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기행의 일절 (1) - 고유섭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4-11    조회 : 2803
  
1. 청산에 홀로 떠보자

고요한 마음과 매인 데 없는 몸으로 靑山엘 홀로 거닐어 보자. 蒼海에 홀로 떠 보자. 가다가 며칠이라도 머물러 보고 싫증이 나거든 돌아서도 보고, 繁華함이 싫거든 漁村山舍에서 寂廖한 꿈도 맺고, 蕭條함이 싫어지면 油頭粉面의 넋두리도 들어 보자. 길가에 꿇어앉아 마음놓고 仰天大笑도 하여 보고 大笑하다 싱겁거든 달음질도 주어보자. 시냇물이 맑거들랑 옷 입은 채로 건너도 보고 길가의 落磊松이 멋있어 보이거든 어루만져 읊어도 보자. 假面의 禮節은 惡魔에게 덜어 주고 싱거운 수식은 俗漢에게 물려주어 내 멋대로 天眞히 뛰어 보자. 苟且한 生에 악착스럽지도 말고 비겁한 自棄에서 敗亡치도 말고 내 멋대로 純眞히 노래해 보자―하면서도 저문 날에 들 집이 없고 무거운 안개에 등불이 沌濁해질 때 스스로 나그네의 哀傷은 뜬다.
車를 타자. 너도 타고 나도 타자. 하필 다름질을 주어 어수선한 이 세상을 더욱 어수선케 만들 것이 무엇이냐. 고달픈 몸이라 너도 눕고 싶겠거든 하물며 옆사람이 깊이 든 잠결에 몸집이 실린다고 짜증을 낼 것은 무엇이냐. 잠이란 시렁 위에 앉으려므나. 자리밑에 넣으려므나. 내 자리도 넓어지고 옆사람도 편켔거늘 무엇이 그리들 잘났다고 그 큰짐을 牛馬같이 兩脇에 끼어안고 네 세상같이 버티느냐. 이 소같이 우둔한 사람들아 차가 굴속에 들지 않느냐. 그 무서운 毒瓦斯 같은 石炭煉煤가 몰려 쏟히는데 窒息치도 않고 저대도록 있느냐. 담배들도 그만 피우라 내 눈이 乾魚 같아진다. 이 촌 마누라여 그대에게는 흙 묻고 때묻은 그 누더기 솜버선이 귀중키는 하겠지만 나의 코앞에 대고 벗어 털을 것이 무엇인고. '「미이라」같은 그 발맵시도 가련킨 하지만 보기 곧 진실로 싫구려 ――목초마도 아깝긴 하지만 그 더러운 속옷만은 제발 덮어두오. 아아 여행하거들랑 車도 타지 마라.
東海中部線은 옛날의 당나귀걸음같이 제법 빨라졌다. 東村은 大丘之東村의 뜻인가. 그보다도 어스름 달빛 아래 半夜月을 지나고 大川을 끼고 도니 淸泉·河陽·琴湖·永川·林浦 ―모두 그 이름이 좋다. 날이 밝기 시작하니 溪邊喬松이 군데군데 一景이요. 아침 안개가 滿野에 흩어지니 遠山峰岫가 바다에 뜬 듯 ―― 게다가 朝暾이 玄芎을 물들이니 彩雲이 빛나서 阿火驛이라. 乾川光明에 이를수록 차는 자갈돌의 벌판을 달리고 해는 높아진다. 저 건너 저 楊柳村溪邊에 번듯이 보이는 瓦屋淸舍는 옛적에 본 법하지만 물어 알 곳이 없고 陽地에 起伏된 山脈은 北國山脈의 峻?한 맛이 전혀 없다. 들판엔 竹林이 우거져 있고 山판엔 松杉이 무성하여 옛적의 蕭颯띤 풍경은 가셔졌지만 차에 오르내리는 生徒의 村民의 窮狀은 흙 묻은 갈치요 절여진 고등어떼들이다, 아아.
  

  2. 西岳은 慶州의 西山이니

西岳은 경주의 西山이니 차창에서 내다보이기 시작하는 古墳의 떼를, 平地의 廣野의 古墳의 떼를 놀라이 여기지 마라. 漢武의 故知를 본받아 西山落照에 울부지려 함이 아니었겠고 彌陀淨土의 西方極樂을 좇으려 함이 아니었겠지만 경주의 고분은 서악에 펼쳐져 있다. 南山, 北邙, 東嶺엔들 고분이 어찌 없으랴만 신라의 고분은 서악에 있다 하노니 이 무슨 뜻인가 의심치 마라. 新羅佛敎文化의 創始定礎를 이루고, 新羅國家의 覇氣를 보이던 法興, 眞興, 眞智 諸王의 陵이 이 서악에 있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武烈의 능을 비롯하여 金仁問, 金陽, 金庾信 등 勳官의 墓가 이 곳에 몰려 있으니 서악이 어찌 이 경주의 고분을 대표하는 지대라 아니하랴. 鳳凰台 이남의 圓墳?瓢形墳, 九政里의 方形墳 등이 고고학적로 귀중치 아니함이 아니라 서악의 諸墳과 그 뜻을 달리한다.
車는 경주로 달린다. 산 같은 고분은 민가와 함께 셋넷 하나둘 사이좋게 섞여 있다. 南에도 고분, 北에도 고분, 차는 고분을 바라보고 고분을 끼고 고분을 돌고 고분을 뚫고 달린다―달린다. 머리 벗겨진 고분, 허리 끊어진 고분, 다리 끊어진 고분, 팔 끊어진 고분, 경주인은 고분과 함께 살림하고 있다. 헐어진 고분은 자갈돌의 沙汰이다. 자갈돌의 沙汰―고분의 沙汰―돌무덤의 바다―차를 내려 거닐어 보아라.
  
길에도 논에도 밭에도 두렁에도 집터에도 담에도 벽에도 냇가에도 돌, 돌, 돌―진실로 경주는 돌의 나라이니 돌은 곧 경주이다. 海州의 石多가 유명하지만 경주의 多石도 그에 못지않는다. 다만 해주의 돌들은 潮風에 抗爭하고 潮風에 시달린 騷颯한 돌들이지만, 경주의 돌은 문화를 가진 돌이요 說話를 가진 돌이요 傳說을 가진 돌이요 歷史를 가진 돌이다. 경주에서 문화를 빼고 신라에서 역사를 빼려거든 경주의 돌을 모두 없이 하여라.



《고유섭 전집4》 중 발췌하였습니다. 다음 주에 이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