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미술 - 최순우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5-09    조회 : 3046
간혹 비행기를 타고 조국의 강토를 하늘에서 굽어보면 그림같이 신기한 밭이랑 논이랑의 무늬진 아름다움과 순한 버섯처럼 산기슭에 오종종 모여서 돋아난 의좋은 초가 지붕의 정다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 줄 때가 있다. 그리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과 산들이, 그다지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을 가슴에 안고 그리 슬플 것도 복될 것도 없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하늘이 맑은 고장,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 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이 되어 가면서 순박하게 살아 왔다.
한국의 미술, 이것은 이러한 한국 강산의 마음씨에서 그리고 이 강산의 몸짓 속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쌓이고 쌓인 조상들이 긴 옛 이야기와도 같은 것, 그리고 우리의 한숨과 웃음이 뒤섞인 한반도의 표정 같은 것, 마치 묵은 솔밭에서 송이 버섯들이 예사로 돋아나듯이 이 땅 위에 예사로 돋아난 조촐한 버섯들, 한국의 미술은 이처럼 한국의 마음씨와 몸짓을 너무나 잘 닮고 있다.
한국의 미술은 언제나 담담하다. 그리고 욕심이 없어서 좋다. 없으면 없는 대로의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가 별로 꾸밈없이 드러난 것,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은 그다지 슬플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가 한국 미술의 마음씨이다.
하늘로 향해 두 귀를 사뿐히 들었지만 뽐냄이 없는 의젓한 추녀의 곡선, 아낙네의 저고리 도련과 붕어밸 지은 긴소매의 맵시 있는 선, 외씨 버선볼의 동탁한 매무새, 초가 지붕과 기와 지붕들이 서로 이마를 마주 비비고 모여선 곳, 여기엔 시새움도 허세도 가식도 그리고 존재도 발을 붙이지 않는다.
평양수심가 하면 장연긴아리와 정선아리랑 그리고 신고산타령과 '저 건너 갈미봉에' 이르는 멋진 가락에까지 수많은 우리 노래의 아름다움은 정말 우리 민족의 숨결이다. 이 노래들이 이 강산에서 메아리처럼 스스로 우러나왔듯이 우리의 미술은 이 숱한 노래들의 자장가 속에서 스스로 자라나온 까닭에 우리의 미술은 우리의 노래처럼 연연하다.

대궐이나 절간 그리고 성문이나 문묘 같은 큰 건물에는 물론 한국의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 그러나 우리가 먹고 쉬고 하는 살림집처럼 일상생활에서보다 우리 한국의 고유한 채취를 강하게 발산하는 곳은 없다. 이 요람 속에서 한국의 멋과 미가 오랫동안 자라나온 것이다. 기와집은 기와집대로 초가집은 초가집대로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정말 분수에 맞는 한국의 정서가 스며 있다. 한국의 주택은 일본의 주택처럼 아기자기한 그리고 신경질적인 짜임새나 구조적 기교미를 자랑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중국의 집처럼 호들갑스럽지도 않는다. 한국의 주택은 조촐하고 의젓하며 한국의 자연 풍광과 그 크기가 알맞다.
하늘로 향해 두 처마 끝을 사뿐히 들었지만 날아갈 듯한 경쾌도 아니요 조잡한 듯하면서도 온아한 미덕과 질소한 기능과 구조가 이 지붕 밑에 한국 사람들의 담담한 마음씨를 담기에 참으로 격이 맞는다. 한국의 주택은 일본의 주택처럼 코로 목향 내음을 맡으며 즐기거나 잘 다듬은 각재들을 쓰다듬으며 즐기는 따위의 근시안적인 아름다움은 없다. 사면의 자연풍광 속에 조화시켜 편안한 그리고 자연의 속으로 번져 나가는 것이 한국 주택의 생리이다. 손으로 쓰다듬으며 즐길 만큼 정성들여 잔재주는 부리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마음 편한, 그리고 멀리서 두고 바라보아 한층 정이 가는 것이 한국 건축의 미덕이다.
