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성공록』을 통해 본 남장사 괘불(2)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4-01    조회 : 4525
  2. 남장사 괘불의 도상과 사상

 

  남장사 괘불은 영산회를 그린 괘불이다. 괘불 화기에는 괘불의 명칭을 적고 있지 않지만1) 『불사성공록』에는 괘불의 내용을 서술하는 구절이 곳곳에 보인다.

① 우리 세존께서 영산(靈山)에서 일대사(一大事)를 설해 마치셨다. 영산은 비록 염부제(閻浮提)의 한 구석에 자리하였으나 그 가르침은 백억 세계에 균등하여 동류(同類)와 이류(異類)가 허공에 이르도록 영산에 모여들었다. (부처님은) 빛으로 여러 분신 석가를 불러 삼변정토(三變淨土)에 충만케 하셨고, 법음(法音)을 열어 네 가지 부처님의 지견[四佛知見]을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게 하시니, 대지의 중생들이 함께 일승(一乘)의 묘법에 감화되고 오백의 제자가 다같이 삼주(三周)의 수기(授記)를 받았다.2)

② 서울의 상겸(尙謙)은 영산회를 그렸는데… (괘불을) 높이 허공에 걸면 부처님의 금빛 용모가 눈에 환하여 그 빛나는 모습이 마치 다보탑에서 인간과 천상의 백만 대중들에게 묘법을 설하시는 대단한 위의와 같았다.3)

③ 영산교주이신 석가모니불의 존상을 4월 초파일 탄생하신 날에 붓을 들어 28일에 붓을 놓았다.4) 
 

 ①은 석가모니불의 영축산 설법 즉『묘법연화경』의 강설을 언급하고 있다. 『묘법연화경』의 핵심인 一乘과 28품 가운데 「서품」․「방편품」․「견보탑품」․「오백제자수기품」 등을 아우르는 짤막한 내용이다. ②는 야외에 걸린 영산회 괘불의 모습을 『법화경』「견보탑품」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견보탑품」은 세존의 설법을 듣기 위해 다보여래가 보배탑을 영산회 내보이고, 세존을 위해 보배탑의 자리 반을 내어주자 세존이 이 자리에 올라앉아 대중에게 큰 소리로 가르침을 펼쳤다는 내용이다. 이 역시 영산회의 한 모습이다. ③은 보다 구체적으로 괘불의 주존이 영산회에서 설법을 하신 석가모니불임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정조 12년에 조성된 괘불은 『묘법연화경』에 의거해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6명의 보살, 아난과 가섭을 포함한 10대 제자, 사천왕 등이 모여있는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하였다(도 2).

 
  
남장사 괘불이 다른 영산회괘불과 구별되는 도상적 특징은 주존인 석가모니불이다. 괘불의 주존은 앉은 모습보다는 서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예가 많은데, 이는 야외법회에 괘불을 걸 때 서 있는 부처의 모습이 대중에게 부처가 도량에 顯現했음을 극적으로 연출할 수 있어 선호된 듯하다. 괘불의 석가모니불이 서있는 자세를 취하면서 결가부좌한 자세에서 지녔던 항마촉지인은 다른 수인으로 바뀌어 표현되었다. 즉, 왼손은 여전히 배 언저리에 있거나 때론 가슴 위까지 올라가고, 오른손은 촉지인에서 그대로 내리거나 팔꿈치를 구부려 설법인을 취하거나 또는 연꽃을 든 모습을 한다.


남장사 괘불의 석가모니불은 서 있는 자세에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올려 연꽃을 들고 왼손은 가슴 위로 올린 수인을 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이 연꽃을 대중에게 보이심은 ‘拈花示衆'을 상징한다5) 
  
염화시중은 영축산에서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자 오직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축산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염화시중은 『묘법연화경』에는 없는 내용이다. 禪家에서 석가의 법을 이은 가섭이 사자상승 정통성을 지니며, 교외별전, 불립문자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생겨난 설화 가운데 하나이다6). 연꽃을 든 석가모니불은 『묘법연화경』이란 敎와 사자상승․교외별전이란 禪이 결합된 선교원융의 사상을 보여주는 도상이다.


