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舊 옛 생각 - 선주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9-03-08    조회 : 4955
  

         感舊                                  옛 생각         

           善住(元)                                                선주(원)

        昔年曾此寄缾盂                                 병과 발우 이곳에 부친 지도 어느덧 옛날

        竟日蕭然一事無                                 종일토록 고요히 한 가지 일도 없네

        幾度小窓人不到                                 작은 창에 얼마나 찾는 이 없었던가?

        擁書閒對石菖蒲                                 책 펼치고 한가로이 석창포를 마주하네

        (三首 中 其一)

하나

  ‘횡재’를 했습니다. 영영 소식이 끊긴 줄 알았던 옛 친구를 찾았고, 그 친구로부터 새 친구를 소개받았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것도, 지갑을 주운 것도 아닌 그깟 일이 무슨 횡재람, 하시겠지만 제게는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도 공연히 발걸음이 가벼웁고 룰루랄라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어지니까요.

  인사동에 아는 붓가게 하나가 있었습니다. 붓가게라고는 하지만 문방사우를 비롯한 온갖 물감, 갖가지 인재印材, 그 밖에 고만고만한 서화용품을 두루 갖추어 놓은 곳인데, 백년 가까운 세월을 묵다 보니 조금은 시대에 뒤진, 어쩐지 곰삭은 먼지 냄새가 살짝 풍길 듯한 그런 가게였습니다. 안다 그래봐야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한번씩 들러 다리쉼을 하기도 하고,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기도 하고, 또 가끔은 소소한 물건을 돈과 바꾸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세월이 지나다보니 주머니가 비었을 때는 물건 먼저 챙겨 오고 다음 행보에 셈을 치러도 그만인 편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뭐랄까, 오래 입어 유행에 뒤지고 낡긴 했어도 몸에는 더할 수 없이 편한 옷 같은 그런 가게였습니다.  

  지난해 버들개지 날릴 무렵, 그 가게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인사동길을 걷다 그 자리에 새 가게가 들어서느라 공사가 한창인 광경을 우연찮게 목격하고서야 뒤늦게 사태를 짐작한 저는 마치 발이 땅에 얼어붙기라도 한 듯 우뚝 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이 어이없는 장면을 믿기지 않는 눈길로 바라보는 동안 마음속으로는 아쉬움, 안타까움, 섭섭함, 허탈함이 뒤섞여 흘렀습니다. 백년 세월의 무게조차 자본의 논리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것이 허탈했고, 이만한 가게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우리 현실이 섭섭했습니다. 인사동을 인사동답게 하던 가게가 또 하나 사라지는구나 싶어 아쉬웠으며, 도대체 해묵은 것이라면 도리머리를 흔드는 오늘의 우리가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흡사 증발이라도 한 듯 감쪽같이 사라진 줄 알았던 가게가 살아있었습니다. 조금 더 후미진 곳에서, 아주 조금 변한 모습이긴 해도 예전처럼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꼭 한 주일 전, 종이 몇 가지를 사가지고 인사동을 빠져나오다 우연히 던진 눈길에 그 집의 낯익은 상호가 쓰인 간판이 들어왔습니다. 내심 화들짝 놀랄 만큼 반가운 마음을 누르며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예요? 온다간다 말도 없이 이래도 돼요?”

  “그러게요. 그렇게 됐네요. 좀 앉으세요.”

  주인은 이렇게 저간의 복잡한 사정을 덤덤한 한마디로 뭉뚱그린 채 어제 본 듯 심상하게 자리를 권했습니다. 저는 저대로 주인장의 말은 아랑곳도 않고 잃어버렸던 물건 되찾은 듯 가게 안을 휘휘 둘러보았습니다.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어둑신한 구석 자리 스탠드 불빛 아래서 전각에 골몰하다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는 주인어른 일가붙이 형님의 모습이 변함없었습니다. 줄줄이 내걸린 붓하며 진열장에 빼곡이 서 있는 인재들, 크고 작은 벼루들도 종전과 다름없었습니다. 비좁은 공간에 흥건히 괸, 시대에 한 걸음 뒤떨어진 듯한 분위기도 여전했습니다.

