含資道摠管柴將軍精舍草堂碑片(2)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7-19    조회 : 2848
(1에서 계속)

비문의 원문과 해석

  비문에는 비의 명칭, 불교와 관계된 신행信行관계, 시장군(시철위)이 정사초당1)을 세웠다는 사실, 시장군과 당 황실과의 관계 및 재능, 신라가 용삭이라는 연호를 받아왔다는 것과 시철위가 함자도행군총관에 제수되었다는 사실, 예맥濊貊(고구려를 지칭)이 신라를 잠식하여 황혁皇赫(황제)이 노하여 장군에게 토벌을 명한다는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비문 원문과 해석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비문 소개】

[원문]

  

 1행 含資道摠管柴將軍精舍草堂之銘  □□(謂)天最身

 2행 乎千日無常百年□□逝川易往風燭難□□□□露

 3행 神納須弥於芥子□□□海水於微塵□內慈□□□

 4행 念興想卽獲善因傾心禮敬受福無量所以先覺之士

 5행 精舍草堂者加林道行軍摠管柴將軍之所造將□□

 6행 武皇帝之外孫    太宗文皇之外甥    皇帝之外

 7행 前基以玆親重又多才藝(祗)奉  明詔鎭壓藩隅□

 8행 杳然瞻望  闕庭長愁養病以今月十一日有新羅使

 9행 元龍朔哲威庸愞蒙授含□道行軍摠管聞之驚喜不

10행 足蹈無由申慶仰憑三寶用□□塵藉此福田冀酬万

11행 區草堂一口庶使法界名僧振錫雲草含靈動植永有

12행 法王自在應變無窮不生不滅非實非空跡宣白馬□

13행 恒多惟彼穢貊蝅食新羅  皇赫斯怒命將受柯(龔)□

14행 望國之□(祝)允文允武溫□知新宿植德本恒脩善□

15행 拱離□□□(願)□(鳥)窮極□□□□眞□□衢面用□

기타 大(㥎)



[해석]

 1행 함자도총관시장군정사초당지명 ……

 2행 천일은 무상하고 백년은 ……하며, 흐르는 냇물은 쉬 가버리고 바람 속 촛불은 ……하기 어렵도다. ……

 3행 수미산은 겨자씨에 들어가고 …… 바닷물은 작은 먼지에…………

 4행 생각을 일으켜 곧 착한 인을 얻고, 마음을 기울여 예경하면 헤아릴 수 없는 복을 받으니 그런 까닭으로 앞서 깨달은 사람들은 ……

 5행 정사초당은 가림도행군총관 시장군이 세운 것이다.

 6행 장(군)은 무황제의 외손이며, 태종문황제의 외생으로 황제의 외척이다.

 7행 앞서 근본(혈연관계, 혹은 태생)이 이와 같아서 깊이 사랑을 받았고, 또한 재주와 기예가 많았다. 공경히 조서를 받들어 변방을 진압하였다.

 8행 아득히 궐정을 우러러보니 시름만 늘어나 병을 길렀다. 이 달 11일 신라 사신이

 9행 용삭을 ……는 것이 있었다. 철위는 평범하고 약함에도 함(자)도행군총관에 몽수되었음을 듣고 놀랍고 기뻐서

10행 경사(함자도행군총관에 몽수된 일)를 펼 방법이 없어서 우러러 삼보에 의지하여 ……을 써 번뇌를 ……하고, 이 복전을 빌어 만복(황제의 크나큰 은혜)을 갚길 바라나니.

11행 ……구와 초당 일구를 무릇 법계의 이름난 승려를 시키니 석장을 떨침에 풀(초당 지붕을 엮을 억새 따위)이 구름처럼 일어나고, 영혼을 머금은 동식물이 영원토록 있다.

12행 부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어 변화에 응하시는 것이 끝이 없으시고, 불생불멸하시며, 비실비공 하나니 자취를 백마에 펴시고 ……

13행 항상 저 예맥이 자주 신라를 잠식하고자 도모하니, 황혁이 이것에 노하여 장수에게 …… 할 것을 명하였다.

14행 …… 문무의 덕을 겸비하였고,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 것을 알며, 오래전부터 덕의 근본을 쌓았고, 항상 선(업)을 닦았다.

15행 …………………………………………………………………………………………………………

* ‘…’은 글자를 판독할 수 없는 부분임.
 

  1행은 이 비의 명칭이고, 2·3·4행은 불교의 사상과 정신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5행에서는 정사초당의 건립자가 가림도행군총관 시장군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6행은 시장군의 가계를 나타낸 것으로, 이를 통해 시장군이 당나라 고종의 외손이며 태종의 외생(누이의 아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7행은 시장군이 가계가 그러하여 깊은 신임을 받았으며, 더욱이 재예才藝도 많아 변방을 진압하라는 조서를 받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8·9행에서는 신라 사신이 용삭이라는 연호를 받아왔음을 문맥을 통해 추정할 수 있고, 또한 시장군이 구체적으로 시철위임을 알려주며, 그가 함자도행군총관에 제수되었다는 내용도 알 수 있다. 특히 이 부분은 입비연대立碑年代를 추측케 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8·9행을 근거로 비가 세워진 시기를 661~663년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10행은 시철위가 정사초당을 세운 이유를 막연하게나마 알려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시철위는 함자도행군총관에 제수된 것을 ‘경사慶事’라고 하면서 황제의 은혜와 기쁨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불법에 의지하고, 또한 황제의 만복을 기원코자 정사초당을 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11행에서는 이와 같은 이유로 이름난 승려名僧를 초대하여 정사초당을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신이적神異的으로 서술되어 있다. 12행은 불교와 관계된 신행관계信行關係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13행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려주는 부분으로 예맥, 즉 고구려가 신라를 자주 침범하자 이에 당나라 황제가 노하여 고구려 원정을 명한다는 내용으로 추정할 수 있다.『삼국사기』를 보면 태종무열왕 8년(661) 5월에 고구려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 장군 생해生偕와 함께 군사를 합하여 술천성述川城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보인다.2) 아마도 ‘항상 저 예맥이 자주 신라를 잠식하고자 도모하니’라는 말은 고구려 장군 뇌음신 등의 술천성 공격 사건 등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더불어 ‘황혁이 이것에 노하여 장수에게 …… 할 것을 명하였다’라는 것은 다음 달, 즉 661년 6월에 당나라에서 숙위하던 김인문 등이 가져온 당나라의 고구려 원정에 신라의 상응을 명하는 황제의 칙명과 관계가 깊다. 결국 이 13행을 통해 백제 멸망 후 한반도 정세를 파악할 수 있으며, 한편으론 정사초당의 건립 시기나 입비연대를 간접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다. 14행은 시철위가 문무를 겸비했으며, 덕이 있다는 등의 성품에 대한 찬사로 추정된다. 15행은 깨진 글자가 많아 추정조차 할 수 없다.

 






1) 정사는 사원의 이칭異稱이며, 초당은 정사에 딸린 부속건물을 지칭하거나 혹은 정사에 소속된 암자에 대한 겸하謙下의 용어로 추측된다.

2) 『삼국사기』 신라본기 5 태종무열왕 8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