 연꽃을 든 석가모니불 도상이 나타나는 이른 예로, 조선시대에 간행된 여러 묘법연화경판 중 광해군 14년(1622) 청계사판과 효종 6년(1655) 법주사판의 변상도를 꼽을 수 있다. 또한 현종 1년(1660)에 판각된 『선문조사예참법』에서도 선가 제1祖師인 석가모니불은 연꽃을 든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괘불로 남장사 괘불을 포함한 용문사 괘불(1708년), 봉은사 괘불(1886년), 개운사 괘불(1897년) 등이 있고, 일반 탱화로 김룡사 응진전 석가모니후불탱(1803년)이 있다7).

 남장사 괘불을 보면, 석가모니불의 광배에 여러 부처들이 둘러져 있다. 위의 ①의 '(부처님은) 빛으로 여러 분신 석가를 불러 삼변정토(三變淨土)에 충만케 하셨다'라는 내용과 괘불이 현괘한 모습을 다보탑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에 비유한 ②의 내용은 「견보탑품」에 해당된다. 이는 대중들이 보배탑 안에 계신 다보여래를 뵙기 위해서 세존에게 청을 하자, 세존이 미간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아 석가의 분신불을 사바세계에 모이게 한 내용이다.8) 이 내용처럼 광배에 있는 부처들은 다보여래를 뵙기 위해 석가모니불이 시방세계에서 불러모은 석가의 분신불이다.

 
  
석가모니불을 외호한 여러 부처 가운데 주목되는 부처는 서광 안에 자리한 비로자나불이다. 『불사성공록』에 기록된 증사 南岳堂暎悟와 括虛堂取如가 점화의 묘용을 내는 부분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에 명덕이요 대종사이신 남악당 영오와 괄허당 취여가 자리를 펴고 선정에 들어 밝게 관하고 바르게 증명하였다. 각각 점안하는 묘용(妙用)을 발휘하여 무진안(無盡眼)을 이루어서 법계의 중생[怨親]이 다 함께 석가 늙은이의 마음 속 세상에 나아가게 하였으며, (비로자나불의) 비로장해(毘盧藏海)에 들게 하였고, 모든 현상이 낱낱이 온전한 진리의 언덕에 노닐게 하였다. 자 일러보라! 법신이 옳은가, 화신이 옳은가? 화신을 여의지 않은 채 법신을 남김없이 취할 수 있다면 법신과 화신이 모두 옳으리니, 사람들은 어찌하여 생사윤회에 길이 빠져 자신의 법신을 망각하고 있는가? 모름지기 크게 착안할지어다9). 
 

 이 내용은 남장사 괘불 주존에 대한 본원적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글을 쓴 影波堂聖奎는 화신인 영산 교주 석가모니불과 불변진리의 존재인 법신 비로자나불을 동시에 성취해야만 올바른 깨달음에 이른다고 보았다. 이에 더 나아가 대중 자신이 지닌 불성[法身]을 깨우치길 이르고 있다. 이는 조선후기 화엄강백으로 이름 높았던 영파당 성규의 화엄사상과, 남악당 영오와 괄허당 취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10). 대중들에게 괘불로 현현한 화신의 형상에 머무르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본연의 존재인 법신을 항상 함께 인식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남장사 괘불이 다른 영산회괘불에서 보이지 않는 법신 비로자나불을 석가모니불의 정수리 위, 서광이 시작되는 곳에 표현한 것도 이런 사상에 근거한다고 생각된다.