  차 한 잔을 받아들고 다시 만난 친구 얼굴 살피듯 찬찬히 이 물건 저 물건을 훑던 눈에 진열대 아래 얌전히 놓인 화분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세 발 달린 동그란 수반에 두꺼비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먼산바라기를 하는 듯한 자태의 자그마한 수석 하나를 심고, 그 위에 한 줌도 안 되는 石菖蒲 무더기를 앉힌 것이었습니다. 진작부터 석창포 한 盆을 구했으면 싶었던 차였으니 눈에 띈 석창포에 구미가 동하는 걸 어쩌지 못했습니다. “파는 것은 아닐 테고, 웬 석창포예요? 여기보다는 내 사는 방이 훨씬 어울리겠는 걸……”하고 생각이 있어 묻는 말에, 주인장은 “아, 그러세요. 필요한 곳에 있어야지, 뭐.”하며 아무 망설임도 스스럼도 없이 대꾸했습니다. “농담 아니예요. 정말 데려가도 돼요?”하고 확인을 구하자 “그럼요. 저야 또 구하면 되는 거고.”하는 대답이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주인장은 점원을 시켜 비닐봉지에 겹겹이 싼 화분을 제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가게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아주 잃은 줄 알았던 오랜 친구의 건재를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이만큼 반가운 일이 흔할 리 없고, 그 친구로부터 새 친구를 소개받아 함께 가는 길이니 그 또한 적잖이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만하면 이 일을 두고 횡재라 불러도 과히 지청구를 당할 정도는 분명 아니지 않을는지요.


  석창포는 한겨울에도 푸르고 싱싱한 잎줄기를 자랑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천남성과 창포속에 들지만 창포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습성을 지니고 있고, 생김새도 조금 다릅니다. 둘 다 물을 좋아하지만 창포가 주로 호수나 연못가의 습지에서 자라는 반면, 석창포는 흔히 냇가나 산간 계곡의 흐르는 물가 바위틈이나 돌무더기 사이에서 생장합니다. 창포는 보통 키가 60~90cm 정도이며 잎줄기가 뿌리에서 곧게 자라는 데 비해, 석창포는 그보다 좀 작아 대개 30~50cm 안팎까지 성장하고 잎줄기도 약간 비스듬히 누워 자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잎줄기의 너비도 창포는 10mm 내외인데 반해 석창포는 2~8mm 정도로 창포에 비해 한결 가늡니다. 석창포의 낱낱 잎줄기는 마치 양날 칼, 즉 劍처럼 매끈하게 생겼습니다. 그 때문에 ‘水劍草’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또 무더기 지어 자란 모습이 흡사 부추와 같다고 하여 ‘堯韭’라고도 불리는데, 이 말에는 ‘하늘의 정기로 자란 요임금 뜰의 부추’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석창포는 뿌리가 매우 특징적인데, 잔뿌리가 별로 없는 뿌리줄기는 얼핏 지네처럼 보일 만큼 많은 마디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 마디가 촘촘할수록 효능과 품새가 우수한 것으로 여겨 흔히 ‘한 치 길이에 아홉 마디[一寸九節]’는 되어야 제격으로 보았고, ‘한 치에 열두 마디[一寸十二節]’, 심지어는 ‘한 치에 스무 마디[一寸二十節]’ 운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석창포는 앞에서 잠깐 언급한 水劍草, 堯韭라는 이름 말고도 昌本, 昌陽 따위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 창포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단오에 창포 우린 물로 머리를 감았다는 그 창포가 아니라 바로 석창포를 가리키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창본이나 창양, 창포라는 명칭에는 양기를 가득 품고 번창하는 풀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중국 명대에 편찬된 유명한 약학서인『本草綱目』에서는 “『呂氏春秋』에 이르길 ‘동지가 지난 뒤 57일이면 비로소 창포가 나기 시작하니, 창포는 온갖 풀 가운데 가장 먼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밭갈이를 시작한다.’고 하였으니, 창포, 창양은 바로 이 뜻을 취한 것이다/呂氏春秋云 冬至後五十七日 菖始生. 菖者 百草之先生者. 於是 始耕 則菖蒲昌陽 又取此義也.”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잠깐 석창포는 창포속으로 분류된다고 말씀드린 바 있는데, 창포와 석창포가 창포속에 드는 두 가지 풀입니다. 그 때문에 석창포는 옛 책에서 창포를 설명할 때 곁들여 언급되는 일이 흔합니다. 아마도 20세기 이전에 간행된 책 가운데 석창포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가장 상세한 해설을 가하고 있는 것이 위에 말씀드린 바 있는『본초강목』일 듯한데, 이 책에서도 석창포를 다섯 가지 창포 가운데 일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포는 대개 다섯 종류가 있다. 못이나 늪지에 나며, 부들 닮은 잎줄기와 살진 뿌리를 지니고 높이가 두세 자까지 자라는 것은 泥菖蒲로서, 白菖이라고 부른다. 시냇물이나 산간 계곡에 나며, 부들 닮은 잎줄기에 수척한 뿌리를 지니고 높이가 두세 자까지 자라는 것은 水菖蒲이니, 溪蓀이라고 부른다. 물과 돌 사이에 나며, 잎줄기에 칼등과 같은 잎맥이 있고 수척한 뿌리에 촘촘한 마디가 있으며 높이가 한 자 남짓 자라는 것은 석창포이다. 집에서 모래에 심은 뒤 한 해가 지나 봄이 되어 (잎줄기를) 잘라 줄 때마다 자르면 자를수록 잎이 가늘어지며, 높이는 너댓 치에 잎이 부추와 같고 뿌리는 숟가락 자루처럼 마디가 성근 것도 또한 석창포이다. 나아가 뿌리의 길이 두세 푼에 잎의 길이가 한 치 가량 되는 것을 錢蒲라고 이른다. 복용이나 약재로는 모름지기 두 가지 석창포를 써야 하며, 나머지는 모두 적당치 않다. 이 풀은 새 잎이 옛 잎을 대신하면서 네 계절 언제나 푸르다.

