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居雜詩 비취빛 씻은 듯이 -유인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7-16    조회 : 4889
  

     村居雜詩                           비취빛 씻은 듯이

          劉因(元)                                                  유인(원)

          隣翁走相報                                        옆집 노인 달려와 말 전할 때마다

          隔窓呼我起                                        창문 너머 일어나라 나를 부르지 

          數日不見山                                        며칠 동안 푸른 산 바라보지 못했더니

          今朝翠如洗                                        오늘 아침 비취빛은 씻은 듯이 곱구나

 

  암자의 스님이 ‘마실’을 오셨습니다. 한 스무 해 전 산중에 암자 하나를 엮더니 줄곧 혼자 살고 계십니다. 生食으로, 그것도 하루 한 끼만으로 평생을 지내오신 분입니다. 그런대도 젊은 우리보다 훨씬 童顔에 활기가 넘치십니다.

  더위를 핑계로 저고리 벗고 양말 벗고 댓님 풀고 앉았던 터라 대문 열리는 소리에 얼른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스님이 마루에 올라선 뒤입니다. 그럴 거 없다며 자리에 앉은 스님은 굳이 한 번 더 양말을 꿰는 저를 말리십니다. 못이기는 체 맨발로 앉아 이따금씩 맞장구도 치고 변죽도 울리면서 스님의 ‘옛날이야기’에 수굿이 귀를 기울입니다.  

  꼭 긴한 일이 있어 오신 걸음이 아니니 이야기는 자연히 閑談이 되어 이리저리 되는대로 흐릅니다. 당신이 오대산 살 때 만났던 이상한 짐승 이야기, 首座 하나가 돌아가신 月山스님을 찾아가 “동해바다 주인이 누고?” 하는 질문에 “월산!”이라고 대꾸해 노자를 두둑이 타낸 얘기, 예로부터 황악산의 멧돼지가 덩치 크고 힘 세기로 소문이 났었다는 얘기, 어느 암자터는 혼자 살기 알맞고 어느 암자터가 산중에서 기중 낫다는 얘기 등등 스님의 이야기는 쉬엄쉬엄 이어집니다.

  가을 되어 잎이 떨어져 산이 절반쯤 비면 암자터를 함께 오르자는 약조를 받으신 뒤에야 스님의 이야기는 뒤를 보였습니다. 대문 밖에 나가 배웅하는 스님의 어깨에 설핏 기운 석양빛이 비스듬히 내려앉았습니다. 길어진 그림자가 우줄우줄 스님의 뒤를 좇고 있었습니다. 문득 옛시 한 수가 떠올랐습니다.

 

   蒼蒼竹林寺         푸르디푸른 竹林寺 

  杳杳鐘聲晩         아득한 저녁 종소리

  荷笠帶夕陽         어깨에 멘 삿갓에 비낀 석양 받으며

  靑山獨歸遠         저 멀리 청산으로 홀로 돌아가는 이여!

                                               劉長卿, <送靈徹上人>

 

  오늘 저녁도 푸른 산빛은 씻은 듯이 고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