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문-예용해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10-20    조회 : 3961
  
근세의 명필이요 금석학자로 두드러졌던 추사 김정희가 읊은 시의 한 구절에 “작은 창에 볕 밝아/그 환함이/나를 오래오래/한자리에 앉게 하느니”라는 것이 있다.
이 시의 행간에서는 어느 낮에 선비 하나가 아마도 남으로 났을 창의 창호지로 배어나온 환한 볕살과 마주하여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언제까지나 무심히 앉아 있기만 하는 고요한 모습을 읽어낼 수가 있다.
창호지를 바른 우리의 창은 볕살을 걸러 눈부시지 않은 은은한 밝음을 드러냈다. 볕과 바람을 들이게 하려고 마련된 창은 미닫이와 여닫이, 들어열개, 붙박이 들로 나뉜다. 이것은 또 골홈에 끼워 밀어서 여닫는 미닫이와 골홈에서 두 짝이 맞닫히게 되는 맞미닫이와 어긋지게 닫히는 얼미닫이와 외짝만 여닫는 외짝미닫이로 갈라진다.
또 문에도 밖에서 당겨 여는 당길문이 있고 안으로 밀어서 여는 밀문이 있으며, 두 짝으로 된 문을 여닫는 두짝열개와 한 짝으로 여닫는 외짝열개, 위로 들어올려서 여는 들어열개가 있어서 여닫는 기능에 따라 그 종류가 퍽 다양하다.
창이라고 하여 반드시 미닫거나 여닫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봉창이나 영창과 같은 창은 아예 붙박이로 되어 있다. 그러나 비록 창이 붙박이로 마련되었다하더라도 거기에 창호지를 바름으로써 언제나 빛과 바람을 고르게 드나들게 하는 숨통 구실을 하게 했다. 여름 한낮의 그 눈부신 뙤약볕은 걸러 안온한 빛만을 들이고 겨울의 속소리치는 하늬바람을 그 드센 기운을 꺽어 다소곳한 외풍으로 눅여 스미게 했다. 그리고 달 밝은 밤이면 으스름한 밝음을 그대로 교교하게 방안으로 비치게 하고 칠흑과 같은 어둠 속이라면 10리, 20리의 먼발치에까지 밖으로 인기척을 비춰주었다.
  