  菖蒲凡五種. 生於池澤 蒲葉肥根 高二三尺者 泥菖蒲 白菖也. 生於溪澗 蒲葉瘦根 高二三尺者 水菖蒲 溪蓀也. 生於水石之間 葉有劒脊 瘦根密節 高尺餘者 石菖蒲也. 人家以砂栽之一年 至春剪洗 愈剪愈細 高四五寸 葉如韭 根如匙柄粗者 亦石菖蒲也. 甚則 根長二三分 葉長寸許 謂之錢蒲是矣. 服食入藥 須用二種石菖蒲 餘皆不堪. 此草 新舊相代 四時常靑.

  이와 거의 같은 내용이 청 강희제 때 勅撰으로 간행한『御定佩文齋廣群芳譜』권88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의 해당 부분은 字句의 출입이 있을 뿐『본초강목』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듯한데, 다만 전포에 대해서만 “또 뿌리의 길이 두세 푼에 잎의 길이가 한 치 가량 되면서 책상에 두고 완상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전포이다/又有根長二三分 葉長寸許 置之几案 用供淸賞者 錢蒲也.”라고 하여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석창포에 대한 이런저런 견해들이 있지만 대체로 앞에서 소개드린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듯합니다.

  이미 『본초강목』인용문의 끄트머리에서 언뜻 비치긴 했습니다만, 예로부터 석창포는 다종다양한 병증에 효과가 높아 의약서의 첫머리에 놓이는 약초로 유명했습니다. 이를테면『東醫寶鑑』에서는 갖가지 약재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湯液篇> 첫머리에서 ‘菖蒲’를 우리말로 ‘셕챵포’라고 밝힌 뒤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약성은 따뜻하고(보통이라고도 한다), 맛은 시며, 독이 없다. 심장[心孔]을 열어 주고 오장을 보하며, 九竅(사람 몸에 있는 아홉 구멍. 눈, 귀, 코의 여섯 구멍과 입, 항문, 요도의 세 구멍.)를 통하게 하고 귀와 눈을 밝게 하며, 음성이 나오게 하고 風濕과 군痺를 다스린다. 뱃속의 기생충을 죽이며 벼룩과 이를 물리치고, 자주 잊는 건망증을 치료해 주며 두뇌 활동을 길러 주고, 심장과 배의 통증을 그치게 한다.

  性溫(一云平), 味辛, 無毒. 開心孔, 補五臟, 通九竅, 明耳目, 出音聲, 治風濕군痺, 殺腹藏虫, 辟蚤虱, 療多忘, 長智, 止心腹痛.

