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 - 예용해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2-28    조회 : 4268
정초에 남녀노소가 더불어 즐기는 놀이에 윷이 있다. 윷은 29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말판을 펴놓고 두셋이서 놀 수도 있고 열 명쯤이 서로 편을 갈라서 놀 수도 있는 우리의 고유한 놀이이다.
  
말판은 등잔 나무받침에 붓으로 그리거나 끌로 파서 만들기도 하고, 두꺼운 대각지에 그려서 기름을 먹여 쓰기도 한다. 또 네모꼴의 한 변에 저마다 다섯 개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대각선을 그려 두 개씩의 동그라미를 그려넣은 말판은 대청이나 방에서 윷을 놀때에 쓰고, 뜰에서 윷놀이를 할 때에는 덕석이나 멍석에 하나 가득히 주먹만하게 먹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서 쓴다.
먼저 윷짝으로 던져서 누가 또 어느 편이 윳을 먼저 놀 것인지를 정한 다음에 바른편으로 돌아가면서 놀게 된다. 네모난 윷판의 바른쪽 아래 귀퉁이 동그라미가 첫밭도 되고 또 날밭도 된다. 말은 혼자서 또는 편을 갈랐을 때에 한 편에서 네 마리를 쓸 수가 있으며 이것이 먼저 다 나야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저마다의 말을 알아보기 쉽게 하려고 옹기 사금파리나 사기 사금파리로 말을 만들거나 색종이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윷은 모두 네 짝인데 네 짝이 모두 엎어진 것이 ‘모’로서 이렇게 되면 다섯밭을 갈 수 있고, 모두 자빠진 것이 ‘윷’인데 이렇게 되면 네 밭을 갈 수가 있다. 세 짝이 엎어지고 한 짝이 자빠진 것은 ‘도’로서 한 밭을 가며, 두 짝씩 저마다 엎어지고 자빠진 것은 ‘개’로서 두 밭을 가며, 한 짝만 자빠지고 세 짝이 엎어진 것은 ‘걸’이라 하여 세 밭은 간다.
첫밭에 날밭으로 나는 데는 지름길과 둘러서 가는 길이 있는데 가장 가까운 지름길은 다섯 밭인 모에서 말판의 한가운데에 있는 점인 방을 지나 날밭으로 꺾어져 가는 길이며, 그 다음이 방에서 바르게 빠져 나는 길이고, 둘러서 가는 길은 먼밭인 겉둘레를 돌아서 나는 길이다.
또 말이 가는 데는 두 마리나 세 마리 또는 네 마리까지를 한데 동여서 가게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두 번이나 세 번을 눌러서 두 동산이 또는 석 동산이로 만들어 가게 하는 수도 있고, 말이 가다가 상대방의 말을 잡는 수도 있다. 넉 동산이의 경우는 막동 아니면 막동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윷을 이기려면 윷짝을 잘 던져서 상대방의 말을 잡기도 하고 또 지름길을 가기도 해서 막동이 빨리 나도록 해야 하므로 거기에 온갖 솜씨가 곁들여진다. 그래서 윷을 던지는 데도 윷짝을 후리기도 하고 굴리기도 하고 흐시기도 하며 때로는 세차게 던지기도 하고 더러는 약하게 어르기도 하며 재주를 부려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윷짝으로 너무 재주를 부리지 못하게 하느라고 윷짝이 머리 위로 올라가거나 윷이 방석이나 멍석 밖으로 떨어지면 무효로 하는 따위의 금제를 두기도 한다. 밤윷을 놀 때에는 대체로 방석이나 멍석 밖으로 윷짝이 굴러 나가면 무효가 되게 한다.
윷짝을 익숙하게 잘 던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말을 쓰는 일이다. 윷판이 왁자지껄하게 어우러져서 이곳저곳에서 어화지화 환성이 오르고 잇달아 고함이 터져나와도, 말을 쓰는 사람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말을 지름길로 보내기도 하고 먼밭으로 돌리기도 하며 동였다 눌렀다 잡았다 하며 막동이 빨리 날밭을 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윷놀이에 쓰이는 윷의 종류로는 한 뼘 반 안팎의 길쭉한 장작윷과 콩짜개만한 크기의 짤막한 밤윷의 두 가지가 있는데 박달나무나 통싸리나무로 많이 만든다. 윷의 등은 나무껍질을 그대로 두고 배는 대패질로 곱게 하여 엎어진 것과 자빠진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꾸미기 마련인데, 가다가는 먹감나무 등은 검게 배는 희게 다듬기도 하고 나무껍질을 벗기고 거기에 칠을 하거나 낙화를 지져서 표시가 나도록 하기도 했다.
장작윷은 바른손에 가지런히 쥐어서 이마 높이로 던지는 것이 보통인데 윳이나 걸을 얻고자 할 때는 모두어 쥐고 흐시면서 던지기도 한다. 밤윷은 윷이 짧으므로 손아귀에 가지런히 쥘 수가 없어서 사기종지 속에 넣어서 던지기 마련이다.
