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살 - 예용해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5-16    조회 : 3958
떡은 곡식의 가루를 뭉쳐서, 찌거나 부치거나 띄우거나 굽거나 쳐서 먹는 음식을 이른다. 사람들이 떡을 먹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일 것이다. 꼭 언제부터라고 밝히기는 어렵고 아마도 농경과 때를 같이 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가 있을 따름이다.
가장 흔히 먹는 우리의 떡으로 시루떡과 인절미와 절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시루떡 중에서도 쌀가루만을 시루에 쪄서 낸 것을 백설기라 한다. 백설기는 가장 원시적인 떡이고 여기에 콩이나 호박고지, 무채, 대추, 신검초, 꿀, 곶감채, 밤 같은 것을 넣으면 제가끔 콩시루떡, 밤시루떡 따위가 된다. 또 떡가루를 시루에 깔고 팥을 놓고 그 위에 떡가루를 깔고 켜켜이 거피팥, 콩, 녹두, 계핏가루, 석이, 밤, 잣, 귤을 섞바꾸어 놓고 쪄낸 떡은 갖은시루떡이라고 하는데 보기에도 아름답거니와 맛도 있다.
시루떡에 버금가는 떡으로 인절미가 있다. 찹쌀, 차조, 기장과 같은 끈기 있는 곡식을 쪄서 지에밥-지방에 따라 고두밥이라고도 한다-을 만들어 그것을 돌이나 나무로 만든 안반에 쏟아 떡메로 쳐서 콩가루나 깨, 판 따위의 고물을 묻혀 먹는다.
절편은 인절미를 차진 곡식으로 만드는 데 반하여 멥쌀로 만드는데, 떡판에 밀방망이로 밀어서 동글납작하게 자르거나 긴네모꼴로 잘라서 떡살로 살박이를 한다. 떡살로 살박이를 하는 떡은 절편뿐인데, 이 떡은 제사나 고사 같은 데는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떡살은 주로 나무로 만들어졌으나 이밖에 사기, 오지, 무쇠, 돌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이름도 지방에 따라 떡살판, 떡손, 절편판, 절편손 따위로 다르게 불린다. 사기나 오지, 무쇠, 돌 따위로 만들어진 떡살들은 거의가 한 가지 무늬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무떡살은 외톨무늬보다는 여러 무늬들이 이러진 것이 더 많고 긴 것이 보통이다.
떡살은 소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가장 흔하지만 박달나무, 대추나무, 배나무, 호두나무, 피나무, 춘양목, 단풍나무와 같은 잡목들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꾸밈새는 각양각색으로 도서인과 같은 꼴이 있는가 하면 장구처럼 생긴 것도 있고 방망이꼴과 사모꼴처럼 손잡이가 좌우에 달린 것도 있다. 도서인같이 생긴 것은 무늬가 윗면과 아랫면에 제가끔 새겨져 있어서 하나의 떡살로 두 가지의 무늬를 찍을 수 있게 돼 있고 그것은 장구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모뿔처럼 두 손잡이가 달린 떡살은 무늬가 한 면에만 새겨져 있기가 십상이고 떡살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생각되는 것으로는 방망이꼴을 한 떡살이다.
떡살의 무늬는, 돋을무늬를 새겨서 그것을 떡에 찍었을 때에 음각의 효과를 나타내게 한 것과 음각을 파서 떡에 돋을무늬가 두드러지게 한 것의 두 가지로 나뉘는데, 대체로 음각을 새긴 떡살의 수효가 많은 편으로 생각된다. 가장 단순하게 직선을 굵은 대발처럼 새긴 것이 있는가 하면 십장생을 당초무늬로 감싼 것과 같은 사실적이고 섬세한 것도 있다.
  
떡살에 따라 또는 그 떡살이 지니는 시대적인 배경이나 지역 사회의 기호에 따라 또는 떡살을 만든 사람의 솜씨나 정성과 떡살을 만들게 했던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여느 우리 공예품들이 그러하듯이 떡살도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이 제가끔 모양이 달라서 꼭 같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같은 직선으로만 꾸민 떡살의 무늬를 두고 보더라도 국수가락처럼 평행으로 구성된 것이 있는가 하면 가로와 세로의 선을 엇섞어서 꾸민 것도 있다. 또 석쇠무늬, 삿자리 모양, 격자무늬처럼 한정된 공간에 직선만을 써서도 만화경 속 같이 황홀한 아름다움을 이루어놓은 것도 있다. 원형, 네모꼴, 꽃무늬, 학, 사슴, 봉황, 잉어, 벌, 나비, 박쥐와 같은 동물무늬와 해, 달, 별, 물결, 번개무늬, 완자무늬, 태극무늬와 부귀다남 같은 길상문자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순수 예술 활동으로 판화를 하는 어떤 대가의 경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고 어느 모로는 그들이 이르지 못할 창작의 높이를 보여주는 것들도 있다.
숲 속에 암수 한 쌍의 사슴이 앞서거니 뒤지거니 오순도순 거닐고 그 발아래 불로초가 피어 있어 티끌 세상을 멀리 등진 어느 두메산골의 선경을 방불케 하는 조각이 있는가 하면, 오래된 오동나무 가지 끝에 한 쌍의 봉황이 서로 깃을 맞대고 올라앉아 찰떡같은 금슬을 소리 높여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조각도 있다. 그처럼 떡살 속에는 아늑한 우화의 세계가 담겼다.
그런가 하면 잔잔한 물결이 넓게 느껴지는 공간에 살이 찌고 힘이 센 잉어가 하늘 높이 있는 여의주를 향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율동감이 넘치는 움직임의 세계가 펼쳐져 있기도 하고, 어느 햇볕 밝은 여름 낮의 서늘한 뒤꼍에 꿀벌이며 나비가 가지가 휘어지게 영근 석류알에 소리 없이 날아들고 그 아래 태평화가 고사리순처럼 뻗은 대궁이 끝에서 활짝 피어 있는 고요의 세계가 깃들어 있기도 한다.
결코 정교라 할 수는 없을지라도 무딘 각도 끝으로 생각 속에 떠오른 아름다움의 극치를 더함도 덜함도 없는 한결같은 솜씨로 파내어 혼자 성취의 기쁨을 가슴 깊숙이에서 되새겼을 늙고 젊은 장인들. 그들은 때로 떡살 어느 한 모서리에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이것을 맏들었다고 새기기도 하고 또 그 떡살을 마련한 집의 택호를 새기기도 하지만 결코 스스로의 이름을 새기는 일은 없다.  
  