 법신과 화신에 관한 문제는 불교사상에 있어 중요한 논쟁거리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인 법신과 형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화신에 대해 당시 스님들의 의견을 밝힌 자료로 영조 43년(1767)에 凝庵堂希有가 쓴 <通度寺 改成掛佛記>현판에서 의암당 희유와 괘불 불사에 화주를 담당한 兌活의 대화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내가 이르길, '장육금신(丈六金身)은 비로법계의 그림자 중에 그림자인데, 그림자 중 그림자를 어찌 실(實)로 삼아 그 자취를 적으려 하오'하였다. 화주가 답하길, '그림자로써 진(眞)을 찾는다면 비로법계의 몸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림자로써 진(眞)을 찾는 자취를 적어서 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가 이르길, '그대가 능히 이를 알고 청하였으니 더 이상 보탤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림자로써 진을 찾는다는 말이 이치에 벗어난 것이 아니며, 비로법계의 몸을 본다는 말조차 비교적 작은 일입니다. 『금강경』에 이르길,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고 음성으로 나를 구한다면 그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으로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한 '삼불(三佛)의 형의(形儀)가 모두 진(眞)이 아니다'라고 이르지 않았습니까? 그대는 어찌 법계의 몸을 본다 이릅니까? 나는 그림자로써 진(眞)을 찾는 것이 이치에 벗어난 것이 아니라 말하는 바입니다. 이러하다면, 한 덩어리의 구멍 없는 무쇠덩어리며 육지가 잠기는 일입니다. 삼불(三佛)의 근본을 간략히 말하면, 법신이란 것은 법계에 두루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본래 한계가 드러남(邊表)이 없어서 이 이치에 이르러서는 마음으로 헤아리면 어긋나고 생각을 일으키면 그르치게 되며, 다만 마음이 의기(依寄)함이 없이 깃들게 되면 이치를 저절로 현묘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보신이란 것은 몸의 길이는 천장(千丈)으로 화장세계에 들어가 십지보살을 위해 설법하는 것입니다. 화신이란 것은 장육(丈六)의 금신(金身)을 이르니, 기꺼이 사성육범(四聖六凡)이 평등하게 귀의하여 각기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는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 중생들이 이 부처님을 흠모하여 그림을 그려서 공중에 걸어 두고 언제나 불사를 설하여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입니다11). 

