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당의 여인 - 최순우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4-25    조회 : 2505
  
혜원의 풍속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확대해 놓고 보면 그대로 보는 것보다 또 다른 매력을 느낄 때가 많다. 그 작고 섬세한 그림 속에서도 그의 정확한 붓끝이 어떻게 움직여 나갔는가를 분명하게 살필 수 있는 것이 우선 신기롭고, 또 그의 연연한 여체 묘사법의 비밀도 알고 보면 단지 헛붓질이나 뇌까림이 없는 싱싱한 붓자국 속에 예삿일처럼 평범하게 감싸여서 이루어졌다는 실감도 느끼게 된다. 이 그림에서는 체구에 비해서 여인의 얼굴이 크게 묘사되었다든가 유난스럽게 큰 트레머리가 좁은 어깨폭에 견주어 과중한 비례를 나타내고 있다든가 하는 표현이 있지만 이것은 확대해 놓고 본 까닭에 그렇게 눈여겨 보이는 것이며, 원촌 그림 그대로 작게 보면 그렇게 과장해서 표현해야만 어여쁜 얼굴이나 나긋나긋한 여체의 아름다음이 자연스럽게 강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 그 비례의 불균형도 눈에 거슬리지 않게 된다.
대개 혜원의 일반 풍속화 소품에 나타나는 인물묘사를 보면 가늘고 긴 기교적인 묘선이나 또는 일부에 점선을 써서 간결하고 매끈한 혜원 풍속화 특유의 분위기를 보인 것이 많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배경과 아울러 인체묘사에 매우 활달하고 흥겨운 필력을 구사해서 그의 일반 풍속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회화적인 효과를 멋지게 거두고 있음이 주목된다. 어느 후원 연당의 정자 뒷마루에 걸터앉아서 그 한손에는 생황, 한 손에는 긴 연죽을 들고 잠시 가벼운 시름에 잠신 듯싶은 맵시의 이 여인은 필시 기생임이 분명하다. 그 앉음새 때문에 치마폭이 거들떠 올라가서 흰 속곳가래가 깊숙이 드러나 보이는 표현은 아마도 그러한 사회의 여인들만이 지니는 생태를 너무나 잘 아는 혜원이 아니고는 좀처럼 그리기 어려운 여인의 자세가 아닌가 한다.
치마 아래로 드러나 보이는 백석같이 흰 청정스러운 속곳가래는 그 시대 여인들의 몸단장에서 가장 마음을 써야 할 만큼 남성들의 눈을 그는 매력의 하나였던 것 같고, 혜원도 그러한 것을 즐겨서 표현했으며, 춘향전에서도 광한루 그네터에서 방자가 춘향에게 하는 사설에 이러한 속곳가래를 다룬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외씨 같은 부 발길로 백운 간에 노닐 적에 홍상자락이 펄펄 배방사 속곳가래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 같은 네 살결이 백운 간에 희뜩희뜩 도령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시지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가 잔말 말고 건너가자.”
어쨌든 흰 속곳가래를 이 그림 속에서 작가가 강조하려고 한 것은 그 앉음새로 보나 거기서 풍겨지는 선정적인 분위기를 보아서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왼 다리 속곳가래 옆으로 드리워진 치맛자락도 속곳 주름의 표현과 함께 이 그림에 하나의 미묘한 율동감을 불러일으켜 주고 있으며 여인의 눈은 아마도 초점을 잃고 있는 듯 시선이 먼 곳에 가 있는 듯싶어 보인다. 바로 눈 앞에 무성하게 자라난 연잎 사이에 단 한줄기 탐스럽게 피어 오르는 입 다문 분홍색 연꽃 봉오리의 존재는 이 젊고 아리따운 여인의 인상과 상대하는 것으로 작가가 노린 또 하나의 초점일 것이다. 칠흙처럼 검고 윤나는 큰트레머리의 펑퍼짐하고 탐스러운 맵시 속에 이 여인의 젊고 건강한 자랑이 쏠려 있다고 할까.
어쨌든 오른귀 귓전에 달린 자주빛 댕기의 아기자기한 태와 함께 작가 혜원은 젊은 즐거움의 상징을 함초롬히 연분황색 연꽃 봉오리 속에 담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