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 雪 눈을 보며 - 두순학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9-01-04    조회 : 4824
  

  

        對 雪                              눈을 보며

         杜荀鶴(唐)                                          두순학(당)

        風攪長空寒骨生                        바람은 허공을 흔들어 추위 뼈에 스미는데

        先於曉色報窓明                        내린 눈 새벽빛보다 먼저 창문 밝히누나

        江湖不見飛禽影                        온 세상에 새 그림자 하나 뵈지 않고

        岩谷時聞折竹聲                        이따금 대나무 꺾이는 소리 바위골짜기를 울릴 뿐

        溝壑本深無復滿                        골짜기 본디 깊어 가득 찰 리 없지만

        路岐兼得一般平                        길이란 길 모두 다 한 빛깔로 평평해라

        擁袍公子莫言冷                        솜옷 입은 공자여, 춥단 말 하지 마소

        中有樵夫跣足行                        저 길 속에 맨발의 나무꾼이 가느니



누비는 절집의 겨울용 일상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안감과 겉감 사이에 솜 따위를 넣고 누벼 지은 누비옷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보다 나은 겨울옷이 흔하다 보니 예전만큼 널리 착용하지는 않는 것이 요즈음의 세태입니다. 그러나 한복을 일상복으로 하는 절집에서는 상황이 좀 달라 아직은 겨울옷으로 누비만한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누벼 만들면 바지와 저고리든 조끼든 모두 누비라고 부르긴 합니다만, 흔히 절집에서 말하는 누비는 바지와 저고리 위에 외투처럼 걸쳐 입는 누비 두루마기를 가리킵니다. 이 누비 두루마기 한 벌이면 겨울 준비 끝, 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머리 깎고 사는 사람에게는 요긴한 겨우살이의 동반자입니다.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겨울 안거 때는 군불 지핀 큰방에서 목침 하나 베고 누비 한 벌 덮고 자는 것이 선원의 흔한 밤 풍경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낮에는 외투, 밤에는 이불 구실을 한 것이 바로 누비였던 셈입니다.

검소한 수행자의 상징물처럼 되어버린 ‘누더기’도 실은 이 누비를 가리키는 경우가 열에 아홉이 넘지 싶습니다. 해지고 닳아 솜이 비어져 나온 누비를 깁고 또 깁고 하여 누덕누덕해진 옷이 누더기이니까요. 하긴 요즈음은 일부러 멋을 내느라고 멀쩡한 옷에 천 조각을 덧대어 입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이런 말이 좀 무색하긴 합니다만 말입니다.

겨울 한 철을 마치 단짝 친구처럼 누비와 붙어지내다 보니 그로 말미암은 이야기도 심심찮았습니다. 이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절을 찾은 객승客僧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 얼마간의 여비를 제공하는 일은 어느 절에서나 지켜지는 범상한 풍습이었습니다. 그렇긴 해도 절에 따라, 손님을 접대하는 소임자의 성향에 따라 객승을 대접하는 인심이 한결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개의 객승들은 푸대접이면 푸대접인대로 하루 이틀 머물다 떠나지만, 좀 능청스럽고 장난기 있는 객승들이라면 그 야박한 인심에 말없이 야유와 조롱과 항의를 퍼부었습니다. 그것이 곧 누비를 빨아 너는 일이었습니다. 옷이 말라야 객실을 비울 텐데 한겨울에 솜을 둔 누비가 어자녹자 마르자니 몇 날 며칠을 객승은 마르지 않은 누비를 핑계로 객실에서 묵새기며 ‘합법적으로’ 소임자를 골탕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비 좀 빨아볼까’하는 소리는 뜨뜻미지근한 객실, 시원찮은 반찬, 적은 여비에 대한 객승의 항의이자 엄포요 관습에 따른 권리 주장이었고, 절쪽에서는 그럴 기미라도 보이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라도 객승 대우를 달리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속내가 드러난 줄당기기, 아마도 객승의 누비 빨래는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나마 염치가 남아 있던 시절의 얘기이긴 합니다만.