근래 분별없는 외래 취미 때문에 소위 문화주택이니 양옥이니 해서 반숭숭한 얼치기 집들이 듬직하고 아름다운 한국 주택미의 기조를 흩뜨리고 있지만 그것은 한때의 물거품 같은 것, 우리의 주택은 역시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자자손손 이어서 세련시켜 온 한국미의 기조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욕된 일인가를 한국의 양식은 오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창덕궁의 낙선재와 비원에 있는 연경당과 여러 초당들 그리고 운현궁의 주택들을 비롯한 경향 각지의 격있는 구가들의 온아와 간소미에 빛나는 세련된 아름다움의 기조는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민족의 재산이다. 한국의 공예는 한국의 주택 속에서 자라났다. 멀리는 석기시대로부터 가깝게는 고려의 청자, 조선시대의 자기에 이르기까지 참 잘도 우리의 풍토와 호흡이 맞아왔다.
우리의 미술 중에 무엇이 제일 한국적이냐 할 때 우선 우리는 도자기를 들 수 있다. 말이 없지만 우리는 우리의 강산과 여기에 서린 조상들의 입김과 메아리치는 아련한 민요와 오랜 역사의 동록 같은 것들이 얼버무려진 말하자면 민족교향시 같은 애틋한 소리를 위는 우리네의 도자 공예에서 듣고 있다.
길고 가늘고 가냘픈, 그리고 때로는 도도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따스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곡선의 조화, 그 위에 적당히 호사스러운 무늬를 한고 푸르고 맑고 총명한 푸른 빛너울을 쓴 아가씨, 이것이 고려의 청자다.
  
의젓하기도 하고 어리숭하기도 하면서 있는 대로의 양심을 털어놓은 것, 선의와 치기와 소박한 천성의 아름다움, 그리고 못생기게 둥글고 솔직하고 정다운, 또 따뜻하고도 희기만한 빛, 여기에는 흰 옷 입은 한국 백성들의 핏줄이 면면이 이어져 있다. 말하자면 방순한 진국 약주 맛일 수도 있고 털털한 막걸리 맛일 수도 있는 것, 이것이 조선시대 자기의 세계이며, 조선 항아리의 예술이다.
만약에 동방 미술사에서 고려·조선 두 토막의 도자사를 잃었다고 치며, 즉 이 한국미의 독자적인 세계가 사라졌다 치고 보면 동양은 이 큰 손실을 무엇을 매꿀 것이냐. 이곳은 기능과 용도와 정치와 예술이 소산지운(疏散之韻)과 더불어 함께 사는 곳, 한국 도자기를 모르면 도자 이야기를 아예 하지 말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이미 진실로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아는 세계 예술인들의 자백이다.
이러한 고려 자기나 조선 자기를 싣기 의해서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멋진 목공가구들을 많이 남겼다. 찬장과 사방탁자·문갑과 서안·연적과 의거리 등 조선시대 목공가구류의 간박한 단순미, 질소미 등은 한국의 주택미와 직접 연결되는 아름다움이며 구안의 외국 인사들 가정에 얼마나 많은 수의 목공품들이 바다를 건너 갔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있는 대로의 재료, 즉 잡목은 잡목대로 오동이면 오동, 이재면 이재대로 그 재료들의 아름다운 생명들이 착실한 공작과정을 거쳐 조선 목공예가 단순화·간미화의 공예미술의 올바른 궤도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주고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양실에도 한실에도 다같이 조화되는 조선 가구, 이것은 아직도 새롭고 또 앞으로도 새로울 수 있는 새 시대 한국 공예의 갈 길을 훤히 비춰 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흔히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인사들의 입에서 한국화 그림은 하잘 것 없다는 말을 가끔 듣게 된다. 이것은 그리 간단하게 수긍이 가는 말도 아니며 기실 그렇게 쉽사리 방언할 말이 못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어느 것이 한국 그림이냐, 또는 한국 회화의 미학적 특질이 무엇이냐 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문제이며 실상 한국 그림에 대한 이러한 정리 연구는 이제 겨우 단서가 잡히고 있을 뿐이다. 근시안적인 연구나 관찰만을 가지고 아무도 아직은 경솔한 단정을 할 수는 없다. 