한창 흥이 오르면 손뼉을 치기도 하고 허리를 잡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며 서로 멱살잡이라도 할 듯이 고래고래 고함을 떠지르다가 금세 덩실대며 춤을 추어보기도 하는 윷놀이의 사이사이에 막걸리가 나오고 이가 시린 동치미가 주발뜨기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다가 밤이 이슥하여 허기를 느끼면 닭장의 닭을 목을 비틀어 잡아먹으며 기나긴 겨울밤을 흥겹게 보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만 성해왔던 윷놀이는 멀리 신라나 또는 그보다 더 오랜 옛날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에는 윷이 단순히 놀이를 하는 데에만 쓰이지만 옛날에는 놀이에보다도 한 해 농사일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데에 더 긴하게 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곧 옛날에는 정초에 높은 곳에 사는 ‘산농’과 얕은 곳에 터전을 잡은 ‘수향’의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누어서 윷놀이를 하여 이긴 편에 풍년이 드는 것으로 믿었다.
농경사회에서 흉년과 풍년을 점치는 구실을 했던 윷이 유교문화를 받아들인 다음에는 한 해의 신수를 점치는 윷점에 쓰이게 되었다. 섣달 그믐날 밤에나 설날 아침에 윷을 세 번 던져서 그것으로 주역의 괘사와 연결지어 한 해의 운세를 점치는 것이 이른바 윷점이다. 윷점을 칠 때에는 도는 하나, 개는 둘, 걸은 셋, 윷은 넷, 모는 다섯으로 쳐서 세 번 던져서 괘사를 얻어 점을 친다. 윷점의 내용을 보기를 들어 풀이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도도도     아이가 어머니를 만난다.
도도개     쥐가 곳간에 들어간다.
도도걸     한밤중에 촛불을 얻는다.
도도모     파리가 봄을 만난다.
도개도     큰물이 거슬러 흐른다.
도개개     죄가 되려 공이 된다.
도개걸     날파리가 등불을 친다.
도개모     쇠가 불을 만난다.
도걸도     학이 둥지를 잃는다.
도걸개     주린 사람이 먹을 것을 얻는다.
도걸걸     용이 한바다에 들어간다.
도걸모     거북이가 광주리 속에 들어간다.
도모도     나무에 뿌리가 없다.
도모개     죽었다 깬다.
도모걸     떨다가 옷을 얻는다.
도모모     어려운 사람이 보물을 얻는다.
개도모     새가 깃을 잃는다.
개개도     약한 말의 짐이 무겁다.
개개개     학이 하늘에 난다.
개개걸     주린 새가 고기를 얻는다.
개개모     수레에 두 바퀴가 없다.
개걸도     젖먹이가 젖을 얻는다.
개걸개     깊은 병에 약을 얻는다.
개걸걸     나비가 꽃을 만난다.
개걸모     활이 살을 얻는다.
개모도     드문 손님을 절하여 만난다.
개모개     물고기가 물을 잃는다.
개모걸     물 위에 물이랑이 인다.
개모모     용이 여의주를 얻는다.
걸도도     큰 고기가 물을 얻는다.
걸도개     삼복에 부채를 보낸다.
걸도걸     매에 발톱이 없다.
걸도모     구슬을 강물에 던진다.
걸개도     용머리에 뿔이 돋는다.
걸개개     구차하고 천하다.
걸개걸     가난한 선비가 벼슬을 얻는다.
걸개모     고양이가 쥐를 얻는다.
걸걸도     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
걸걸개     소가 꼴과 콩을 얻는다.
걸걸걸     나무에 열매가 열린다.
걸걸모     중이 속인으로 되돌아온다.
걸모도     나그네가 고향집 생각을 한다.
걸모개     말에 안장이 없다.
걸모걸     길잃은 길손이 길을 만난다.
걸모모     풀밭 이슬에 햇빛이 비친다.
모도도     부모가 자식을 얻는다.
모도개     공은 커도 상은 없다.
모도걸     황룡이 개로 들어간다.
모도모     장님이 눈을 뜬다.
모개도     꿈에 불을 본다.
모개개     사람의 손과 팔이 없다.
모개걸     대인을 만난다.
모개모     활에 시위가 없다.
모걸도     귓전에 바람이 인다.
모걸개     아이가 보물을 얻는다.
모걸걸     오랑캐를 만났다가 되려 잃는다.
모걸모     어지럽고 불길하다.
모모도     살 일이 꿈같다.
모모개     물고기가 낚시를 삼킨다.
모모걸     날짐승이 사람을 만난다.
모모모     아우를 얻는다.
  
위와 같이 주역의 예순네 개의 괘사로 윷점을 치는데 이와는 달리 도를 하나, 개를 둘, 모를 셋, 걸을 넷으로 쳐서 괘사로 삼아 한 해의 신수점을 치기도 하나 윷점을 그대로 믿을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윷으로 점을 치는 경우는 드물고 놀기만 하지만 그 놀이마저 어딘지 생기가 가시고 흥청거림과 푸짐함이 퇴색해서 맥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드니 시속의 무엇을 탓해야 할지 알지 못하겠다.
  (1979년 2월)

〈예용해 전집2,《민중의 유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