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익살의 아름다움 - 최순우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5-24    조회 : 2650
한국 사람들은 웬만큼 친한 사이에 서로 만나면 우선 첫마디로 익살스러운 농을 걸어서 서로의 오가는 정을 돋운다. 물론 다른 민족이라고 해서 익살이나 농이 적다는 말은 아니지만 외국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우리네의 농은 그 감정의 차원이 다르고 또 그 빈도가 높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은 그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해학의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달래고 그 익살과 농담 속에는 풍자와 체관의 멋이 스며 있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우리 속담에도 '울다가도 웃을 일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곡절 많은 역사 속에 몸에 밴 미덕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울다가도 웃을 일이라는 말은 물론 어처구니가 없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애수가 아름다울 수 있고 또 익살이 세련되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 사회의 서정과 조형미에 나타나는 표현애도 의당 이러한 것이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요의 아름다움과 슬픔의 아름다움이 조형작품 위에 옮겨질 수 있다면 이것은 바로 예술에서 말하는 적조미의 세계이며 익살의 아름다움이 조형 위에 구현된다면 물론 이것은 해학미의 세계일 것이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에 나오는 인물들의 구수한 얼굴들과 익살스러운 표정과 동작 속에서 느껴지는 해학의 아름다움 속에는 오히려 지체할 수 없는 일말의 엷은 애수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고 석굴암 십일면 관음보살의 맑고 깔끔한 얼굴에서는 간절한 비원과 그 슬픔이 지닌 아름다움이 지극히 담담한 미소로서 나타나고 있다.
  

만약에 이러한 아름다움들을 '고요한 익살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 불러 본다면 우리의 미술작품에는 여기에 예를 들 만한 것이 적지 않다. 남리 김두량 작 '가려운 데를 긁는  개'의 익살스러운 표현과 고려 청자들이 지닌 가늘고 긴 곡선 그리고 담담한 푸른빛이 보여주는 조용한 아름다움도 좋은 대조의 하나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고요한 익살의 아름다움'은 한국 미술이 지니는 아름다움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네의 조형작품의 일품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마음이 조용해지거나 또는 홀로 실소를 자아내게 해주는 내재적인 아름다움에 자주 부딪치게 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우리 미술에 나타난 이러한 '익살과 고요의 아름다움'을 정리해 보면 이것은 '한국미'가 지니는 두르러진 특색의 일면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