연전에 영국 런던에서 대표적 한국 미술전이 열렸을 때 영국 신문들은 오히려 한국 그림들의 특색과 우수성을 찬미해서 『타임』지는 '이번 전시회 중에서 가장 감명을 주는 것은 회화들이다'라고 전제하고 '누구나 여기에서 한국 그림의 특징을 찾아 낼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구 전통에도 나타나는 바와 같은 그 나라 풍토양식이 거의 완전무결하게 갖추어진 그림들에 마주치게 된다. 정선 필의 인왕제색도 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라고 했으며 「맨체스터 가디안」지는 '런던에서 오늘 열리는 한국 고미술 전시처럼 오랫동안 고대한 미술 전시는 일찍이 없었다'고 전제하고 나서 '중국 회화의 특징인 엄숙으로부터 순진으로 이탈한 한국의 회화는 이번 전시회를 당당하게 지배했다'고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한국의 회화는 중국 그림에서나 일본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야릇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기교를 넘어선 방심의 아름다움, 때로는 조야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소산한 감각은 한국 회화의 좋은 작품 위에 항상 소탈한 아름다움으로 곁들여진 정취를 돋우어 준다고 할까. 정선·이암·이정·조속·신세림·신사임당·김수철·김홍도·김정희·임희지·최북 등 역대의 작가 속에서 우리는 공통적인 소방과 야일, 생략과 해학미 등 독자적인 감각을 간취할 수 있다. 이러한 미의 계보는 장식적으로 발달한 일본적인 그림이나 권위에 찬 중국 그림과 좋은 대조가 되는 것이며 도자 공예에 나타나는 한국미의 계열은 이러한 조선 회화의 미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것으로써 한국 그림의 아름다움을 요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쉽게 설명하기 힘든 해학적인 일종의 조선적 운치가 말하자면 현대의 추상화가를 뺨칠 만치 멋진 추상을 항아리 장식 그림으로 욕심없이 그려낸 무명 도공들의 조형정신이, 그리고 일본인들이 풍상(風尙)하는 한국 민요산(民窯産)의 서민적 용기들, 즉 다완의 풍류미를 창조한 조형감각같은 것이 무심하게 조선시대화가들 가슴속에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한국의 아름다움은 일찍이 삼국시대의 조각 작품에서 그 독자적인 감각을 드러내 주었다. 일본 경도의 광륭사에 있는 목조 미륵보살반가상의 원만한 자태, 그리고 나라 법륭사에 있는 백제 관음의 신비로운 아름다음은 일본인들로 하여금 사심없이 무조건 그 앞에 꿇어앉아 이마를 조아리게 한 위대한 한국의 정신이다. 권력이나 총칼을 가지고는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신기한 사상(事象)이 이 백제 관음 앞에서는 이미 천 수백 년 이래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바로 한국미의 권화(權化)이다. 이 조각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조각의 아름다움을 그들은 아직 가져 보지도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그들의 신이다. 이 신의 정체는 백제의 조각가였다. 물어 뽑은 듯한 늘씬한 아름다움은 중국에도 일본에도 다시는 없다. 이것이 백제의 아름다움, 말을 바꾸면 지고 지순한 한국 고대미의 실존이다.
  
신라라는 나라는 야무진 화강석을 사뭇 떡주무르듯한 나라였다. 경주박물관에 놓여진 가지가지 돌조각들, 그 중에서도 내남리 출토의 석조삼존불의 부드럽고 욕심없는 미소를 보자. 이것이 신라의 돌의 예술이다.
석굴암의 조각들 그리고 덕수궁미술관의 금동반가상, 국립박물관의 금동반가상, 이것은 줄기찬 한국미의 의지, 이처럼 숭고하게 이처럼 신비롭게 외국 양식을 세련으로 이끌 수 있었던 한국인의 의지를 소중히 해야만 되겠다.
고졸의 미와 추상의 미가 멋진 해화를 이룬 한국 고대의 조각가들은 너무나 고고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과거의 나라가 아니다. 면면히 전통을 이어 온, 그리고 아직도 젊은 나라다. 미술은 망하지도 죽지도 않았으며 과거의 미술이 아니라 아직도 씩씩한 맥박이 뛰고 있는 살아 있는 미술이다.

최순우,《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