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경造像經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5-09-10    조회 : 5229
  『조상경(造像經)』은 불보살상의 조성에 따른 제반의식과 절차에 관한 기록을 모아 체계화한 경전으로, 불상을 조성할 때 필요한 복장의 구성을 밝혀 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의식을 구체화시킨 자료이다.  이러한 내용으로 구성된 현전하는 『조상경(造像經)』에는 1677년의 팔영산(八影山) 능가사본(楞伽寺本), 1746년의 운달산(雲達山) 김룡사본(金龍寺本), 1824년의 금강산(金剛山) 유점사본(楡岾寺本), 1720년의 봉곡산(鳳谷山) 화장사본(華莊寺本) 등 4가지가 있다.  직지사소장 『조상경(造像經)』은 금강산 유점사 개판본이며, 같은 본이 직지사 이외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상(造像) 제작과 불교의 가르침
   깨달음을 얻은 후, 석가모니는 중생(衆生)에 대한 자비심을 발하여 남은 일생을, 설법을 통한 중생 구제(救濟)에 바쳤다.  그렇게 여생을 보낸 석가모니는 이윽고 열반에 들면서 “자기자신을 등불로 삼고[자등명 自燈明], 진리를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법등명 法燈明]”는 한마디만을 슬퍼하는 중생들에게 남겼다.  이를 떠올리면 불교의 여러 조상(造像)이나, 『조상경(造像經)』을 비롯해 조상제작과 관련된 경전은 존재 자체가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어긋난다. 
  그러나 근기(根機)가 낮은 중생들은 수행보다 바로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형상숭배를 선택하는 편이  쉬웠을 것이다.  미혹(迷惑)된 삶을 살아가면서 귓가에서만 맴도는 말보다, 곁에서 늘 함께하는 조상이 나약한 인간들에게 든든한 의지처가 되었으리라. 
  불교에서 석가모니를 조상으로 표현한 것은 석가모니가 열반(涅槃)에 들고도 한참 지나서이며, 대승불교가 흥기(興起)하면서부터이다.  깨달음 이후 석가모니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편력(遍歷)했던 점을 상기하면 이미 석가모니 생전부터 대승불교의 싹이 발아되기 시작했지만, 그가 죽은 후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 근기가 낮은 중생들은 인간 석가모니의 빈자리를 형상(形像)으로 채워 넣었다.  돌 ․ 나무 등의 형이하학적 재료를 통해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던 형이상학적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顯現]이다.  이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그 순간만큼 경이로운 사건이다. 
  그러나 수행을 통한 깨달음이 궁극적인 목적인 불교의 고유한 근본원리는 불교가 조상과 함께 전해지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며 전개되어 선종(禪宗)이라는 대체계를 이루어 내었다.  따라서 조상의 제작은 근기를 달리하는 중생을 위한 방편[他力信仰]이었을 뿐,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自力信仰]이 역시 주된 줄기를 형성하였다.  이는 개개인의 근기에 따라 설법을 달리하신 석가모니의 설법 방식[對機說法]과 다르지 않다.
 