  『본초강목』에는 위에 든 내용은 물론 “어두운 귀와 악성 종기에 효험이 있고, 장과 위를 따뜻하게 하며, 잦은 소변을 그치게 한다.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건망증이 사라지며, 정신의 혼미함이 그치고 수명이 늘어나며, 심장에 도움을 주고 지혜를 증진시키며 의지가 노쇠하지 않는다/主耳聾癰瘡 溫腸胃 止小便利. 久服 輕身 不忘 不迷惑 延年 益心 智高 志不老.”고 하여 석창포의 한층 다양한 적응증을 선보이고 있으며, 그 밖에도 많은 병변에 효험이 있음을 길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거 동아시아의 어지간한 의학서치고 석창포의 뛰어나고 다채로운 효능을 언급치 않는 경우가 없다 할 만치 석창포는 요긴하고 우수한 약재로 널리 쓰였습니다.    

  석창포는 위에 든 것처럼 어떤 구체적인 증상에 약성을 보이는 것 말고도 뿌리를 차처럼 달여 마시면 두뇌를 총명하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하며 기억력을 좋게 하는 효력이 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또 곁에 두면 등불이나 촛불 아래 글을 읽을 때 그을음과 연기를 흡수하여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약리작용을 한다는 사실도 두루 인정되어 왔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석창포는 강인한 생명력과 네 계절 변함없는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고, 수석과 어울리는 조촐한 품새와 맑은 운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신노동이나 소박하지만 격조 있는 삶에 잘 어울리는 특성을 가진 탓에 석창포는 예로부터 문인과 학자들의 벗으로 각광받았습니다. 그래서 문방사우에 더하여 문방오우의 하나로 부르며 선비들이 늘 책상 맡에 두고 친우처럼 대하던 풀이 석창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잘 보여 주는 예가 아마도 이런 글들이지 싶습니다.

  흔히 조물주가 만물을 만들 때 종류는 비록 길을 달리할지언정 따뜻한 봄볕에 의지하여 발육하고 땅의 기운에 기대 변화 생장하며 계절의 변화에 얹혀 번성하고 쇠퇴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어느 것도 족히 자립하여 우뚝 선 군자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 석창포의 물성은 햇빛에 의지하지 않고, 적은 흙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봄이니 가을이니 계절을 가리지도 않는다. 오랠수록 더욱 촘촘해지고 수척할수록 한층 가늘어지니 성정에 부합하고 성품을 기를 만하다. 서재 좌우에 이 친구가 하나 있으면 문득 맑은 아취와 쇄락함을 느낄 수 있으니 어찌 범상한 물건으로 지목할 수 있으랴.

  常謂化工造物 種類殊途 靡不藉陽春而發育 賴地脈而化生 乘景序之推移而榮枯遞變, 均未足擬卓然自立之君子也. 乃若石菖蒲之爲物 不假日色 不資寸土 不計春秋. 愈久則愈密 愈瘠則愈細 可以適情 可以養性. 書齋左右 一有此君 便覺淸趣瀟灑 烏可以常品目之哉.

                                                         ―『御定佩文齋廣群芳譜』권88에서―

아리땁기는 마치 진나라의 동녀들이 봉래산과 영주산에 올라 녹옥으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거니는 듯하고/嫩如秦時童女登蓬瀛 手携綠玉杖徐行,

수척하기는 마치 천태산 위의 어질고 훌륭한 고승들이 양식 끊기고 곡식 떨어져 고고한 학의 자태를 간직한 듯하고/瘦如天台山上聖賢僧 休糧絶粒孤鶴形,

굳세기는 마치 오백의 의로운 사내들이 벌판을 가로지를 때 꽃다운 정기가 늠름하여 푸른 하늘을 만지는 듯하고/勁如五百義士從田橫 英氣凜凜摩靑冥,

맑기는 마치 삼천의 제자들이 공자의 뜰에 섰을 때 顔回와 曾點이 琴과 瑟을 연주하여 천기를 울리는 듯하네/淸如三千弟子立孔庭 回琴點瑟天機鳴.

