에 이끌려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특별한 기구나 복잡한 설계 없이도 작업이 순조롭게 진척되었다. 서두르지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자신 있게 움직였다. 그 긴 담뱃대를 물고 허연 콧수염 사이로 가끔 생각이나 난 듯이 연기를 품어내면서 무념무상으로 작업을 했다. 그곳의 작업 모습은 조금도 무리한 부분이 없는 듯이 보였고 너무나도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사람에게는 한편으로 일벌과 같이 작업이라든가 생산과 같은 것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그러한 본능은 어느 때부터인가 자본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부당한 특권에 의해 유린된 감이 있다. 그 다음에 남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걸린 생존상의 불안뿐이다. 그 불안은 사람이 만드는 모든 물건에 나타난다. 따라서 불쾌한 작품이 세상을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건전한 세상이 기형아를 낳는 것이다.
어떤 일이건 평생 싫증내지 않고 한 가지 일만 한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인류 전체도 그런 사람들의 은혜를 입은 점이 많을 것이다. 단 자본에 맞서는 노동이 아니고 자본이 있어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일, 또 적어도 자기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인간에게 평안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기계 공업에서 직공은 나이가 들면 거의 폐인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직공뿐만 아니라 현 사회의 모든 계급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며, 사람은 일에 대한 흥미를 평생토록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예전의 장인들은 행복하게 일을 했던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나이 든 장인들의 손놀림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의 생활을 정화하고, 분발하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소반의 모습에 나타나는 특색을 열거해보자.
조선 목공품은 선이 만나는 부분이 모나지 않게 둥근 멋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말하자면 면이 완만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다. 반면의 귀를 한 예로 들어보면 귀접이한 것, 능형으로 굴린 것, 둥그스름한 것 등 어느 것이나 자연스러운 형태를 이루어 더욱더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다리 모양도 많은 변화를 보인다. 어느 것이나 건축의 기둥이나 동물의 네 다리를 연상케 하는 균형 잡힌 모습을 하고 있다. 똑바로 서 있는 것, 활처럼 굽은 것, 밑으로 내려오면서 밖으로 튀어나와 특별히 안정된 느낌을 주는 것 등이다.
또한 그 사이에 배치된 간결하고 명확하며 풍부한 선의 부조와 투조의 문양은 훌륭한 건축에 장식되어 있는 현관이나 창을 연상시킨다. 보통 소반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의 종류는, 새·나비·물고기·박쥐·학·매화·대나무·파초·당초·불로초(영지)·연꽃·연꽃잎·국화·모란·백합·석류·초화(草花)·만(卍)·태극·쌍희(囍)·수복(壽福)·완(完)·아(亞)·번개·모과와(木瓜渦)·구름·안상(眼象)·능사형(綾紗形)·바퀴를 겹친 무늬·마름모꼴 등이 있다. 모두 수복강녕(壽福康寧)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상은 선조(線彫), 혹은 양각(陽刻), 혹은 투조 등의 방법으로 극히 온화하고 자연스럽게 조각되어 있다. 원래 기물에 붙어 있는 문양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문자가 설명적인 것은 속되고 나쁜 것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러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조선의 소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오래 된 소반은 쓸모 없는 부분이 없고 온갖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라, 어느 것이나 문양이 전체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반이나 다리가 직선인 해주반과 번상의 경우는 직선 또는 둥근 원이 들어 있는 문양이 배치되어 있고, 곡선 다리를 가진 구족반(拘足盤), 호족반(虎足盤), 나주반의 경우 반판(盤板)에 다리를 접속하는데 구름과 연기, 안개 등이 끼여 있는 듯한 운문(雲文)의 운각을 중간에 둔 그 조화로움에 보는 사람은 감명을 받는다.
본래 만든 사람은 그러한 이치는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문양 그 자체가 소반 구조상 마치 건축의 각 부분이 그러하듯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번상의 다리를 장식하고 있는 화두창은 소반을 머리에 이고 갈 경우 앞쪽을 내다보기 위한 창이다. 옆에 만(卍) 자로 투조되어 있는 것도 광선이 잘 들어오게 하기 위해 만든 창이다.
  
또 한 대원반(大圓盤)의 다리에 붙어 있는 두 개의 안상(眼象)은, 화로에 있는 해삼 모양의 손잡이 구멍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나주반과 해주반의 운각은 실제로 다리를 고정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구조물이다. 통영반의 난간은 받침대 역할을 하며, 해주반의 다리에 새겨진 투조는 상 아래로 빛이 들어와 전체를 가볍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각각의 소반에 붙어 있는 족대는 소반에 안정감을 주는 작용 외에도 실제로 다리를 뒷받침하는 등 어느 것이나 그에 상당하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올바른 사명을 지닌 존재는 장식이 되어도 거추장스럽지가 않다. 쓸모 없이 만들어진 것만이 장애가 된다. 이 세상도 힘겨운 임무를 안고 있는 자가 그 능력을 안으로 감추고 항상 웃음을 보인다면 천하는 태평할 것이다. 필요한 부분이 필요한 만큼 문양화된 것은 그 웃음과 동일하다. 쓸모 없는 불량배가 힘을 과시하며 날뛰는 것만큼 해롭고 불쾌한 일은 없다. 그 결과는 오만과 불안을 부르기 때문에 세상을 싸움으로 이끌어갈 뿐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소반은 아무런 감명을 주지 못하는 것이 많다. 올바른 전통이 파괴되어 우수한 물품을 만드는 일이 곤란하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단순히 옛날 물건과 다른 것을 만들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는 생각에서, 나전을 입히고 지나치게 많은 조각을 하고 혹은 색채를 복잡하게 하지만 이는 오히려 공예를 더럽히는 일일 따름이다.

<조선의 소반/조선도자명고>(아사카와 다쿠미/학고재)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