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담 - 예용해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3-07    조회 : 3118
담은 담장이라고도 불리고 울이나 울타리라고도 불린다. 담은 사람이 제 권속을 지키려고 또 한 마을과 한 종족이 그의 보금자리와 터전을 밖으로부터의 위기에서 지키려고 마련한 구조물이다.
담에는 흙을 다져 올린 토담이 있고 돌만 쌓은 강담이 있는가 하면,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흙돌담이 있고 흙과 기왓장을 엇바꾸어 쌓은 흙기와담도 있다. 또 흙이나 돌, 기왓장을 쓰지 않고 가지가 조밀한 개나리, 싸리, 탱자를 산 채로 심어서 울타리로 삼은 것도 있고 싸리, 조릿대, 대, 둥글목, 널 따위를 두른 울타리도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장 손이 많이 가고 품이 많이 먹히는 것이 사고석담과 꽃담이다.
  
꽃담은 벽돌과 삼물로 이루어진다. 벽돌이라고 하면 흔히 요즘 건축에 쓰이고 있는 긴네모꼴의 서양식 벽돌 곧 연와를 연상하기 쉬우나 여기서 말하는 벽돌이란 황토나 찰흙을 곱게 수비하여 기왓가마에서 구워낸 재래식 전을 말한다. 황토로 만든 벽돌은 붉고 찰흙으로 만든 벽돌은 검거나 잿빛이 나는데 이 두 가지 빛깔의 벽돌은 생김새에 따라 반전, 방전, 반방전, 소방전, 벽, 벽전 따위로 나누어져서 그때 그때의 쓰임새에 따라 만들어 졌다.
삼물은 벽돌과 벽돌 사이를 메우는 데에 쓰이는데 백토와 강회와 모래를 알맞게 섞어서 물을 부어 이겨 만든다. 그래서 꽃담은 붉은빛과 검거나 잿빛을 띤 것에 삼물까지 끼워 세 가지 빛깔이 조화되기도 하고 대비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무늬의 효과를 낸다. 이를테면 붉고 검고 흰 세 가지 빛깔이 얼리거나 검은빛과 흰빛이 또는 붉은빛과 흰빛이 짝을 짓게 되는데, 어느 꽃담에서도 흰빛이 빠지지 않는 것은 꽃담을 쌓아 올리는 데에는 삼물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꽃담은 대체로 궁궐, 절, 사랑, 재실, 여염집 할 것 없이 눈에 많이 뜨이는 집의 담으로 이용되었다. 이를테면 겉담은 여느 흙돌담으로 쌓고 안뜰 앞담에만 꽃담을 돌린다든가 또는 궁궐의 경우에 바깥담은 사고석으로 쌓되 일생 동안 생활공간이 되는 건물의 앞담은 꽃담으로 하는 수가 많았다.
그러나 꽃담의 솜씨는 반드시 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연가(煙家)나 합각(合閣)도 꽃담으로 꾸며지는 수가 있었다. 연가는 몸체에서 떨어져나가 따로 세워진 굴뚝을 이르는 말이고, 합각은 팔작지붕의 모서리에 생기는 세모꼴의 빈 칸을 말하는 것이다.
지붕의 형태에는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및 모지붕이 있는데 합각은 팔작지붕의 용마루를 중심으로 하여 앞뒤로 내림마루가 뻗은 부분으로 여기의 빈 칸을 벽돌이나 기와로 꽃담을 해서 막았다. 이처럼 연가의 경우와 더불어 꽃담이 담의 구실만 하지는 않았으나, 다만 담으로 많이 쓰인 까닭으로 꽃담으로 통칭되어 왔을 뿐이다.
한말로 꽃담이라 하여도 거기에 쓰인 무늬가 수없이 많고, 이처럼 많은 무늬 하나하나는 아름다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사람들의 애틋한 바람이 깃들어 있다.
먼저 꽃담에 어떤 무늬가 있는지를 알아보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곧은무늬이다. 곧은무늬에는 세로무늬와 가로무늬가 있다. 가로의 곧은무늬 가운데도 같은 길이와 높이의 벽돌을 한 돌금 놓고 그 사이에 심물을 바른 다음에 아랫돌금의 벽돌 이음새 위에 윗돌금 벽돌의 한가운데 허리가 얹히도록, 곧 가로는 가지런하되 세로의 이음새는 엇비키게 하고 또 그 윗돌금은 한 돌금 건넌 돌금과 세로의 이음금이 맞도록 쌓아 올라가는 것이 있고, 벽돌과 벽돌의 아래위 돌금만 삼물로 세우고 옆으로는 벽돌만으로 맞닿게 하는 쌓임이 있고, 또 벽돌의 길고 짧은 것을 엇바꾸어 보기에 변화를 둔 것도 있다.
이렇게 가로의 무늬와 함께 세로의 곧은무늬도 썼으니 벽돌을 쌓고 삼물로 메우는 방법은 가로와 같다.
위와 가로와 세로의 두 무늬를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응용한 온갖 무늬가 짜여지니, 이를테면 꽃담의 면을 한 폭의 그림으로 보고 벽면의 가장자리는 아자·희자·뇌문 따위로 난간을 두르고 가운데 공간에 마치 민화의 한 폭을 꾸미듯이 한 것도 있고, 물형 대신에 기하학적인 무늬로 메운 것도 있다.
위의 곧은무늬와 함께 둥근무늬도 아울러 쓰인다. 꽃담에 쓰이는 둥근무늬는 벽돌을 통째로 둥글게 굽기도 하고 수키와처럼 굽은 것을 둥글게 이어 원이 되도록 하여 물결무늬도 만들고, 반고리무늬로 구워서 그것을 가로 한 장은 엎어놓고 그 다음 장은 자빠지게 하여 연속적인 무늬로 하기도 했다.
이렇게 벽돌은 네모꼴, 긴네모꼴, 둥근꼴로 굽기도 하거니와 네모나거나 둥근 공간에 박을 꽃무늬는 처음부터 꽃모양으로 굽기도 했고 꽃술 부분은 칼로 파기도 했다. 모서리를 죽이거나 깍기 위해서는 줄로 쓸기도 했다. 그래 가지고 담벼락에 길상무늬도 놓고 벽사무늬도 아로새겼다.
길상무늬에는 십장생이 있고, 국화에 나비가 앉은 것, 쌍학이 천도를 맞잡아 문 것, 바위 위에 석류나무가 솟아 가지마다에 탐스런 석류가 영근 것, 고목 등걸에 매화가지가 뻗어 거기 꽃이 피고 망울졌는데 한 마리 새가 날아든 것 따위가 있다. 또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이 피어난 곳에 범나비 한 쌍이 머물고, 가지와 잎이 검고 꽆은 붉은 진달래가 봄 아닌 사시를 두고 피어나 있기도 하다.
  
