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화가를 비유하여 평함 三畵家喩評-남태응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8-26    조회 : 2735
  
문장가에 삼품三品이 있는데 신품神品, 법품法品, 묘품妙品이 그것이다. 이것을 화가에 비유해서 말하면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은 신품에 가깝고, 허주墟舟 이징李澄은 법품에 가까우며, 공제恭齋 윤두서尹斗緖는 묘품에 가깝다. 학문에 비유하자면 김명국은 태어나면서 아는 것이고 윤두서는 배워서 아는 것이며 이징은 노력해서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면 모두 한가지이다. 조선 필가筆家에 비유하자면 김명국은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류이고 이징은 석봉石峯 한호韓濩류이며 윤두서는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류이다.
김명국의 폐단은 거침[麤]에 있고, 이징의 폐단은 속됨[俗]에 있고, 윤두서의 폐단은 작다[細]는데 있다. 작은 것은 크게 할 수 있고 거친 것은 정밀하게 할 수 있으나 속된 것은 고칠 수 없다. 김명국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며, 윤두서는 배울 수 있으나 능숙하게 할수 없고, 이징은 배울 수 있고 또한 능숙할 수 있다.
김명국은 마치 바다 위의 신기루처럼 결구가 그윽하고 심오해서 바탕과 기교가 변화가 심해서 그 제작을 상세히 설명할 수 없다. 떠있음이 일정치 않고, 보이고 사라짐이 일정하지 않으며 그 방향을 가리킬 수 없다. 바라보면 있는 것 같으나 다가서면 없어지니 그 멀고 가까움을 헤아릴 수 없어서 이와같은 것은 잡으려 해도 얻을 수 없고 황홀하여 묘사하기 어려우니 그것을 가이 배울 수 있겠는가!(도 1)    
  
윤두서는 마치 공수반公輸般이 끌을 잡고 사람의 상을 만드는 것과 같아서, 먼저 몸체와 손발을 만들고 그 다음 이목구비를 새기는데 공교로움을 다하고 극히 교묘하게 본떠서 터럭 하나 사람과 닮지 않은 것이 없으나 아직 부족하다 하여 급기야 그 속에 기관機關을 설치하여 스스로 발동하게끔 함으로써 손은 쥘 수 있고, 눈은 꿈적거릴 수 있고, 입은 열고 벌릴수 있게 한 다음에야 참모습과 가상假像이 서로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화를 얻어낸것과 같다. 그러니 기관이 발동하기 이전까지는 아직 배울 수 있으나, 그 이후는 불가능할 것이다.(도 2)
이징은 마치 큰 장인大匠이 방을 만들고 집을 지을 때 짜임새가 법규에 부합하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직각 자로 네모를 그리고 그림쇠로 원을 만들고, 먹줄로 수평과 수직을 잡되 대단한 설계와 대단한 기교機巧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공사를 마치고나면 규모가 다 정연하여 법도에 부합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되 모두 인공(人工)으로 가이 미치는 바이다. 이런 이유로 배울 수 있고 또 가능하다고 이르는 것이다.(도 3)
  같은 해(1731년) 같은 달 10일즈음 오옹聱翁이 쓰다.

  
김명국은 그 재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공교로운 솜씨를 끝까지 구사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비록 신품이라도 거친 자취를 가릴 수 없었다. 윤두서는 그 재주를 극진히 다했고, 그 공교로운 솜씨를 끝까지 다했다. 그래서 묘하기는 하지만 난숙함에서는 조금 모자랐다. 허주는 그 재주를 다하고 그 솜씨를 다했으며 난숙하기도 하다. 그러나 다만 법도 밖에서는 더불어 논할 수 없다.
그래서 세 사람으로 하여금 같은 장소에서 함께 말을 타고 달리게 한다면, 질주하면 같이 질주하고 천천히 달리면 같이 천천히 달려 대략 서로 비슷하지만 분연히 먼지를 일으키며 급히 달리면 이징은 거의 맨 뒤에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봐야 할 것이다. 춘추시대에 비유한다면 김명국과 윤두서는 진晋과 초楚가 서로 동맹하여 번갈아 맹주 노릇하는 것과 같다. 김명국은 초나라와 비슷하니 초는 힘이다. 윤두서는 진나라와 비슷하니 진은 의로써 하나니 의는 힘쓸 수 있으나 힘은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징은 진秦와 비슷하여 비록 스스로 한쪽 방면에서는 우두머리 노릇을 하지만 감히 동쪽을 바라보면서 진과 초에 항거하거나 제후들과 다툴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오옹聱翁이 추가해 쓰다.      

남태응[1687~1740]의 《청죽만록聽竹漫錄》 <청죽화사聽竹畵史>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