떡살에 새겨진 글씨는 행문께나 한다는 선비의 붓글씨에도 손색이 없는 달필이 있는가 하면 한자는 숫제 배우질 못했기 때문인지 지렁이가 기어간 듯한 이른바 언문으로 새겨진 것도 있다. 그러나 달필로 진서를 새겼든지 지렁이가 기어가는 긋한 한글로 팠든지 그런 차이 때문에 떡살의 무늬가 더 아름다워지거나 더 서툴러지는 법은 없다.
다만 그 어느 경우를 가릴 나위 없이 어느 날 어느 때에 어느 댁의 떡살을 팠다는 사연은 꼼꼼히 정성스레 새기면서도 거기에 스스로의 이름을 새기는 일은 마다했거나 삼갔을 장인들의 심사를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굳이 지금에 은밀히 접어두었을 속마음을 헤아려보면 하찮고 욕된 장인의 이름은 당대만으로도 낯부끄러운데 하물며 후세에까지 남길 것인가 하는 자기부정도 있었을 것이고, 어차피 백년도 채우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한평생인데 이름이 남은들 어떠며 남지 않은들 무슨 상관이랴는 달관이나 체념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도 저도 아니고 지금으로는 상상하기조차도 어려운 여러 가지 사연으로 스스로의 솜씨에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기를 마다해야 했던 풍조가 그때에는 있었을 터이지만, 그것이 그때 나름의 돌림이었다면 지금에 와서 따진다고 해서 어떻게 될 일도 아니니 그저 궁금증으로 접어두는 도리밖에는 없겠다. 그러나 어려서 명절이나 좋은 일을 앞두고, 회장저고리 소매를 걷어붙이고 긴 무명 앞치마를 두른 아낙네들이 집안에 모여서, 한 머리에서는 디딜방아에서 연신 떡고물을 빻아내어 그것을 부엌 익부리솥에 시루를 얹어 장작불을 지피면서 눈물과 땀을 앞치마로 훔치기가 바쁘고, 또 한 머리에서는 힘센 남정네가 번갈아가며 떡메로 안반의 떡을 치는 소리가 울안에 울리고, 바쁜 발길에 체인 강아지는 놀라 깽깽거리며 마루 밑으로 꽁지를 말고 뛰어들어가고, 대청에서는 떡살로 절편에 참기름칠을 해가며 살박이를 하고 식칼로 도마에 대고 그것을 반듯하게 자르던 한 무리의 중년 부인네끼리 무슨 우스갯소리가 오갔던 것인지 한바탕 깔깔 웃음이 터지곤 하여, 수선과 흥청으로 뒤범벅이 되었던 정말 사는 것 같았던 가슴 뿌듯한 술렁임들을 떡살은 영락없이 되살아나게 한다.
나보다는 우리가, 낱보다는 모두가 앞섰던 무렵의 잔칫날에 제가끔의 몫으로 돌아온 절편이 흰절편인지 쑥절편인지 송기절편인지 또는 그 절편들에 살팍이 된 무늬가 누구의 몫이 더 곱고 아름다운지 이런 것들이 어린 마음에는 그지없이 소중하고 다시없는 관심사였다. 좀체로 차지하기는 어려웠지만 어쩌다가 조청이나 꿀을 따로 얻어 찍어먹던 일이 생각난다.
한입에 먹어치우는 떡을 위해서 그토록 부산을 떨고 수런거리며 정성을 들이고 또 그 일을 위해서 멀리 사는 각수에게 떡살을 파게 하였다. 그리고 그 떡살은 할머니로부터 어머니로 그리고 자손들에 이어져 길이길이 간직되면서 가통과 함께 이어지곤 했다. 떡살을 보고 있노라면 차일 그늘에 굽 높은 고족상에 시루떡이며 인절미며 살박이한 절편이며 또 온갖 맛있는 잔치 음식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푸짐하게 차려놓은 그런 흥청거리는 잔치 생각이 절로 난다.   (1977년 9월)

예용해, 《예용해 전집 2. 민중의 유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