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초상화 수법의 한 고찰(1)-윤희순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11-09    조회 : 5423
조선시대 회화로서 가장 완성된 것은 초상화 수법이다. 동양에 있어 관절(冠絶 :가장 뛰어나서 비견할 만한 것이 없음)할 뿐 아니라, 헬레니즘의 인간 본위로 발달되어 온 서양 초상화에 견주어 보아도 그 인간적인 박력에 있어 손색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기운생동하는 품
  
에 있어서는 훨씬 능가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 예컨대 <도암(陶庵) 초상화>를 보면 먼저 도드라진 실감에 놀랄 것이다. 다음에는 안광(眼光)의 영채(靈彩)를 느끼게 된다. 이윽고 화면에서 핍진(逼眞:사물을 아주 닮음)해 오는 성격의 체취와 정혼(精魂)과 인품에 이끌리게 된다.......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안면의 요철감이 여실히 표현된 까닭인데, 이것은 물론 근대 서양화의 명암으로 입체감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고래(古來) 동양화의 백묘(白描) 윤곽선을 기조로 한 상징적 수법, 그것만의 답습은 아니다. 서양의 입체적인 충실감을 혼융(渾融)시켰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체 묘사에 있어 동양과 서양의 다른 점은, 서양에서는 해부학적으로 따지고 다시 광선에 의한 명암, 즉 음영을 기조로 하여 표현함에 대하여, 동양에서는 인체를 자연의 섭리로서 따져서 서양의 형태 묘사에 대한 생태 표현의 방법을 취하여 왔다. 즉 안면의 주요한 융기부(隆起部)를 오악허염(五嶽虛染:초상화 기법에서 얼굴의 돌출 부분을 지칭하는 것, 코가 중악, 이마가 남악, 우측광대가 서악, 좌측광대뼈가 동악, 아래턱이 북악)으로 보아 가지고, 다시 여기에 음양허실(陰陽虛實)을 구명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조선시대의 화인(畵人)들은 이미 요철이 극명하게 관찰되는 자연에서 음양허실에 의한, 즉 입체감의 핵심적인 묘리(妙理)를 체득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명․청을 거쳐서 들어온 서양풍의 입체감은 얼른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좋은 영양소가 되었던 것이다. 오직 서양화의 명암의 도말수법(塗抹手法)을 맹종하지는 않았을 따름이다.
광선의 변화에 따라서 이동되는 찰나의 음영을 도말(塗抹)함으로써 부피와 양과 질의 입체감을 내는 사실적인 서양화 수법을, 이와는 대치되는 존재의 의취(意趣)를 그 생태의 정신에서 파착(把捉)하여 선으로써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도양화 수법에 이식하는 데는, 명암에 의한 요철을 표현하는 대신으로 농담(濃淡)으로 이것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데, 음영을 도말하는 수법에 대응하기 위하여 선을 율동적으로 병력하여 확충시켰다.
이제 <도암초상>에 가까이 다가서서 들여다보면 안면의 도드라져 보이는 요철은 실상 무수한 짧은 선으로 확충되었음을 알 수 있고, 그 선은 부분에 따라서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것은 ‘육리문(肉理紋)’이라는 것으로서, 안근(眼筋)의 조직과 피부의 기리(肌理:살결)를 따라서 선을 운율적으로 운동시켜 가지고 생리적 요철과 성격적 자태를 상징․표현하는 것이다. 육리문은 산악의 준(皴)을 인간적으로 정치화(情致化)한 것으로서, 명암의 운염(暈染)을 선으로 환골탈태시킨 것이다. 이 육리문을 고요히 들여다보면 현대의 미용술의 맛사지의 방향과 합치됨을 깨닫게 된다. 조선의 초상화가들이 얼마나 과학적인 극명한 관찰을 해 왔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도암(陶庵)은 이재(李縡)의 호이다. 숙종대에 태어나서 경종,영조 양대에 걸쳐서 제학,공판 등 요직에 있었으며 강직한 성질로 유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