제게도 누비가 한 벌 있습니다. 한 스무 해 가까이, 제법 나이를 먹은 누비입니다. 아껴 입느라 한 해 겨울이면 한두 번 꺼내 입어 그런지 소매 끝이나 호주머니 가장자리로 흰 솜이 살짝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을 뿐 먹은 나이에 비해서는 새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한 땀 한 땀 손으로 누빈 손누비입니다. 장인적인 솜씨가 요구되는 분야라면 기계와 손의 차이가 으레 그렇듯 누비 역시 손으로 누빈 것과 기계, 즉 재봉틀로 누빈 것은 맵시와 기능에서 판이하게 차이가 납니다. 손누비는 몸에 착 붙는 느낌과 보온성이 탁월한 반면 기계 누비는 유연성과 보온성, 옷맵시에서 손누비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안감으로 손명주를 쓰고 있다는 점도 제 누비 자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흔히 명주 한 자락 걸치면 삼이웃이 따뜻하다느니, 사촌까지 따뜻하다느니 하는 말이 있을 만치 각광받던 피륙이 명주였습니다. 끝을 모르고 기술이 진보하고 있는 현대에도 실크Silk 제품이 선망의 적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견직물에 대한 선호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바로 그런 명주로 안감을 댄 손누비는 얇고 가벼우면서도 따뜻하고, 입고 나서면 태깔이 곱고 맵시가 살아나 누비로서는 가장 웃길로 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가 이 누비를 입는 것이 아니라 간직하다시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옷을 만들어 주신 분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출가 무렵인 70년대 초, 절에는 바느질을 담당하시는 노보살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십대에 청상靑孀이 된 뒤 이내 절로 들어와 바느질로 평생을 보내신 분이었습니다. 자그마한 몸피에 젊은 시절에는 어지간히도 고우셨던지 당시 예순을 갓 넘긴 나이에도 옛 모습이 얼굴에 아련히 남아 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소생은 물론 가까운 피붙이조차 제대로 없으셨던 모양입니다. 언제나 침침한 형광등 불빛 아래 인두질을 해가며 능숙하게 바늘을 놀리고 계시던 모습만 스냅 사진처럼 떠오를 뿐, 설이나 한가위에도 달리 찾는 사람을 본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무애행無碍行 보살님!”하고 부르며 방문을 열면 그럴 때마다 바느질감을 내려놓으며 돋보기 너머로 눈을 치떠 희미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솜씨가 고우셨습니다. 굳이 치수를 재지 않고 그저 입을 사람 한번 보고 눈짐작으로 마름질을 하셨지만, 완성된 옷은 여축없이 품이 꼭 맞았고 길이 또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습니다. 저고리는 소매선이 곡선인 듯 직선인 듯 은근하였으며, 깃과 섶은 너무 눅지도 지나치게 바투지도 않게 여며졌고, 옷고름은 제대로 매기만 하면 두 끝이 일치하며 알맞게 늘어졌습니다. 바지 또한 밑이 낙낙하여 점잖은 태가 은은하였습니다. 그 분 가신 뒤로 아직은 그만한 태가 나는 승복을 보질 못했습니다.

옷감을 손수 물들여 바느질을 하셨는데, 염료가 남달랐습니다. 승복을 달리 먹물옷이라고 부를 만큼 절집에서 회색빛을 내기 위해 흔히 쓰는 염료는 먹물입니다. 하지만 이 분은 주로 물푸레나무, 진달래의 가지와 뿌리를 이용해 염색을 하셨습니다. 이들을 불에 태우다 알맞은 시점에 물을 부어 끄면 숯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숯을 자루에 넣어 물속에서 주무르면 검은 물이 우러나고, 거기에 천을 담그면 회색빛 물이 들었습니다. 이때의 회색빛은 먹물빛에 비해 맑고 연하고 윤기가 흘렀습니다. 그래 그런지 그 빛깔은 올이 굵은 천보다는 가는 천에 잘 어울렸습니다. 이를테면 무명이나 광목보다는 옥양목에 더 곱게 물이 들었고, 삼베보다는 모시와 한결 조화가 맞았습니다. 회색이면 다 똑같은 회색이 아니란 걸 그때 알았고, 회색이 세상 어느 색상 못지않게 화려한 빛깔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그렇게 물들인 옷감에 한결같은 솜씨와 정성을 얹어 그 분은 철철이 옷을 지었습니다. 여름에 들어서면 진솔 모시 두루마기를 마름질하셨고, 겨울이 다가오면 얇게 솜을 둔 핫옷을 만드셨습니다. 바지 저고리는 물론 고의, 적삼, 조끼, 동방, 두루마기 따위를 수시로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만든 옷을 누구나 입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입어야 할 사람은 많고 짓는 분은 하나이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짓는 옷은 주로 은사이신 주지스님용이었고 몇몇 머리 굵은 사형師兄들이 이따금씩 얻어 입을 수 있었을 뿐, 저같은 ‘초짜중’은 그저 은사스님이 입으시던 옷을 물려받아 입을 수 있는 것으로 감지덕지해야 했습니다.

70년대 중반 출가한 곳을 떠나 오랫동안 이 절 저 절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면서 몇 년에 한번씩 본사에 들러 보면 그 분은 점점 흰머리가 늘고 주름살이 깊어지고 체구가 작아지면서도 돋보기안경을 걸치고 늘 바느질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92년이나 93년쯤으로 기억되는 무렵 노보살께 들렀더니 입어보라며 내 주신 옷이 누비 두루마기 한 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94년 10월, 그 분은 여든둘의 나이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누비를 걸칠 때마다 그 분이 준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참 고적했던 당신의 삶이 서리서리 담겨 있을 듯싶고, 동무처럼 평생을 함께한 바느질이 과연 그 분에게는 무엇이었을까 궁금증이 일곤 합니다. 남들은 왜 누비를 두고도 청승을 떠느냐고 타박이지만, 한 여인의 남다른 삶을 아는 저로서야 그게 그저 범상한 물건일 수 없는 걸 어쩌겠습니까.

지난 12월 31일, 한 해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새날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벽에 걸린 누비를 벗겨 빨았습니다. 헹굴 때마다 흐릿하게 빠지는 먹물 빛깔 속에서 노보살님은 예의 그 희미한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