                                                      ―謝枋得, <菖蒲歌>『疊山集』卷一에서―

  석창포에 대한 선비사회의 쏠림이 이렇게 가파르다 보니 글줄이나 만질 줄 아는 시인이나 문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그들은 석창포를 두고 贊, 頌, 賦, 歌, 序, 古詩, 絶句, 律詩 등 온갖 형식의 시와 글을 동원하여 그 품성과 자태를 상찬하거나 자신의 소회를 얹어서 노래했습니다. 李白, 杜甫, 張籍, 曾幾, 秦觀, 張耒, 蘇軾, 陸游, 朱熹, 方岳, 王炎, 許棐, 劉詵, 陳高, 孫作, 張寧, 張景修, 李彌遜 王十朋, 劉應時, 楊弘道…… 등등 실로 문학사에 이름을 올린 수많은 지식인들이 모두 모으면 너끈히 책 한 권을 엮고도 남을 글과 시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아 고려시대의 유명한 문인 李奎報, 선비화가로 이름난 姜希顔, 조선시대 최고 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簡易齋 崔笠,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일본까지 끌려갔다 돌아와 『看羊錄』이란 기록을 남긴 선비 姜沆,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의 의병장이자 유성룡의 학통을 이은 학자이기도 했던 李埈, 조선후기 사상계를 이끌던 안동 김씨 가문의 이른바 六昌 가운데 한 사람인 老稼齋 金昌業 등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사대부들이 석창포에 대한 詩文을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百聞이 不如一見,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窓明几淨室空虛       밝은 창 조촐한 책상 방안은 텅 비어

  盡道幽人一事無       모두들 말하지, 은자에겐 아무 일도 없다고

  莫道幽人無一事       말 마시라, 은자에게 아무런 일 없다고

  汲泉承露養菖蒲       샘물 긷고 이슬 받아 석창포를 기른다오

                                               ―曾幾, <石菖蒲>『壽親養老新書』卷3―

  石根九節細相縈       아홉 마디 바위 뿌리 가늘게 서로 얽혀

  葉比龜毛照眼靑       잎사귀는 神龜의 綠毛인 듯 눈 푸르게 비치네

  邱壑生涯雖傲世       골짜구니 생애를 세상 비록 멸시하나

  引年終是笑豨苓       수명을 늘임에는 豨苓이 우습다오

                                               ―李彌遜, <石菖蒲>『筠溪集』卷18―

  天上玉衡散            하늘의 북두칠성 흩어져

  結根泉石間            돌 틈 사이 뿌리로 맺혔으니

  要須生九節            반드시 한 치에 아홉 마디 생겨나

  長爲駐紅顔            오래도록 홍안에 머물게 하지

                                               ―王十朋, <石菖蒲>『梅溪集』前集 卷6―

  一碧生涯水石濱       물가 돌 곁 푸르른 한 생애,

  縷風絲雨瘦精神       실비 실바람에 수척한 정신이여

  前身恐是巢由輩       전생에는 아마도 巢父․許由였으리

  怕著人間半點塵       속세 티끌 반 점조차 달라붙길 꺼리니

                                               ―許棐, <石菖蒲>『梅屋集』卷4―

  石上種菖蒲            돌 위에 석창포 심어

  盆中蓄淸泉            화분에 앉혀 맑은 샘 부어 주니

  托根不待養            서린 뿌리 돌보기를 바라지 않고

  翠葉何鮮鮮            파릇파릇 잎사귀 어찌나 싱싱턴지

  沃土生蕭艾            옥토에서 자라는 저 쑥대

  靑靑當路邊            큰길가 마주하여 청청도 하지

  蕭艾人所惡            그런 쑥대 사람들 미워하지만

  菖蒲人所憐            석창포야 사람들이 사랑한다네  

                                               ―陳高, <石菖蒲>『不繫舟漁集』卷3― 

  

