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물상지-연암 박지원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12-30    조회 : 3244
  
골동 그릇을 팔려고 했으나 3년이 지나도 팔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바탕은 툭박진 돌이었다.
술잔으로 쓰자 해도 겉이 비뚤어지고 안쪽으로 말려들었으며 기름때가 본래의 광택을 가리고 있었다.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녔건만 거들떠보는 자가 없었다. 부귀한 집을 내리훑었으나 값은 더욱 내려가서 수백 전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는 서여요(徐汝五,여오는 徐常修의 자)에게 가져다 보인 자가 있었다. 여오는,
"이것은 붓씻개이다. 이 돌은 중국 복주 수산(福州壽山)의 오화석갱(五花石坑)에서 나오는 것으로 옥 다음으로 쳐주는 옥돌과 같은 것이다."
값의 고하를 묻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8천을 주었다. 돌의 기름때를 닦아내니, 이전에 툭박지게 보이던 것이 그제서야 돌의 무늬가 생기고 푸른 빛을 띠었다. 비뚤어지고 말려든 모양은 가을날 연잎이 마르면서 그 잎을 말아놓은 것과 같았다. 드디어 나라 안에 이름난 골동품이 되었다.
여오가 말하기를,
"천하의 물건 가운데 그릇으로 쓰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 적당한 용처를 얻어 사용하기에 달렸을 뿐이다."
하였다.
무릇 붓털이 먹물을 머금어 아교가 굳어지면 쉽게 빠져버리므로 먹물을 항상 씻어서 부드럽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 그릇이 붓을 씻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다.
무릇 서화 골동(書畵古董)에는 수장하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 두 부류가 있다. 감상할 줄은 모르면서 한갓 수장만 하는 사람은 부유하여 많이 수장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의 귀만 믿는 자이다. 감상은 잘하면서도 수장할 수 없는 사람은 가난하기는 해도 자신의 눈을 저버리지 않는 자이다.
우리나라에도 수장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서적은 모두 중국 복건성 건양(建陽) 지방에서 찍은 방각본(坊刻本)이고, 서화는 강소성 금창(金창) 지방에서 만든 가짜이다. 밤톨 껍질 같은 빛깔의 화로를 곰팡이가 피었다고 여겨 갈아 없애려 하고, 대장경이나 경전의 종이가 더러워졌다 해서 씻으려 한다. 엉터리 물건을 보고는 값을 올리며, 진품은 버려두고 수장할 줄 모르니 그 또한 슬플 뿐이다.
신라 사람이 당나라에 가서 국학(國學)에 입학했고, 고려 사람은 원나라에 유학해서 과거에 급제했다. 이리하여 능히 안목을 넓히고 흉금(胸襟)을 틔웠으니, 그들의 감상하는 학식 역시 당세(當世)에 골고루 갖추었다.
조선이 건국된 이래 300∼400년 동안에는 풍속이 더욱 더러워지고 촌스러워졌다. 비록 해마다 연경(燕京)과 물건을 중개하지만 썩어빠진 한약재나 거칠고 엉성한 견사뿐이다. 우·하·은·주의 골동품이나 종요(種繇)·왕희지(王羲之)·고개지(顧愷之)·오도자(吳道子)의 진적(眞蹟)이야 어찌 일찍이 한 번이라도 압록강을 건너온 적이 있었던가.
  
근세의 감상가로서 상고당(尙古堂) 김광수(金光遂) 씨를 일컫는다. 그러나 그에겐 창조적 사고가 없으니 감상가로서 완전하다 할 수는 없다. 대체로 김씨는 감상하는 방법을 개창한 공이 있었고, 여오는 꿰뚫어보는 식견이 있어, 눈으로 볼 수 있는 온갖 사물의 진위를 변별하고, 게다가 창조적 사고까지 겸했으니 감상을 잘하는 사람이다.
여오는 성품이 총명하고 슬기로워서 문장에 능하고 작은 해서(海西) 글씨에 공교했다. 아울러 미불(米불)의 발묵법(潑墨法)을 잘하고 한편으로 음악에도 정통했다. 봄 가을 틈이 있는 날이면 뜰과 집에 물을 뿌리고 깨끗이 쓸어 향을 사르며, 차 맛을 품평하였다. 집이 가난해서 좋은 골동품을 수장할 수 없음을 탄식하였고 더욱이 세속적인 무리들이 이를 두고 입방아를 찧어댈까 염려하였다. 그리하여 울울 답답해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를 두고 완물상지(玩物喪志)한다고 꾸짖는다면 어찌 나를 참으로 아는 사람이겠는가? 무릇 감상이란 《시경》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다. 곡부(曲阜)에 있는 공자의 신발을 보고서 감동되어 분발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점대(漸臺)의 북두칠성을 보고 스스로 경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내가 이렇게 위로하였다.
"감상이란 사람 품격의 등급을 매겨 벼슬에 임명했다는 소위 구품중정(九品中正)의 학문이다. 옛날 중국의 허소(許소)란 인물이 사람들의 착함과 간특함을 품평하여, 그 판단이 대단히 분명했다고 하나 당시 세상에서 허소를 알아준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지금 여오는 감상의 솜씨가 특출하기에, 많은 사람이 거들떠보지 않는 데에서 이 붓씻개를 능히 알아보고 뽑은 것이다. 아! 슬프다. 여오를 알아줄 사람이 장차 누구이랴?"      
                                                                       (筆洗說)

인터넷에서 지원안되는 한자 : 천문 창, 우거질 불, 힘쓸 소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에서 옮겨왔습니다.


그림 위)청화백자진사채롱문산수경필세/19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