그 뿐만 아니라 당초 덩굴이 끝없이 휘감기고 잔잔한 물결 위에 한 쌍의 원앙새가 뜨고 거기 연잎과 연봉과 연꽃의 줄기줄기가 뻗어올라 어우러졌는데, 또 다른 한 쌍의 새가 연줄기에 높고 얕게 마주앉아 재잘거리건만 어인 일인지 외떨어진 한 마리의 새는 어디서인지 날아들고 있는 형용을 한 것도 있다. 이밖에 꽃담에서 볼 수 있는 길상무늬로는 덩굴과 잎새 사이에 탐스럽게 준저리준저리 영근 포도가 있고 박쥐무늬도 있다.
길상을 바라는 마음이 반드시 무늬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글씨를 무늬로 아로새긴 기법도 있다. 길상문자로는 누구나가 바라는 수, 복, 강, 녕이 있고 부, 귀, 다남자가 있으며 천추만세, 부귀영화와 강, 낙, 녕, 복 따위가 있다.
곧은무늬와 둥근무늬를 반복한 기하학적인 무늬와 십장생을 위시한 길상무늬와 더불어 많이 쓰인 것에 벽사무늬가 있다. 옛사람들은 벽사무늬가 집 안팎의 안식을 해치려드는 도적이나 짐승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들 말고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허공계를 떠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리접히는 오만 잡귀신을 쫓는 구실을 한다고 믿었으므로 그 무늬를 넣어 꽃담을 쌓았다.
벽사무늬는 사람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스리고 간잔지런하게 해주어야 했으므로 실제의 것도 있기는 하나 그보다는 상상의 세계의 것이 더 많다. 가장 흔하게 보는 것이 용과 해태와 봉황이고 다음으로 막과 귀면이 있으며 어저다가 용, 거북, 봉황과 함께 네 가지 영물로 불리는 기린도 볼 수 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꽃담 가운데서 가장 섬세하고 여러 가지 무늬를 두루 아로새긴 것으로는 경복궁 안에 곤전으로 쓰이던 자경전 뒤뜰의 연가이다. 이 연가는 길이가 380.7cm이고 높이가 283.5cm로써, 높이가 16cm인 화강석 기단 위에 벽돌을 쌓아 담을 만들었다.
  

그 담벼락을 세 구획으로 나누어 가장 높은 데에 새 개의 긴네모꼴 벽돌을 박고 그 가운데에 십장생을 포함한 여러 무늬를 놓았으며, 아래쪽에도 긴네모꼴 벽돌을 박되 위와 아래 구획의 벽돌에는 무늬를 양각하였다. 곧, 위쪽의 벽돌에는 불로초를 입에 물과 나는 쌍학이 귀면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였으며, 가운데 구획에는 학·사슴·소나무·대나무·거북·물·바위·불로초·해·달의 십장생과 국화·새·오리·연·초화 따위가 놓여 있어서 그 무늬가 모두 16가지에 이른다. 가장 아래 구획에는 불과 쇠를 먹고 산다는 상상 속의 짐승인 막이 돋을무늬로 새겨진 벽돌을 끼웠으나 오랜 세월에 부스러져 보기에 민망하다.
그러나 이제는 이처럼 아름다운 꽃담을 꾸밀 수 있는 솜씨가 끊어지다시피 했다. 꽃담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한옥을 지을 수 있는 다른 솜씨들, 이를테면 대목·소목·기와장이·미장이 할 것 없이 씨가 말라가고 있다. 게다가 기왕 있는 전통의 담조차 허물어져가고 있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1979년 3월)

-《예용해전집2, 민중의 유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