  曉露飛初濕            새벽이슬 흩날려 촉촉한 저 윤기

  春苗剪又生            봄에 새싹 자르면 다시 또 돋네

  靜憐千葉瘦            고요한 아리따움, 잎잎이 수척하고 

  幽喜一峯橫            그윽한 즐거움, 가로놓인 봉우리 하나

  鬱鬱明人眼            울울하여 사람 눈 밝게도 하고

  靑靑異物情            청청하여 깃든 정 남다르구나

  安期如可待            신선 安期生을 기약할 수 있다면

  吾亦掃黃精            黃精 따위 약풀이야 쓸어버리리

                                               ―孫作, <石菖蒲>『滄螺集』卷1―

  一室蕭然景最淸       온 방이 고요하여 맑은 기운 으뜸인데

  小池叢石細蒲生       작은 못 돌무더기 석창포가 자라네

  日長自覺閒情好       해 길어 한가론 정취 절로 느껴 좋으이

  書罷還宜倦眼明       책 덮자 지친 눈 다시 환해진다오 

                                               ―張寧, <題石菖蒲六韻>『方洲集』卷7에서―

  淸芬六出水梔子       여섯 꽃잎 맑은 향기 물 치 자

  堅瘦九節石菖蒲       아홉 마디 굳센 뿌리 석 창 포

  放翁閉門得二友       문 닫고 두 친구 맞이했으니

  千古夷齊今豈無       지금인들 백이숙제 어찌 없으리

                                               ―陸游, <二友>『劍南詩藁』卷34―

  茅簷月有千錢稅       초가집엔 다달이 세금이 천 냥

  稻飯年無一粒租       기와집엔 해 넘겨도 구실이 반 톨

  生事蕭條人問我       사는 일의 쓸쓸함 내게 물으면

  水芭蕉與石菖蒲       물파초와 석창포, 대답은 그뿐.

                                               ―張景修, <貧居>『宋詩紀事』卷23―


  採彼九節根            한 치에 아홉 마디 뿌리 캐어서

  種此一拳峰            주먹만한 봉우리에 옮겨 심은 뒤

  淸泉日浸灌            맑은 샘 날마다 부어주며는

  歲久成蒼龍            세월 따라 푸른 용 볼 수 있다네

                                               ―金昌業, <石菖蒲>『老稼齋集』―

  이렇게 석창포를 두고 옛 사람들이 온갖 ‘호사’와 ‘객기’와 ‘사치’를 부리던 자취를 더듬다 보면 두 가지 현상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어느 시대보다도 송대의 문인이나 사대부들이 석창포에 대한 작품을 압도적으로 많이 남기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석창포가 어쩐지 산중에서 수행하는 스님네와 관계가 깊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실은 앞에서 열거한 시와 시인과 문사들이 대부분 송대의 인물과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얼마든지 미루어 알 수 있는 일인데, 아마도 그 까닭은 송대 사회의 성격과 연관되지 않나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송대는 중국의 모든 왕조 가운데 문치 우위가 가장 확실하게 구현되었던 시대였습니다. 그 바탕에 사대부와 유학이 자리잡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니, 周敦頤, 張橫渠, 程顥․程頤 형제, 朱熹 등 유학사상사에 획을 그은 거장들이 모두 이때에 출현하여 程朱學이니 朱子學이니 이를 만큼 유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性理學을 완성하고 있음은 그 단적인 예라고 하겠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송대의 학자와 문인과 사대부와 시인들이 자신들의 철학에 부합하고 이념을 투영하기 좋은 소재인 석창포에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보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집니다.

  두 번째 사실은 석창포를 노래한 시문 가운데 스님네와 관계되거나 스님이 작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데 근거를 둔 추측입니다. 이를테면 王十朋의 <개선사의 스님이 보낸 석창포開先僧贈石菖蒲>나 李之儀의 <스님을 위해 지은 석창포찬爲僧作石菖蒲贊>, 蘇東坡의 <상주의 보은장로에게 주다贈常州報恩長老>와 같은 시들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석창포가 스님네와 어떤 연관이 있음을 공공연히 시사하고 있거니와, 劉詵의 <石菖蒲> 같은 작품은 수행자들이 석창포를 “항상 패엽경과 더불어常與貝葉書/한 책상에 동격으로 소중히 다룬다珍愛同几格”고 서술하여 그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기도 합니다. 서두의 <옛 생각感舊>처럼 아예 스님이 석창포를 소재로 한 시의 작자인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寒溪之濱               차가운 시냇가

  沙石之竇               움푹한 돌모래에

  産之靈苗               신령한 싹 자라나

  蔚然而秀               무성히 빼어났네.

  有美君子               아름다운 군자가

  採持而歸               캐 가지고 돌아와

  文石相幷               무늬 있는 돌 위에 심어 두고서

  滀涵淸漪               물 주자 흔들리는 맑은 잔물결!

