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아름다움 ① 남산(1) - 윤경렬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5-30    조회 : 2352
겉모습에 눈이 어두워서는 살아계신 부처님을 뵈올 수 없으리니


용장(茸長)마을에서 경주쪽으로 650m쯤 오면 이름도 고운 비파(琵琶)마을이 있다. 경주시에서 6km쯤 되는 곳이다. 남산 정상 부근에서 서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인데 길이가 약 2km이고 도로에서 정상까지는 1km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이 계곡에는 세 곳의 절터가 있고 4기의 석탑지가 남아 있는데 그 모양이 특이할 뿐만 아니라 옛부터 전해 오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 더욱 뜻 깊은 골짜기인 것이다.
신라 32대 효소왕(孝昭王) 6년(697) 서울 동쪽 교외(郊外)에 망덕사(望德寺)라는 절을 세우고 낙성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임금이 친히 가서 공양했다. 그때 남루한 옷차림을 한 못생긴 스님이 와서 임금에게 청해서 말했다.
"빈도(貧道)도 재(齋)에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임금은 마음이 언짢았지만 말석(末席)에 참석하라고 허락하였다. 재를 마치려 하자, 왕은 그를 희롱하고 비웃었다.
"비구(比丘)는 어디에 사는가?"
"비파암(琵琶岩)에 있습니다."
"지금 가거든 다른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불공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말하지 말라."
그 스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잘 알았습니다. 임금님께서도 다른 사람에게 살아있는 석가모니 부처님(眞身釋迦)을 공양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자 무릎을 치니 몸에서 금빛이 나고 땅에서 솟아오르는 오색 구름을 타고 남산(南山)으로 가버렸다. 임금은 놀라고 부끄러워 산에 올라가 부처님이 날아간 방향을 향해 절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찾게 하였다. 사자들은 삼성골[參星谷] 혹은 대적천원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지팡이[錫杖]와 바릿대[鉢盂]가 바위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진신석가는 석장과 바릿대만을 남겨두고 바위 속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사자들은 돌아와서 임금께 그 사실을 복명(復命)하였는데 임금은 비파암 아래 석가사를 세우고 진신석가가 자취를 감춘 곳에 불무사를 세워 잘못을 참회하였다한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권5·감통(感通)편에 '진신수공'(眞身受供)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설화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무리 임금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업신여겨서는 안된다는 점, 부처님은 언제라도 갖가지의 화신(化身)으로 나투어서 인간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단순히 미래 세계만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현실생활속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 점, 또 부처님은 겉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형상에 집착하지 말고 언제나 근본이 되는 본성(佛性)을 보아야 한다는 점등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설화를 통해서 우리는 당시의 신라민중의 토속적인 신앙을 알 수도 있다. 우선 불교가 전래되기 전부터 조상에 대한 신앙이 있었다. 또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 최초의 절 흥륜사(興輪寺)가 된 천경림(天鏡林)이라든가 사천왕사(四天王寺)가 된 신유림(神遊林)등은 모두 수풀신앙이 성행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그 다음으로 앞에서 이야기한 설화와 직접 관련이 있는 바위신앙이 있었다. 사랑 때문에 병들었을 때는 상사바위에 가서 기도를 한다. 그런 자리에는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부처님이 바위 속에 머무르고 계신다. 그러므로 기실 마애불(磨崖佛)들은 부처님을 바위에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안에 계시는 부처님을 세상으로 모셔내는 것이었다. 자연숭사상과 불교신앙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흔적이다.
비파마을의 계곡으로 찾아들면 골 어귀는 아주 평범하다. 큰 무덤들이 줄지어 있는데 주위에 노송(老松)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송림에서 약 100m쯤 들어가면 계곡의 북쪽 기슭에 넓은 돌축대가 남아 있는데 마을사람들이 풀무절터라 한다. 이곳에서 개울을 건너 본류를 향해 약400m들어가면 북쪽에서 서남을 향해 흘러오는 계곡이 있다. 이 계곡 입구에서 곧 바로 100m쯤 더 올라가면 먼저 계곡과 같은 방향에서 흘러오는 넓은 계곡이 있으니 이 계곡이 잠늠골이다.
잠늠골에서 약 300m 더 들어가면 주위 환경은 갑자기 달라진다. 유순하던 산세는 가파르게 되고 산비탈에는 큰 바위들이 둘러서며 무성한 나무들은 그림자를 감추고 붉은 살이 들어나 보이는 곳이 많다. 이곳이 삼국유사에서 말한 대적천원이라 믿어진다.
누각같이 큰 바위들이 층층으로 솟아있는 북쪽 산비탈 기슭에 높이 8m쯤 되는 바위가 비파모양으로 서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비파암이다. 비파암에서 약 200m되는 개울가에 석가사(釋迦寺)터가 있고 다시 석가사터에서 북쪽으로 약 100m가량 되는 산허리 바위 위에 불무사(佛無寺)터가 있다.

윤경렬, 〈불일회보, 1987년 5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