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초상화 수법의 한 고찰(2)-윤희순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11-15    조회 : 2972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동양화에 있어서 모자(眸子:눈동자)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왔다. 서양화에서는 명암의 일부분으로밖에는 안부(眼部)를 쳐주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모자 여부 없이 일점(一點)의 음영부로써 도말 표현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절대로 이런 수법을 쓰지 않았다. 도리어 가장 중심적인 지위를 주어서 특별한 공을 들여 왔다.
.......그런데 안면의 이러한 표현 방법에 비하여 의복의 묘사는 간결한 선으로 구성되었다. 안면에 비하여 필치의 생략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러면서도 화면 전체는 조화를 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이러한 대담한 수법 때문에 청초한 품이 있어 보이는 것이다. 만일 의상마저 안면과 같은 요철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동일한 수법을 썼다고 가정할 때에, 그것이야말로 형사(形似)의 말기(末技)에 떨어지는 비속(卑俗)한 것이 될 것을 상상하게 된다. 물론 의상 그것을 안면과 같은 수법으로 표현하느니보다는 이러한 방법이 더 적당하였던 까닭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상적인 계기를 예술적으로 승화하자면, 거기에는 높은 정시과 깊은 기량이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안면의 용묵적(用墨的)인 번(繁)과 의상의 용필적(用筆的)인 간(簡)을 포섭하여 통일하는 예지와 감성은, 동양에 있어 반도가 가진 그 풍토와 기질에서 오는 특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 초상화가 성격이 뚜렷하고 정혼(精魂)이 차고 인품이 있어 보인다는 것은, 대개 초상화의 대상이 어진(御眞) 혹은 사대부급이었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인(畵人)은 대개 도화서원(圖畵署員)이었는데,
  
그들의 영달은 초상이 만족한 칭송을 받을 때에 기회를 얻게 되므로 일심성력, 정혼을 다해서 그렸던 까닭도 있다. 그러나 평소의 양심적인 연찬이 없이, 그리고 이러한 소인(素因)이 될 상술(上述)의 예술적 연유가 없이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고유한 조선의 감성, 즉 풍토와 기질의 특수성에 대륙을 거쳐 들어온 서양화는 암합(暗合)되고 다시 정치적인 환경, 즉 고귀한 초상을 그림으로 해서 영달할 수 있는(고작 군수급에 그치는 것이지만)환경이 박차를 가하여 조선시대 초상화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이리하여 문인화가들이 기술 거부의 남화적인 일취(逸趣)의 서재 속에서 소요하고 있는 동안에, 조선시대 초상화가들은 겸손한 화기양심(畵技良心)과 부단의 노력으로써 동양 초상화 기법의 신기축(新機軸)을 수립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