苦熱 무더위 - 하손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9-08-03    조회 : 4014
  

      苦熱                                   무더위

        何遜(梁)                                               하손(양)

        昔聞草木焦                                  초목도 불탄다고 예전에 들었는데

        今覩沙石爛                                  이제 보니 사석조차 문드러지네

          曀曀風逾靜                                  어둑어둑 흐린 날엔 바람 한 점 일지를 않고

        曈曈日漸旰                                  쨍쨍 맑을 때는 하루해가 길기만 해라

        習靜悶衣襟                                  고요히 앉았자니 걸친 옷도 갑갑하고

        讀書煩几案                                  글 읽자니 책상조차 번거롭기 짝이 없어

        臥思淸露液                                  누운 채 맑은 이슬 내리기를 생각하고

        坐待高星燦                                  앉아서는 높이 뜬 별 반짝이길 기다리네

        蝙蝠戶中飛                                  박쥐들 마당 위를 날아다니고

        蠛蠓窓間亂                                  하루살이 창문에서 어지러울 때

        實無河朔飮                                  더위 식힐 술자리는 있지를 않고

        空有臨淄汗                                  하릴없이 물 흐르듯 땀만 흐르네 

        遺金自不拾                                  떨어진 금덩이도 줍지 않거니

        惡木寧無榦                                  몹쓸 나무 그늘인들 어찌 빌리랴

        願以三伏辰                                  부디 三伏 더위 모두 가져다

        催促九秋換                                  가을바람 재촉하여 바꿔오길 바랄 뿐.



앉은뱅이 책상을 툇마루에 내놓고 지낸지 벌써 나흘째입니다. 날이 번하게 밝으면 애기중이 썼을 법한 작은 經床을 앞퇴에 내놓고, 저녁 어스름이 사물을 지워갈 무렵이면 그 꼬마 책상을 방안으로 들입니다. 책 한 권 펼치면 그만인 이 작은 경상과 더불어 접이식 퇴침 하나, 부채 한 자루도 방안과 마루를 덩달아 들락거립니다. 이렇게 부채 한 자루 퇴침 하나 책상 하나로 마루에서 하루해를 보내고 맞이하고 있습니다.

“鄕中生色은 夏扇冬曆”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이웃에 생색나는 일로 여름 부채와 겨울 달력만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도 글자 그대로 옛말이 된 지 오랜 모양입니다. 요즈음도 세모에 달력을 선사하는 풍습은 어지간히 이어지고 있는 반면, 여름날 부채 한 자루 주고받는 시속은 가물가물 거의 사그라진 듯합니다. 端午가 되면 임금이 백관에서 하사하였다는 端午扇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한여름이 되어도 그 흔한 부채 한 자루 주고받는 일이 드무니 그야말로 今昔之感이라고나 할까요. 하기사 에어컨이니 성능 좋은 선풍기니 하여 부채에 비할 바 아닌 여름나기 용품이 부지기수인데 생색이 날 리 만무인 부채를 뉘라서 쉽사리 주고받고 하겠습니까.

세상이야 어떻든 조금 미련하고 시대에 뒤진 저는 아직까지는 부채 하나에 의지하여 여름나기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부채 가운데서도 가장 흔하고 값싼 부들부채를 여덟 가지 덕을 갖추었다 하여 八德扇이라 불렀답니다. 그 여덟 가지 덕 가운데 몇 가지를 꼽아 보면 해져도 아깝지 않은 것, 바람을 일으키는 것, 햇빛을 가리는 것, 값이 싼 것, 깔고 앉으면 자리가 되는 것 따위가 포함됩니다. 참으로 하찮고 시덥잖은 덕목이긴 합니다만 또 한편 생각해보면 얼마나 실용에 근사하고 소중한 구실입니까? 물론 저야 굳이 부채를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리 없습니다. 산중이다 보니 에어컨이니 선풍기 없이도 그럭저럭 여름을 날 만하기 때문에 그럴 뿐이고, 굳이 들자면 부채에 담긴 여유와 소박한 운치를 선뜻 버리기가 아깝기 때문일 따름입니다.

헌데 올 여름엔 중복을 지난 오늘까지도 부채 한 번 부친 적이 없습니다. 어인 까닭인지 장마가 길어지면서 아직까지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지 않은 탓입니다. 언제까지 이럴 리야 있겠습니까? 아마도 하루이틀 뒤면 날이 개이고 “천하가 커다란 화로 속에 들어앉은 듯한 (萬國如在洪爐中)” 더위가 시작되겠지요. 그럴 때면 저 또한 앞뒤의 미닫이며 창문까지 활짝 열어제치고 마루에 나앉아 퇴침과 앉은뱅이 작은 책상과 부채를 무기삼아 溽暑라고 일컫는 삼복더위와 씨름으로 나날을 보낼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직까지는 화락화락 부치는 대로 정직하게 바람을 선사하는 부채 한 자루에 몸을 맡긴 채 炎天의 더위와 맞서는 일이 마냥 아득하지만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