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고분의 벽화 - 김원룡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5-03    조회 : 2389
거창(居昌)은 소백산맥과 거기서 동남으로 뻗는 가야지맥(伽倻支脈)에 둘러싸인 문자 그대로 산간 벽지이며, 밖으로 통하려면 황강(黃江)을 타고 협천(陜川)-낙동강으로 나가는 길과 남강(南江)을 이용해 산청(山淸). 진주(晋州)로 빠지는 남로(南路)의 둘이 있을 뿐이다. 일견해서 교통이 불편한 벽지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지리(地利) 때문에 일찍부터 여기에 토착세력이 생겨 있었던 모양이며, 삼국시대의 고분들이 이 부근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고 이번에 발견된 고려 고분군도 그러한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 벽화고분이 발견된 곳은 거창군 남하면(南下面) 둔마리(屯馬里)의 속칭 석장(石葬)골이며, 거창읍에서 약 6km동북쪽의 산중이다. 이 둔마리는 북쪽에 소백산맥 가야지맥에서 뻗어오는 산줄기가 바싹 다가서는 산촌이며 문제의 석장골은 그러한 산꼬리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벽화고분의 자세한 구조에 대해서는 이 글이 보고서가 아니기 때문에 생략하지만 고분은 풍화된 화강암반을 파내고 그 안에 큼직큼직한 화강암 판석으로 두 개의 남북장축(南北長軸)의 장방형 석곽을 병치한 다음 그 위에 봉토를 씌운 것이며, 봉토의 기부(基部)를 판석호석(板石護石)으로 둘러싼 것이 특이하다.
이 두 개의 석실 중 동곽에는 동벽에 다섯 명, 서벽에 한 명의 천녀상(天女像)이 각각 채색으로 그려 있으나 유물이나 목관의 흔적은 하나도 없고, 서곽에는 그림은 없으나 목관이 대파된 채 들어 있었고, 두개골*대퇴골 등이 도굴자의 토족(土足)으로 사산(四散)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석곽은 두 개의 독립곽이며 원래 합장용(合葬用)인 것이 어떠한 이유로 단장(單葬)으로 끝난 모양이다.
실지로 석곽마다 앞에는 판석, 밖으로 괴석(塊石)을 쌓아 막아 놓았으며 그 하나하나는 고구려의 우현리(遇賢里) 삼묘(三墓)나 부여 능산리 왕릉에서 보는 따위의 횡구식(橫口式) 상자형 판석실(板石室)과 상통하고 있다 하겠다. 또 호석방형봉토(護石附方形封土)도 불국사 앞의 구정리 방형분(方形墳)을 얼핏 상기시키며 지역적인 연관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호석방형분은 진주시 평거동(平居洞)에 여섯 기가 남아 있으며, 여기에는 호석에 명문이 새겨 있어 그것들이 서기 1079년부터 1229년 사이의 것이고, 피장자(被葬者) 중에는 대장군(大將軍)*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지낸 고관도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거창고분도 대체로 그러한 시기이면서 보다 간소하고 실질적이고, 그만큼 시대가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이와같은 호석방형 고분은 공주 장기면(長岐面)에도 한 기가 있고 그것은 14세기초 것이라고 인정되나 방형분은 영남 특히 경남 지방에 모여 있던 특수형식이고, 그 시대도 11-12세기, 아무리 늦어도 몽고가 침입해서 정부가 강화도로 피난간 1232년보다는 올라가는 것이라고 믿어지는 것이다.
  
끝으로 거창고분의 벽화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는 따위의 설명적인 것은 아니나 색감, 윤곽 등이 활달 원숙하며 시골의 무명 화공의 솜씨가 아니고 큰 사찰에서 보내진 명공(名工)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동실 서벽의 천녀의 경우는 구름 위에 올라앉아 피리를 부는 소녀이며, 미간에는 불상 특유의 백호(白毫)가 박혀 있다. 비천(飛天)의 모습이 삼국이나 신라 것과는 조금 달라서 도교적인 색체가 있는 듯도 하나 역시 근본적으로는 불교의 천상(天像)이라 하겠다. 나로서는 그 홍의청상(紅衣靑裳)이 꼭 고려 복제를 반영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으나 그 장란형(長卵形) 얼굴이나 표정만은 고구려나 백제.신라와는 달라 역시 고려라는  시대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하겠고, 어딘지 현대적이고 비종교적이고, 그만큼 보다 인간적인 면이 있다.
아마 이 벽화고분은 고려 전기에 속하며 그 피장인물(被葬人物)은 개성에 살다가 고향으로 귀장(歸葬)된 고관이고, 이 부근의 몇몇  파괴 고분들은 그를 포함하는 특정한 거창의 향족일가(鄕族一家)의 무덤이라고 생각된다. 이번에 이 고분을 발견한 거창의 향족일가의 무덤이라고 생각된다. 이번에 이 고분을 발견한 거창의 김태순(金泰淳). 최남식(催南植) 두 분이 계속 향토기록이나 구전(口傳)을 탐방해서 이 실명의 거창 명문의 이름을 찾아냈으며 하는 바이다.
우리는 개성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식의 고려 벽화고분이 멀리 거창이라는 산속에서 발견된 것을 기뻐하며, 종래의 수도 중심의 역사 이해 태도를 버리고 앞으로는 보다 넓고 근대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이 아닌가 반성하는 바이다.

김원룡 《한국미의 탐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