示友人 벗에게 - 임억령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9-05-18    조회 : 4541
  


          示友人                                         벗에게

             林億齡                                                   임억령

          古寺門前又送春                                   옛절 문에 기대 봄을 다시 보내노니

          殘花隨雨點衣頻                                   비를 좇아 지는 꽃 옷 위에 점을 찍네

          歸來滿袖淸香在                                   돌아올 때 소매 가득 푸른 향기 남아서

          無數山蜂遠趁人                                   나풀나풀 산나비 멀리까지 따라오네



못된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머리 깎고 살면서도 그림이든 조각이든 잘 생기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으면 부처님 앞에 선뜻 머리가 조아려지지 않습니다. 그저 그런 불상이나 불화에는 보는 눈 때문에, 익은 습관 탓에 고개를 숙이긴 합니다만, 깊이 몸을 낮춰 절하고픈 마음이 잘 일지는 않습니다. 곁에서 정성껏 절하는 분들을 보면 송구스럽고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겉모습에 佛性이 깃드는 것이 아님을 번연히 알면서도 좀체 이 버릇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제껏 분별심 하나 떨치지 못했으니 정녕 딱한 노릇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일요일인 어제는 여러 벗들을 따라 남쪽의 큰 절 통도사엘 다녀왔습니다. 그곳 박물관에서 대표적인 고려불화의 하나인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장 水月觀音圖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전시 끝나기 전에 한번 다녀와야지, 하고 벼르던 터라 함께 보러 가자는 벗들의 권유를 이 일 저 일 제쳐두고 못이기는 체 받아들인 것입니다.

높이 4m 폭 2.5m가 넘는 큰 화폭에 그득히 담긴 보살상은 거룩하였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솜털들이 낱낱이 일어섰습니다. 1995년 여름 호암아트홀에서 처음 마주하던 때의 사무치던 느낌이 되살아났습니다. 지난 겨울, 교토의 고류지[廣隆寺] 전시관에서 목조반가사유상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앉고, 서고, 기대고, 절하며 그 장엄한 종교예술품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광경조차 고류지 전시관에서 본 모습하고 그렇게 닮았던지요.

봄이 아주 가버리기 전에 장삼과 가사를 챙겨 다시 갈까 합니다. 설사 지는 꽃이 비를 따라 옷 위에 점을 찍지는 않더라도, 나비들 나풀나풀 따라올 일 없더라도, 차분한 늦봄의 어느 날 거룩한 수월관음 발 아래 엎드려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 봄을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