  根盤九節               아홉 마디 서린 뿌리

  霜雪不枯               눈서리도 물리치니

  置之幽齋               그윽한 서재에 놓아두고서

  永以爲好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한다오

                                          ―道潛, <孔平子書閣所藏石菖蒲>『參寥子詩集』卷11―

  露長纖纖葉            이슬이 키우는 여리고도 고운 잎

  春添細細根            봄이 보태주는 가늘디가는 뿌리          

  生涯惟水石            한 생애 오로지 물과 돌뿐이지만

  幽意自乾坤            그윽한 뜻이야 천지와 벗한다네

                                          ―宗衍, <石菖蒲>『石倉歷代詩選』卷366―

  香綠茸茸一寸根       푸른 향기 파릇한 잎 한 치의 뿌리

  淸泉白石共寒溫       맑은 샘 하얀 돌과 추위더위 함께 하지

  道人好事能分我       도 닦는 이 기꺼이 나눠준다면

  留取斕斑舊蘚痕       고운 이끼 옛 흔적이 변함없으리

                                          ―如璧, <乞石菖蒲>『倚松老人詩集』下―

  사대부 문사들은 그렇다 쳐도 수행자들은 또 왜 이리 석창포에 관심이 많고, 석창포를 그린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걸까요? 현상적으로 본다면 스님네와 석창포가 상당한 친연성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 정확한 실상이나 까닭은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습니다. 옛날 “보적스님은 석창포를 좋아해 그것을 심어 사자, 난새와 봉황, 신선 등 갖은 모양새로 키웠다[僧普寂好菖蒲 種成獅子鸞鳳仙人之狀(『全芳備祖集』後集 卷十一)]”고 합니다. 과연 이것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이한 취향이었을 따름일까요? 과문한 탓에 더 이상의 대답은 찾을 길이 없는데 궁금증은 하나 둘 쌓여만 갑니다.     

  


  이달이 무장 현감으로 있던 최경창에게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그에게는 사랑하는 기생이 있었는데, 마침 장사치가 저자에서 자운단―구름 무늬가 놓인 보랏빛 비단을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즉시 그는 붓을 달려 최경창에게 시 한 수를 써 보냈다.

    장사치 강남의 저자에서 비단을 파는데      商胡賣錦江南市

    아침 햇살 비추자 보랏빛 안개 서리누나     早日照之生紫烟

    고운 이 치마 하나 짓고 싶어 하건만         佳人政欲作裙帶

    주머니 뒤져봐야 돈 한 푼이 없구려          手探囊中無直錢

  최경창은 답장을 보내 “만일 이 시의 값을 따진다면 어찌 천금에 그치겠는가? 시골 고을이라 재물이 넉넉지 않아 마음에 흡족치는 못할 걸세.”하고는 마침내 시 한 구절에 쌀 열 섬씩 쳐서 도합  40섬을 보내주었다.

  李達過崔慶昌于茂長. 有所眄妓, 適見商人賣紫雲段. 卽走翰呈慶昌曰 商胡賣錦江南市 早日照之生紫烟 佳人政欲作裙帶 手探囊中無直錢 慶昌報之曰 若論此詩價 豈直千今錢 殘縣少資 不能稱意 遂於一句 准白粒十石 合四十石遺之.

  柳夢寅의『於于野談』에 나오는 詩話 한 토막입니다. 어떻습니까? 미소가 떠오르시나요? 고개가 끄덕여지십니까? 무언가 비난의 말화살을 내쏘고 싶어지시는가요? 어느 쪽에 서시든 옛 사람들은 사소한 물건 하나를 주고받을 때조차 지금의 우리들보다는 예의와 염치와 운치와 격조가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설령 아쉬움과 도움을 청할 경우일지라도 말입니다. 소포 꾸러미를 보내면서도 메모지 한 장 함께 넣는 일에 게으른 요즘 세태로야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저로서도 건조하게 물건만 오가는 것보다야 글 한 줄이라도 덧붙이던 옛 사람들의 서정에 마음이 기웁니다. 그래 그런지 앞서 든 倚松老人 如璧스님의 시는 물론, 시 한 수로 남의 물건 양도를 은근히 압박하는 이런 경우도 그닥 밉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瑟瑟風漪心爲淸       살랑, 바람에 잔물결 일어 마음이 맑아지고

  更窺崷崒眼增明       험한 바위 다시 보자 눈 더욱 밝아지네

  可憐一片江山樣       어여뻐라 한 조각 강산 닮은 저 모습

  只欠菖蒲十數莖       오로지 모자란 건 석창포 열댓 줄기!

