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은입사정병(高麗銀入絲淨甁) - 김원룡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2-14    조회 : 2760
  
물이 위에서도 나오고 옆에서도 나올 수 있는 이 이상한 병을 우리나라서는 정병(淨甁)이라고 부른다. 불전(佛前) 정수병(淨水甁)이라는 뜻 같은데, 중국에서는 당소병(唐素甁), 감로병(甘露甁), 또는 선잔병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원래 인도에서 사용된 쿤디카(Kundika)라는 불기(佛器)가 동전(東傳)된 것이다. 7세기말에 인도로 간 당승 의정(儀淨)의 실견담(實見談)에 의하면, 위에 있는 구멍은 물을 쏟을 때 쓰고, 어깨의 꼭지는 물을 병에 넣을 때에 썼다고 한다.
이렇게 불기였음이 분명하면서 이 고려청동정병에는 조금도 불교적 색채가 없다. 아니, 없을 뿐만 아니라 여기 은입사로 된 그림에는 조어포조(釣魚捕鳥)의 살생이 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것이 이상하지 않으면 이 정병은 귀족들의 주수(注水)·주주기(注酒器)거나 승려들이 남몰래 마시는 곡차(穀茶) 그릇인지 모른다.
  
침선(沈線)을 파고 거기에 다른 물질을 메워 무늬를 나타내는 입사법(入絲, 象嵌)을 청동정병에 응용한 것도 새로운 착안이지만 도안 자체가 몹시 독창적이다. 수변사구(水邊砂丘)에 수양버들이 서고,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옆에 고려인이 두 사람 - 한 사람은 강물에 뜬 배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다. 배 위에 탄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이 휘두르는 막대기가 오리들을 물로 하늘로 쫓고 있으며, 먼저 달아난 재빠른 놈들은 안전고도에서 편대비행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림의 내용은 살생이지만, 그런 사리는 없고, 마티스의 데생과 같이 자신있고 간결한 은선(銀線)이 시정에 넘치는 추일하오(秋日下午)의 강변을 그려내고 있다.
조그맣고 평범한 공간을 놓치지 않고 가슴속 멋들어진 풍류를 지단기교(指端技巧)로 전개시킨  이 섬세·민감·세련은 신라·조선에서 볼 수 없는 고려 예술의 특색이며, 어떻게 보면 종교미술이었다고 할 수 있는 신라 미술에 비해 여기서는 미술이 일상 생활과 접근 결합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 말하는 생활은 어디까지나 귀족의 그것이며, 흙 묻고 막걸리 젖은 손이 이런 정병을 만져 볼 리 없다.

(김원룡 선생님의 《한국미의 탐구》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