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화판 - 예용해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3-22    조회 : 4517
  
무늬나 글씨를 종이나 천이나 음식물에 옮겨서 그것들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했던 판목으로서 능화판, 책판, 전지판, 간지판, 보판, 금박판, 수본판, 다식판, 떡살 따위를 들 수가 있다. 이 판목들은 쓰임에 따라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것이나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차분하게 가라앉고 섬세한 정성이 구석구석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은 능화판이다.
능화판은 때로 채화판이라고도 불리는데 옛날 한지로 만든 책의 표지에 은은한 무늬를 아로새기는 데에 쓰였던, 글씨와 온갖 무늬가 새겨진 널판이다. 우리나라의 책은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거의 권사본이라고 불리던 두루마리 모양의 것이었다. 그러다가 고려말에 이르러 비로소 책이 찍혀나오게 되었고, 따라서 능화판도 그 무렵부터 생겨나게 되었다.
판목에 글씨를 거꾸로 새겨서 그것으로 책을 박아내는 인쇄술은 본디 중국에서 발명되었다고는 하나 그 연대가 정확하게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말이 구구한 형편이다.
우리나라에 목판본이 흔하게 나돌게 되는 때는 고려말 무렵인데 이와 같은 목판본의 일반화는 송나라로부터 목판본을 들여오게 된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 무렵에 가장 규모가 크고 힘이 든 목판인쇄는 세 차례에 걸친 대장경의 간행이었고, 오늘날에도 경남 합천 해인사가 갊은 팔만대장경만 보아도 그 거룩한 자취를 알 수가 있다. 절에서 찍어낸 책은 사찰판이라고 불리고 관청에서 낸 책은 관판이라고 불리며, 여염집에서 박은 것은 가판이라 이르고 서원에서 낸 것은 서원판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독자들의 수요에 따라 판매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책은 방각판이라고 한다.
이렇게 여러 갈래로 여러 가지 책들이 흔하게 나돌게 되었으나 우리나라의 책은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의 것들과는 다른 특색을 지녔다. 그것은 책 표지에 능화판으로 무늬를 박은 점과, 중국과 일본은 책을 꿰매는 바늘구멍이 넷인데 비해 우리는 다섯인 점과 책장 갈피 한가운데에 어미가 다른 점들이다.
우리 책을 이웃 나라의 책들과는 다르게 특색지으면서 아름다움을 더하여준 능화판이 어느 무렵부터 쓰이게 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은 아직 없다. 짐작컨대 고려본이나 오랜 책들에서 연꽃무늬와 완자무늬를 흔히 볼 수 있으니. 아마도 절에서 불경을 펴내면서 그 책들을 장엄하게 가꾸기 위해서 책의 표지에 능화판으로 불교의 가르침과 관련이 깊은 무늬들을 새겨 넣기 시작했던 것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와 같은 능화판을 마련하는 데는 솜씨가 빼어난 각수와 나이테가 고르고 옹이가 없으며 그러면서도 칼을 잘 받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능화판에 걸맞는 나무로는 배나무, 거제도나 울릉도에서 자란 거제수나 감나무들을 꼽는다.
이들 나무를 가을이나 겨울에 베어 몇 해를 두고 바다나 웅덩이 같은 곳에 띄워서 진을 뺀 다음에 좀이나 벌레가 쏠지 않게 하기 위해서 소금물에 삶아낸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또 몇 해를 두고 그늘에서 비와 이슬과 바람을 쏘여 결을 삭혀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트집이 없이 견딜 수 있도록 한 다음에야 비로소 켜서 쓰게 된다.
널을 알맞게 잘라서 까뀌로 다듬고 대패로 밀어서 그 바탕에 화공들이 그린 본을 뒤집어서 붙인다. 화공들이 백지에 그린 화본이 두꺼워서 본의 그림이 잘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밥풀을 이긴 풀손으로 종이켜를 벗겨내어 잘 비치도록 한다. 그런 다음에 각수는 편도와 각도로 돋을새김을 한다. 각을 할 때에는 판목을 책상 위에 놓고 앉아서 한다.
능화판으로 책의 표지를 박을 때는 먼저 괴화나무나 치자로 종이에 노랑물을 들이거나 쪽물로 파랑물을 들인 다음에 대여섯 장을 된풀로 붙여서 부한다. 그 다음에 능화판 표면에 밀칠을 하여 거기에 부한 종이를 대고는 맨질맨질한 뺀댓돌로 밀어서 무늬를 옮기기도 하고 종이를 올려놓고 말총으로 만든 털방망이에 밀을 묻혀 그것으로 밀어 무늬를 올리기도 한다.
능화판의 생김새는 긴네모꼴이 가장 흔하며, 긴 변의 길이와 짧은 변의 길이의 평균치는 65cm와 25cm이고, 긴 변과 짧은 변의 비례는 2.5대 1로 볼 수가 있겠으며, 두께는 3cm에서 10cm까지 있어서 다양하다.
그러나 참으로 다양한 것은 능화판목의 크기와 두께가 아니라 바탕에 아로새겨진 무늬이다. 가장 흔한 무늬로는 한 가지 무늬만을 아래 위와 좌우로 연접시켜서 기하하적인 무늬로 바탕의 효과를 낸 것이다. 이를테면 점, 선, 완자, 마름모, 거북, 뇌문, 아자, 고리, 네모, 태평화, 여덞모, 영롱, 그물, 물결, 돗자리, 구름, 당초, 초화문의 따위를 꼭 같은 크기로 때로는 크고 때로는 작게 얼려서 전체의 면을 채운 것이다.
또 위의 무늬들을 홑으로 쓸 경우가 있고 겹으로 할 경우가 있는데, 이런 바탕 무늬에만 만족하지 않고 거기까지 얼러서 정교한 솜씨로 화려함을 더한 것도 있다. 겹마름모꼴의 바탕 무늬가 자잘하게 이어진 속에 태평화를 새기고 그 군데군데에 알맞게 둥근 난간을 돌리고 난간 원 안에 한 쌍의 봉황이 탐스레 피어난 모란을 끼고 있는 정경이 그려진 것이 있는가 하면, 가없이 굽이치는 물결 속에 연꽃이 점점이 피어 있는 것도 있고, 완자무늬의 바다 속에 연잎과 연꽆이 서로 어루러져 있는 것도 있고, 겹국당초로만 판면을 뒤덮게 한 것도 있다.
시대에 따라, 또 그것을 만든 사람에 따라 아름다움을 표현한 방법과 무늬는 제가끔이었어도 책을 볼품 있게 감싸고자 했던 마음씨는 한결같다. 이런 마음씨 앞에서는 정작 무늬의 더 아름답고 덜 아름다움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한 치의 에누리도 찾아볼 수 없는 정성이 그대로 판면에 어리어 아름다움을 한결같게 할 뿐이다.
  