 『조상경(造像經)』의 기원과 전파
  인간의 모습을 한 조상이 제작되면서 구체적인 표현 방법에 대한 고민들도 시작되었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만들어야 깨달은 자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낼 것인가?
  고대의 인도인들은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을 이루면 절대자에게 흡입된다고 믿고 있었으며, 죽은 후에는 이들의 영혼이 우주에 깃들여 신을 만나고, 마침내 스스로 신이 된다는 사고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불교에서 조상을 제작하기 전부터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다만 종교에 따라 표현상 차이나 존상(尊像)의 차이가 날 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석가모니상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이 지니지 않은 요소들을 고안해 내었으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32상(相) 80종호(種好)가 그 중 하나이다.  원래 이것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표현법이었다고 하며, 이밖에도 점차 이상적(理想的)인 신체를 제작하기 위해 비례와 형식에 관한 규범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불교 조상을 제작하는 데 기준이 된 규범은 불교만의 독자적인 체계는 아니며, 이미 자이나교 ․ 힌두교에서 확립된 예술의 원리를 채용한 것이다.  고대 인도 종교의 예술규범서인 실파 사스트라(Śilpa - śāstras)를 비롯한 산스크리트 경전들은 예배상의 표현을 다루면서 신체 각 부분의 비례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신을 제작하기 위한 측량의 예술은 모든 신에 대한 숭배에서 기초하며, 이러한 행위로 인해 죄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예술적인 행위가 죄와 고통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화에 이르게 하는 방편이라는 의미이다.  즉 예술행위와 관련된 규범이 담긴 책을, 우리가 ‘경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격이 갖추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성립된 인도의 『조상경(造像經)』에는 조상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이상적인 형태의 치수나 비례, 구체적인 수치를 적은 도해(圖解)들이 내용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참조 - 그림 1)

  인도의 조상관계 경전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으로 전해졌겠지만, 인도식 신체비례가 구체적으로 거론된 경전으로 현존하는 것은 18세기에 번역된 『조상양도경(造像量度經)』이다.  역경을 한 공포사포(工布査布, Kung-pu-ch'a-pu)는 불상 제작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불상과 보살상 및 그밖의 권속들의 제작에 필요한 구체적인 수치와 비례를 상세하게 적고 그림도 넣었으며, 진언도 첨가하여 경전을 구성하였다. (참조 - 그림 2, 3)
  

 
  직지성보박물관 소장『조상경(造像經)』의 체계와 내용
  불보살상과 관련된 인도의 경전이나 중국어 번역본을 염두에 두고, 직지성보박물관 소장 금강산 유점사판『조상경(造像經)』을 살펴보면 내용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조상의 제작에 필요한 규범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는 위의 경전들과 달리, 『조상경(造像經)』은 『조상공덕경(造像功德經)』을 비롯해 경전들의 내용을 찬집(撰集)한 부분이 주를 이룬다. 『조상경(造像經)』에서 인용한 내용은 불상 제작의 시초와 불상 조성의 공덕에 관한 것으로, 위에서 살펴 본 제작규범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조상의 대상(對象)도 석가모니상, 즉 불상에 한정되었다.  다만 이 내용이 실린 경전들도 성립시기가 올라가므로 제작규범을 다룬 조상경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해석되며, 이러한 내용을 선택한 의도도 불상 제작의 기원과 시초, 선문(禪門)에서 불상을 본 관점을 밝히기 위함일 뿐 실제 제작에 관심을 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인용한 경전의 구절들은 찬집자의 임의에 따랐으므로 원전(原典)의 순서와 차이도 보인다.
  『조상경(造像經)』의 내용은 크게 조상의 기원과 공덕에 관해 논한 부분과, 복장의식의 절차와 진언을 서술한 부분으로 나뉜다.  그러나 찬집자는 경전의 내용을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고 「약술비의(略述鄙意)」에서 밝히고 있다.  찬집의도를 서술한 「약술비의」를 통해 경전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 「대장일람경(大藏一覽經) 조상품(造像品)」15칙(則)은 조상의 유래와 공덕, 두 부분으로 나뉜다.  두 번째는 「제불보살복장단의식(諸佛菩薩腹藏壇儀式)」에서 「복장제물해석분제이과설(腹藏諸物解釋分齊二科說)」까지로 복장의식의 절차에 대해 다루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화취진언(火聚眞言)만이 진언으로 첨가되었다.  세 번째는 「복장소입제색(腹藏所入諸色)」에서 「묘길상대교왕경(竗吉祥大敎王經)」을 인용한 부분까지로, 복장물로 납입하는 여러 물목(物目)들의 종류와 의미, 납입방법, 절차 등을 다루면서 각 부분마다 진언을 첨가하였다.  네 번째는 「부동존진언(不動尊眞言)」에서 「점안문제진언(點眼文諸眞言)」까지이며, 이 부분을 끝으로 『조상경(造像經)』은 마무리된다.  찬집자는 이 네 부분에 대해 각각 신법(信法) ․ 해의(解義) ․ 수행(修行) ․ 증과(證果)라는 단어로 성격을 규정해 주고 있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조상경(造像經)』의 내용 전체는 복장의식과 절차, 방법에 대한 부분이 경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만큼 이 경전의 찬집자는 조상의 제작법보다 복장에 대해 비중을 두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상경(造像經)』이라는 이름이 붙은 경전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통해 직접 ․ 간접적으로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  그런데 조상경류의 경전은 내용에 따라 신상 제작의 규범을 다룬 것과, 조상의 공덕 ․ 복장을 넣는 의식에 관한 것으로 나뉘며, 이런 차이는 인도에서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나라나 시기에 따라 불상을 보는 사고와 안목이 달랐으며, 그에 따라 경전이 선택되는 경향이 변화하였고, 변화되어 가는 생각의 방향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여러 경전에서 찬집하였던 것이다.
 