남의 나라의 유리창이나 널문들과는 달리 우리 창은 여닫지 않고도 안과 밖이, 밝음과 어두움이, 그리고 메마름과 후줄근함과 따사로움과 차디참을 은근한 가운데에 통하게 하는 묘(妙)가 있다.
창과 문을 만들려면 먼저 문짝의 틀인 문골을 짜야 한다. 다음으로 문짝이 달린 설주틀인 문틀을 마련하고는 문살을 끼운다. 문살대에는 가로 끼이는 동살대와 길이로 세우는 장살대가 있고 빗끼우는 빗살대가 있어서 이 살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짜들어가서 아름다움을 꾸며낸다.
그런데 창이나 문에 반드시 문살을 짜넣는 것은 아니다. 띠나무에 널판을 붙여서 만든 널문이나, 문틀을 모아서 거기에 널을 끼워서 만든 골판문에는 문살이 없다.
그러나 대체로 창은 문살로 짧게 간사리한 세살문이나 문의 위와 가운데와 아래에 띠를 두르듯이 한 띠살문들이 주축을 이룬다. 세살문에는 문살이 우물 정 자꼴로 짜여진 정자살문과 문살을 빗짜서 만든 빗살문과 소슬빗살문이 있다. 띠살문의 문살 무늬는 반듯한 네모와 긴네모꼴로 이루어지며 정자살문은 반듯한 네모꼴만으로, 또 빗살문은 마름모꼴만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소슬빗살문의 무늬는 세모꼴의 연속이다.
여염집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문으로는 살대가 한자의 완자무늬로 꾸며진 완자문과 한자의  아 자꼴로 짜인 아자문을 들 수가 있으나, 완자문이나 아자문이 모두 변화가 많아서 여기서는 하나하나를 이루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또 궁궐이나 절에서는 문살에 꽃새김을 한 꽃살문이 많이 쓰였는데 그 꾸밈새가 완자문이나 아자문만큼 다양하다.
이밖에 널로 된 문짝에 새김을 한 새김문이 있고 문살에 종이를 바른 장지문이 있다. 장지문은 볕을 많이 들이는 문이지만 안팎으로 종이를 바른 갑장지문은 채광과 통풍이 훨씬 제한되어 낮에도 달밤의 어스름 같은 밝음만을 방안에 가져다준다. 따라서 갑장지문은 이따금 쓰게 되므로 여느 때에는 장지두껍집에 밀어넣어서 갊아둔다. 그밖에 방과 방 사이의 칸을 막아주는 미닫이문은 새장지라 하고 추운 겨울에 외풍을 막으려고 단 문은 빈지문이라고 한다.
창이나 문은 그것이 달리는 자리에 따라서 달리 불리게도 되니 벽장에 달리면 벽장문이라 하고 다락에 달린 미닫이문은 다락장지라고 한다. 또 문짝의 아래위는 두껍게 도배하고 가운데만 살창으로 된 사푼각은 연창문이라 하고 여닫도록 된 문이나 창은 분합문이라 하는데, 문짝 두 개로 여닫게 되는 문은 쌍분합문이라 하고 네 짝으로 여닫는 문은 사분합이라 한다. 또 문짝이 하나로 되어 달린 창은 독창이라 부른다.
대체로 문이나 창에는 창호지나 장지를 바르게 마련인데 개화기 후에 유리가 나돌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유리를 끼우게 되었다. 종이를 바른 문은 광창이라고 하는데 정작 바깥의 빛을 그대로 들이는 유리창의 경우에는 한자의 ‘그늘 영’ 자를 얹어서 영창이라 불렀다. 투명한 유리창에서 오히려 그늘을 느끼고 창호지를 바른 반투명의 창에서 밝음을 보았던 감수성은 우리만의 고유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보기로 들었던 창들은 대체로 모난 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틀을 보름달같이 둥글게 짠 원창이 있기도 하고 반달꼴을 닮은 반월창이 있는가 싶으면 옆으로 길게 살대만을 박은 실창도 있다. 또 바깥뜰을 바라볼 수 있게 한 들창이 있고 미닫이로 된 미닫이창이 있으며 살대를 빗짜서 만든 살창의 일종인 빗살창이 있다.
조금 쓰임새가 특수한 창으로는 누각과 같은 높은 집의 벽 위에 바깥을 내다보기 좋게 뚫은 망창 곧 바라지창이 있으며, 사푼각 문설주 위에 가로 길게 장식효과를 곁들인 광창의 일종인 교창이 있다. 교창은 난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교창도 문살의 꾸밈새에 따라서 아자교창, 완자교창, 정자살교창 들로 불린다.
우리가 살아왔던 한옥의 창이나 문은 이처럼 가지 수효도 많고 꾸밈새도 다양하여 집을 지을 적에는 으레 문을 만드는 사람을 따로 두었다.
  

분통같이 도배하고 쇠가죽 같은 장판을 바른 방의 미닫이에 어둡도 밝도 않은 어스름이 어리던 시골집을 생각해본다. 미닫이에 달린 녹피문고리며 창호지 속에 단풍잎이나 국화잎이나 그밖에 이름모를 들꽃을 넣어 발라 그것이 밖으로 은은히 내비치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옹이 없고 결이 고른 춘양목을 골라 정성스레 짠 정교한 창도 좋지만, 다 쓰러져가는 토담집의 벽을 아무렇게나 울퉁불퉁 구멍을 내어 거기에 댓가지를 이리저리 얽어 창호지를 바른 봉창으로 부처님 후광같은 밝음이 쏟아져 들어오던 정경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에서 얼치기 양옥을 지어 살면서 그래도 창에 얽힌 지난 사연이 아쉬워 유리창 안에 덧문으로 완자창을 끼우고 창호지로 도배를 해보았으나, 햇빛이 들면 유리창의 멋쩍은 창살 그늘이 완자무늬에 겹쳐서 눈길이 어지럽고 피곤하기만 하여, 걸맞지 않은 이질의 것을 하나로 자연스레 얼리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를 새삼스레 느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