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금동여래입상 -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1-17    조회 : 2632
  
고구려 불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엄숙한 얼굴인지 웃음을 머금은 얼굴인지 잘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다. 그러나 오래 열심히 또 보면 그 엷은 웃음의 뜻과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느껴 알게 된다. 이러한 미소를 미학적으로 '고졸(古拙)의 미소'라고도 부르지만 어쨌든 담담하고도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우리는 먼저 그 미소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미소의 본고장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 맨 먼저 불교를 전해준 중국의 북위시대 불교미술에 있다. 이러한 외국인의 미소를 한국인의 미소로 바꾸기란 누구 한사람의 의욕이나 솜씨만으로는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닐뿐더러 오랜 시간을 두고 민족적인 조형소질을 연마하지 않으면 남의 흉내에만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한 의미로 우리 삼국시대 예술가들은 외국에서 받아들인 이러한 고답적인 아름다움을 재빨리 민족 양식으로 변형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 연가(延嘉) 7년에 만들어진 고구려 금동여래입상의 경우를 보더라도 고구려에 맨 먼저 불교를 전해준 중국의 북위식 불상 양식을 짙게 짙게 간직하고는 있으면서도 비례의 아름다움이나 입체조각을 다룬 솜씨 같은 데서 이미 한국 냄새가 분명하게 풍기고 있음을 볼 수 있고, 따라서 벌써 생경한 남의 미소가 아니요, 우리 것으로 삭여 가는 과정을 역력하게 보여 준 신기한 우리의 미소와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고구려식 불상들이 초기의 백제 불상의 발달에 바탕이 되었으며 한 걸음 나아가서 신라 불상조각의 성립에 밑거름이 되어 준 것이다. 말하자면 현란한 신라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이 이러한 불교의 아름다움이 이러한 고구려 불상 조각가들의 손에서 움텄다는 말이 된다. 완전한 아름다움 같으면서도 어디엔가 좀더 손질이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겨놓고 있고, 또 막상 손을 대려면 어디에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우리 삼국시대의 불상들은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 시대 중국불상들이 지니는 도도한 자세나 엄정한 미소에 비하면 때로는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설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한국의 미소거니 하면 함께 미소지어 보고 싶어진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