          ―秦觀, <客有遺予以假山石盆池者聞陳元發有石菖蒲作此詩乞之>『淮海集』卷11―

  제목으로 보건대 누군가가 시인을 생각하여 그럴듯한 수석이 심어진 석분 하나를 보내온 모양입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거기에 석창포를 얹어 구색을 맞추고 싶어진 시인이 저렇게 시를 지어 세평이 자자한 친우의 석창포를 나눠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시인은 그저 맨입으로 수석도 석창포도 얻으려는 심산이니, 이건 뭐 담배와 불을 차례로 빌리면서 자신은 단지 입만 지니고 있는 경우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체면과 염치를 잃지 않고 있음은 물론, 어딘가 잔잔한 격조와 멋이 풍김은 또 어인 까닭입니까? 그 이유는 오로지 의사전달 수단으로 시가 매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아주 어긋난 억측은 아닐 것입니다. 저만한 시라면야 갈라주는 것이 그리 아깝지 않을 듯 싶은데,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석창포 한 분을 주고받을 때도 뒷날까지 남을 시가 오가던 옛 사람들을 생각하노라니 문득 자신의 몰골을 돌아보게 됩니다. 마음에 있다고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냉큼 입에 담는 몰염치도 그렇거니와, 가져가란다고 두꺼비 파리 잡아채듯 낼름 데려오는 것도 몰풍스럽기 비길 데가 없습니다. 고작 한다는 생각이 다음 걸음에 꼭 긴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한 물건 하나 팔아드려야지, 하면서 시는 고사하고 하다못해 감사 편지 한 통 보내는 것조차 염두에 없으니 이 노릇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옛 친구 다시 찾은 반가움으로 시작한 글이 새 친구 자랑으로 늘어지더니 급기야 푸념과 자탄으로 떨어질 기미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쯤 되면 한숨과 넋두리 이외에는 그 뒤로 이어질 게 별로 없기 십상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정지신호요 퇴장명령이나 다름없어서 서둘러 사태를 매듭짓고 상황을 마무리하는 것이 그나마 상책입니다.  

  책상머리에 놓인 석창포분을 바라봅니다. 어찌 보면 두꺼비, 달리 보면 강아지 한 마리가 웅크려 앉은 듯한 돌은 이름난 수석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도 작지만 음전하고 어엿한 자세가 그럴듯합니다. 제법 머리 쪽으로는 서너 줄 흰 줄무늬도 박히고 쭈그려 앉은 앞발쯤에는 들고난 굴곡도 심심치 않기는 합니다만, 그보다는 그저 무덤덤하고 심상한 자태가 마음에 듭니다. 석창포는 이 강아지, 혹은 두꺼비가 네 다리를 구부려 앉는 바람에 등허리에 생긴 굵은 주름 사이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비록 한 줌도 안 될망정 이 파릇한 풀 무더기가 거무스름한 돌빛과 어울리며 선사하는 눈 푸른 시원함이 적지 않습니다. 건조한 방안에 윤기를 돌게 하는 청일점입니다. 등불이나 촛불을 켜지 않아 과연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지, 눈을 얼마나 밝게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아니라도 저렇게 푸르게 살아있음만으로도 이미 너끈히 제 구실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수반입니다. 일단 너무 옹색하여 갑갑하고, 플라스틱이라는 소재에도 영 정이 붙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백자를 굽는 于山선생께 부탁하여 가늘고 긴 사각형 백자 수반으로 바꾸면 어떨가 궁리 중입니다. 그리 되면 저는 물론이려니와 돌에게도, 풀에게도 한결 낯이 설 듯 싶습니다.

  다시 무심한 돌과 풀을 물끄러미 건너다봅니다. 영화 <워낭소리>의 영문 제목을 ‘Old Partner’로 뽑았더군요. 영화 속의 소와 영감님처럼 한참 뒤에도 저들과 좋은 파트너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무엇보다 제가 저 돌과 풀에게 쓸 만한 파트너이기를 가만히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