개인의 정성들은 이러하였거늘 속절없기는 시대의 상황이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을 겪기 전의 능화판의 꾸밈새나 책의 활자나 종이의 질들이 튼튼하고 힘차고 짜임새를 갖추었는 데 견주어서 한번 난을 치르고 난 뒤의 능화판이나 책의 활자나 종이의 질은 엉성하고 맥빠지고 초라해진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그러다가 난의 상처가 가시고 나라에 힘이 생기고 여염에 부와 문화의 축적이 쌓이게 되는 영?정조시대의 중흥기를 맞으면서 능화판의 무늬와 책의 활자와 종이의 질은 새로이 기름지고 힘을 되찾게 된다. 사람이 시대와 역사의 임자이면서도 결코 역사와 시대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모처럼 능화판의 얘기가 나온 김에 우리나라의 옛날 책을 알아보자. 겉모습으로 나누어보면 권자본, 첩장본, 선풍장본, 호접장본, 포배장본, 선장본 같은 것이 있겠고 또 활자로는 1403년에 나온 계미자를 비롯하여 1420년에 나온 갑진자, 1605년에 나온 훈현도감자, 1782년에 나온 한구자, 1795년에 나온 정리자, 1820년에 나온 전사자의 아홉가지가 있다.
활자본과 목판본의 차이를 알아보자. 목판본은 계선이 끊긴 데가 많고 어미와 계선이 붙어 있으며 글자의 모양과 획이 고르지 않고 글씨와 계선이 붙어 있으며 글씨의 놓인 자리가 꽤 가지런하다. 다른 한편으로 활자본은 계선이 여러 군데 끊이지 않았으나 삐뚤삐뚤하고 어미와 계선은 떨어져 있으며 글씨의 모양과 획이 같고 글씨와 계선은 떨어져 있으며 글씨가 거꾸로 박힌 예가 가끔 있다. 목판본이나 활자본은 다 같이 능화판으로 무늬를 새긴 책표지 ―우리나라의 한자 표기로는 책이 입는 옷이라 하여 책의(冊衣)라 적는다―를 겉에 두른 다음에 실로 매어진다. 누런색의 책표지에는 붉은 끈을, 흰색 표지에는 푸른 끈을, 쪽빛 표지에는 흰 끈을 매는 것이 상식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능화판 가운데 극히 드물게 어느 해에 만들었다는 글씨가 새겨진 것이 있으나 그것도 책을 발행한 때를 가리키는 간기 연대가 대부분이어서 절대 연대를 가리기가 어렵게 되어 있고, 또 절대 연대를 알 수 있다고 해도 능화판은 이 책 저 책에 쓸 수 있어서 능화판의 제작 연대와 책의 간기 연대가 같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들 때문에, 선인들이 소중히 아끼던 능화판의 편년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능화판이나 책판이 상할 것을 두려워하여 동지와 입춘 사이의 추위와, 하지와 처서 사이의 한더위 속에서는 사용을 삼갔다.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유산을 우리 세대는 편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 하겠다.

                                                              (1977년 10월)

《예용해 전집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