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山 가을 산에 소나기 지날 때 - 김득신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9-11-23    조회 : 4846

  

         龍山                      가을 산에 소나기 지날 때

              金得臣                                                  김득신

           古木寒雲裏                                          차가운 구름 속에 고목 한 그루

           秋山白雨邊                                          소나기 지나가는 가을 산자락

           暮江風浪起                                          저녁 강에 풍랑 일자

           漁子急回船                                          어부 급히 배 돌리네



왼편으로는 바다가 발 밑에서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세또내해瀨戶內海입니다. 海面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무수한 잔무늬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날은 새들도 날기를 멈추는지 잿빛 털을 지닌 왜가리 한마리는 바위에 저 홀로 떨어져 비 내리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고, 청둥오리떼는 오스스 방파제에 모여 앉아 깃털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뒤로는 방금 지나온 마쓰야마松山 항구가 크게 호를 그리고 있으며 그 호가 끝나는 곳부터는 크고 작은 섬들이 검푸른 산그림자를 드리우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구름에 젖어 바다는 하늘을 닮고 수평선은 희미(흐릿)한데, 멀리 섬 사이로 船首를 북으로 한 화물선 한 척이 느릿느릿 떠가는 사이 세계의 바다를 누볐음직한 커다란 여객선은 하얀 자태를 뽐내며 어느새 화물선을 앞질러 나아갑니다. 항구에는 급히 배를 돌릴 것도 없이 아예 발이 묶인 어선들이 하릴없이 내리는 비를 맞고 있습니다. 바다가 한번씩 출렁일 때마다 싱싱한 물비린내가, 바다 내음이 와락 솟아올라 가슴을 채웁니다.

오른편으로는 347번 지방도가 해안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그 옆으로는 팔을 벌리면 닿을 듯이 JR予讃線의 외줄기 철길이, 그 다음은 196번 국도가 해안과 나란히 달리고 있습니다. 그 너머는 마을과 산입니다. 철길 옆의 갈대는 고개를 숙인 채 숨죽이며 서 있고, 비구름에 싸인 산, 산들은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여 허리를 내밀기도 하고 얼굴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 비구름 사이로 붉은 단풍들이 초록 바다에 피를 뿌린 듯 선명하게 점을 찍고 있는 모습이 언뜻언뜻 내비칩니다. 어쩐지 요꼬야마 다이칸橫山大觀의 그림이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산도 바다도 비에 젖고 있습니다.

비를 만난 건 마쓰야마 교외의 다이산지太山寺에서입니다. 낮게 가라앉던 하늘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이) 本堂에 닿자마자 그예 비를 쏟고 맙니다. 간식을 먹는다, 사진을 찍는다 긴치 않은 일로 한 시간을 기다려도 멈출 기미는 좀체 보이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윈드쟈켓을 꺼내 입고 빗 속에 길을 나섭니다. 시내의 엔모우지円明寺를 거쳐 이제 막 마쓰야마 시가를 빠져 나왔습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입니다. 추적추적 마냥 내리고 있습니다. 이번이 이미 세번째이니 내리는 비에는 별 유감이 없습니다. 순하게 내리는 것이, 지난 번 처럼 퍼붓지 않는 것이 그나마(도리어) 고마울 뿐입니다. 나그네는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자, 좋은 곳도 싫은 곳도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 길손의 몸가짐,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검음을 멈출 수 없는 것이 떠도는 자의 예의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다만 바라기는 너무 어둡기 전에 하룻밤 묵을 곳을 찾을 수 있기를, 그 잠자리가 치르는 값에 비해 안락하고 쾌적하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잠시 벗어 놓았던 배낭을 다시 두 어깨에 을러 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