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설(骨董說)-김용준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12-08    조회 : 3019
송(宋)의 미원장(米元章)은 채유(蔡攸)와 함께 배를 타고 놀다가 유가 가진 왕우군(王右軍)의 글씨를 보고 황홀하여 자기가 가진 그림과 바꾸자 하였으나 유는 듣지 아니하였다.
아무리 해도 안 될 줄 안 원장은 글씨를 가슴에 품은 채 주지 못하겠으면 물에 빠져 죽겠노라 하고 별안간 물속으로 뛰어들려 함으로 유는 할수없이 허(許)하고 말았다.

유명한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敍)는 그의 칠대손인 지영선사(智永禪師)의 가진 바 되었다가 지영이 그 제자 변재(辯才)에게 전하고 후에 당(唐)태종(太宗)은 갖은 계략을 다하여 태원어사(太原御史) 소익(蕭翼)을 시켜 변재에게서 난정서를 빼앗아 평생 진장(珍藏)하고 있다가 태종이 세상을 떠날 때 유언에 의하여 소릉(昭陵)에 묻어 버리고 말았다.
서화뿐 아니라 골동을 사랑하는 사람도 대개 이러한 심리가 작용한다.
  
명(明)의 동현재(董玄宰)는 그의 골동설에서,
'골동을 상완(賞玩)하는 것은 병을 물리칠 뿐 아니라 수명을 연장시키는 좋은 놀음이라'하였다.
달인단사(達人端士)와 더불어 담예논도(談藝論道)를 하며 고인(古人)과 상대한 듯 잠심흔상(潛心欣賞)하는 동안에 울결(鬱結)한 생각이 사라지고 방종한 습관이 고쳐진다 하였다.
그러므로 골동을 완상하는 것은 각병연년(却病延年)의 좋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의미로 골동을 완상하는 반면에 우리 조선의 경향(京鄕)에 산재한 골동가들은 과연 어떠한가.
한 폭의 서화를 소유하기 위하여 생명을 도(賭)할 용기가 있겠으며 제왕의 위엄까지 희생시킬 용의가 있겠는가.
담예논도는 차치하고 각병연년도 고사하고 골동으로써 우정을 상하고 의리를 저버리고 간교하여지고 음모성이 늘고 모리심을 기르고 하여서야 되겠는가.
한 개 사기(砂器)를 어루만질 때나 한쪽 파와(破瓦)를 얻었을 때나 모름지기 그것들을 통해 흘러 오는 옛 형제의 피를 느끼고 그들의 감각이 어느 모양으로 나타났는지가 궁금하지 않겠느냐.
팔이 부러지고 목이 떨어졌다고 혹은 금이 가고 이가 빠졌다고 그의 미가 어찌 손상함이 있겠느냐.
  
그럴수록에 더 아름답고 그럴수록에 더 값이 높아질 것이 아니겠느냐.
고인(古人)의 작품을 상품으로써 싸우고 서화 골동을 수집함으로써 헛된 지위를 자랑하고 완물상지(玩物喪志)하는 것만도 우리의 정신 생활에는 그 손해가 적지 아니하겠거늘 하물며 청빈한 덕을 길러야할 학문인, 예술인들이 부질없이 항간의 불학무식배의 행세거리로 내세우는 소위 '골동 취미'에 탐닉하여 멀리 학인(學人)의 진지한 태도까지 상실하게 된다면 이는 더욱 삼갈 일이 아니랴.
《근원수필》에서
 
 
 

그림) 자화상/근원 김용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