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의 예술적 한계-윤희순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12-22    조회 : 5976
  

한 송이의 국화, 한 그루의 매화, 혹은 한 다발의 난초를 색채로 묘사하든지 묵으로 표현하든지 간에 한 폭의 회화미를 구성한다면 그것이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이 매란국죽이 사군자라는 질곡 속에서 벗어날 줄을 모르는 동안 현대의 회화전람회장에서 유리될 운명에 있다. 이것은 미의식의 시대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군자는 예술일 수가 없을까. 그리고 예술로서 발전할 길이 없을까. 여기서 사군자의 예술적 한계를 밝혀 볼 필요가 있다. 소동파(蘇東坡)가 주묵(朱墨)으로 대를 그릴 때에 옆에서 “세상에 붉은 대도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을, “그러면 세상에 검은 대는 어디 있느냐”고 반박하였다. 이 기지는 고대 동양예술의 정신을 갈파한 일화로서 유명하다. 색과 형을 떠난 사의(寫意)를 말한 것으로서, 이것은 근대예술, 특히 표현파 이후의 주관화와 일치된다. 그리하여 능상(凌霜 : 찬서리)의 국(菊), 설중(雪中)의 매(梅), 유향(幽香)의 난(蘭), 상록(常綠)의 꿋꿋한 대〔竹〕등을 정조(情操)와 일취(逸趣)로서 보고, 이것으로서 다시 군자의 절조(節操)를 상징하였다.
  
정소남(鄭所南, 1241-1318 : 소남은 정사초의 자, 호는 삼외야인․일시거사, 중국 남송 태생으로 묵란을 잘 쳐서 이름이 높았는데, 원이 들어선 이후로는 송에 대한 절의로써 난을 모두 노근으로 그려 국토를 빼앗긴 울분을 표현하였다.)은 노근란(露根蘭)을 처음으로 그린 사람이다. 이것을 묻는 사람에게 대답하기를 “내 난초 뿌리를 감추어 숨길 땅이 없노라” 하여 원(元)나라에 있어 몸이 외로움을 스스로 풍자하였다. 이와 같이 어디까지든지 그 목적이 순수미에 있지 않고 시적 상징에 있었다.  청재당화론(靑在堂畵論)에는 희기(喜氣)로 사란(寫蘭)하고 노기(怒氣)로 사죽(寫竹)하라고 심리적 지시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 반면에 사군자라는 한 체계를 세우기까지에는 매란국죽의 상태를 사실적으로 탐구한 형식적 과정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엽(葉) 화(花) 지(枝)의 식물학적 생태를 정확하게 관찰하여 이것을 양식화하고 간이화(簡易化)하여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실상 예술미의 동양적인 하나의 전형을 사군자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법을 법첩상(法帖上)에서만 본뜬 그것만으로는 현대예술의 열오(列伍)에 끼이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즉 화면에 미적 구성의 예술적 해석이 없는 단순한 필치와 묵(墨)만으로는 예술이 될 수 없다.
앞으로 사군자는 사군자라는 관념에서 해탈해야 할 것이다. 군자의 정취를 담고 안 담고 간에 대상을 순수한 회화미로서 보고 표현하는 데에서 새 길을 찾을 것이다. 이것은 전혀 작자의 예술적 체질(감각)과 교양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림) 위로부터
흐르는 강물처럼 / 김지하  
노근란 / 정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