  『조상경(造像經)』과 한국 불교조각사
  『조상경(造像經)』의 내용 변화는 불교조각사의 양식변천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중요하다.  또한 조상경의 내용이 복장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변하였으므로 조상과 복장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상경(造像經)』에서 비중을 둔 내용이 변화한 근본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아울러야만 가능하다.
  일반 재료로 제작된 조상을 예배와 신앙의 대상으로 바꾸어 주는 방법 중 하나인 복장 및 복장의식은 『조상경(造像經)』의 정립과 함께 일정한 형식을 갖춘 의식(儀式)으로 정형화되었다.  아직까지 복장의 기원과 인도의 복장에 대한 유물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의 경우는 9세기부터 불상에 복장을 납입했다는 증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복장이 납입되었다고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불상내부에 본격적으로 복장물(腹藏物)과 사리(舍利)를 넣은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며, 『조상경(造像經)』에 의거해 납입되었다.  이러한 방법은 조선시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삼국 ․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러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흥미로운 것은 복장의 납입 유무가 한국 불교조각의 양식적인 변화와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불상이 예술적으로 아름답고 힘차게 표현된 것은, 표현만으로도 그 상에 생명력을 부여해 상 자체가 숭고한 정신성을 나타내므로 복장이나 사리와 같은 별개의 요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일신라시대의 예술적 완성도를 성취한 불상들에는 『조상경(造像經)』에 따라 복장 등을 납입하지 않았다.  다만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조형원리, 즉 비례(比例) 등이 중요했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수치나 가시적(可視的)인 도해(圖解)가 『조상경(造像經)』의 내용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미적 ․ 정신적 표현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는 고려시대부터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잃기 시작한 불상들은 그 안에 복장과 사리를 봉안함으로써만 예배대상으로써의 생명을 획득할 수 있으므로, 이 시기부터 『조상경(造像經)』의 내용이 복장을 납입하는 절차와 안치방법을 비중있게 다루는 방향으로 변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조상경(造像經)』은 실제적인 비례를 다루는 체계에서 주술적인 성격을 갖는 경전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의경전인 『조상경(造像經)』의 변화에 따라, 불상을 비롯한 여러 조상이 비례 등의 제작원리를 통해 생명감을 얻는 방법보다는 조상에 실제의 인간처럼 오장육부를 만들어서 납입해 준다거나, 혹은 육신사리(肉身舍利)나 법사리(法舍利)인 경전의 한 구절을 넣어주는 방법을 통해 생명감을 불어넣어 주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마지막으로 진언(眞言)의 경우 산스크리트어를 먼저 적은 후, 한자와 한글로 나란히 독음(讀音)을 달아 그 당시 의식(儀式)에서 사용되던 주문(呪文)을 명료하게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어사 연구에도 자료가 된다.
 
최미순(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