 『불사성공록』이나 <통도사 개성괘불기> 현판의 내용 모두 18세기 후반, 당시 대중에게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졌던 형상을 갖춘 화신과 당대 선지식이 추구했던 진리인 법신을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이끌어 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논해지고 있다. 이는 세존이 노사나불의 몸[報身]을 나투어 화엄을 설하지만 二乘은 이를 알아듣지 못해 다시 장육의 몸[化身]으로 나투어 生滅法을 설해 道에 들게 하였다. 그러나 근본의 몸[法身]은 버리지 않고 자취의 모습[化身]을 보이신 것에 불과하다는12) 불교의 사상을 이야기한 것이다. 두 스님 모두 괘불을 보는 대중들에게 형상에 얽매이지 말고 이를 통해 그 안에 내포된 변하지 않는 진리, 자신의 佛性, 곧 법(dharma)의 원리까지 깨치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1) 乾隆五十三年戊申四月日 施主秩 大施主嘉善比丘省學 大施主嘉善比丘鍊秋 大施主朴時重……
2) 我世尊說終一大事於靈山 靈山雖住閻浮提一隅 道均百億四天下 同類異類 界至於空 會靈山 光召分身諸釋迦 充三變淨土 出廣長舌 說盡開示悟入四佛知見 大地衆生 同熏一乘之妙法 五百弟子 共蒙三周之授記(「南長寺掛佛新畵成記」)
3) 京之尙謙 繪素靈山會…高掛半空 金容煥目 晃然如多寶塔中 與人天百萬衆 說聽妙法之鴻儀也 (「南長寺掛佛新畵成記」)
4) 靈山敎主 釋迦牟尼佛尊相 四月初八日降生之辰執筆 二十八日落筆焉 「掛佛腹藏願文」
5) 장충식, 「朝鮮朝 掛佛의 考察-本尊 名稱을 中心으로-」 韓國의 佛畵-直指寺本末寺 9, 성보문화재연구원, 1995년, pp.249~258.
6) 가섭이 세존의 선지를 이어 받았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三處傳心이 있다. 다자탑에서 가섭에게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는 分半座와 영산회에서 가섭에게 꽃을 들어보였다는 擧拈花, 사라쌍수 아래서 늦게 온 가섭을 위해 관 밖으로 발을 내보이셨다는 槨示雙趺가 있다.  
7) 연꽃을 든 석가여래 도상의 연원과 전개양상에 관해서는 정명희, 朝鮮後期 掛佛幀畵의 硏究,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pp.85~90 참고.
8) …是時 大樂說菩薩 以如來神力故 白佛言 世尊 我等 願欲見此佛身 佛告大樂說菩薩摩訶薩 是多寶佛 有深重願 若我寶塔 爲聽法華經故 出於諸佛前時 其有欲以我身 示四衆者 彼佛 分身諸佛 在於十方世界說法 盡還集一處 然後 我身 乃出現耳 大樂說 我分身諸佛 在於十方世界 說法者 今應當集 大樂說 白佛言 世尊 我等 亦願欲見世尊分身諸佛 禮拜供養… 「見寶塔品」, 妙法蓮華經
9) 當時 名德大宗師 南嶽暎悟 括虛取如 敷座入定 明觀正證 各出點筆之妙用 成就無盡眼 與法界怨親 同就釋迦老子肚裏乾坤 轉入毘盧藏海 逍遙於法法全眞之岸 且道 法身是耶 化身是耶 不離化身 薦取法身 則法身化身亦是 人人分上 爲甚麽長淪生死 而昧○自己法身 大須着眼(「南長寺掛佛新畵成記」)
10) 影波堂聖奎(1728~1812)는 화엄학과 선․염불에 밝았던 대강사로, 대흥사 13대강사의 1명이다. 黃山堂退隱으로부터 화엄경 전질을 받아 30년 동안 연구하여 현리와 묘오를 체득하고 선을 공부할 때도 화엄경을 탐독하고 보현보살과 관음보살을 화엄경에 입각하여 원불로 삼았다 한다. 그의 진영이 통도사, 용문사, 김룡사를 포함한 여러 사찰에 전한다. 括虛堂取如(1720~1789)는 대승사 출신의 승려로 영남의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법을 가르치고 사찰 중수 등 많은 불사에 참여하였다. 저서로 괄허집이 있다. 김룡사 양진암에서 임종하였고, 화장암에 그의 진영이 전한다. 南岳堂暎悟(18세기 후반)의 생몰 연대나 정확한 행장은 전하지 않는다. 김룡사에 그의 진영이 전하고 갑장사에는 南岳影閣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경북북부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악당 영오는 수다사시왕도(1771)에서 시주자로 보이고, 이후 괄허당 취여와 혜국사 신중탱(1781)과 황령사 신중탱(1786) 조성에 증사로 참여하였다.
11) 余曰 丈六金身 乃毘盧法界身之影中影也 以影中影 何爲實 記其迹乎 化主之言曰 以影尋眞 則乃見毘盧法界之身也 以影尋眞之跡 記之傳之 如何如何 余曰 汝能知此而請之 善不可加 然而以影尋眞之言 不是理外 而乃見毘盧法界身之言 猶較些子 金剛經云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又有三佛形儀㧾不眞之言乎 汝何謂見法界身 余謂 以影尋眞 不是理外云者 但恁麽則一隊無孔鐵鎚 陸地平沈 畧說三佛之根 所謂法身也者 徧法界而有餘 本無邊表 至於此理 擬心則差 動念則乖 但棲心無寄 理自玄會而已 所謂報身也者 身長千丈 入華藏界 爲十地菩薩而說法也 所謂化身也者 謂丈六金身也 乃好爲四聖六 凡平等歸依 各得利樂之身也 故我佛滅度之後 衆生慕此佛而畵成 掛之於空中 常設佛事而利生也
12) 雲黙, 「釋迦如來行蹟頌」 韓國佛敎全書 第6冊 p.501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