隱求齋 숨어 살며 - 주희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7-01    조회 : 5137
  

      隱求齋                                숨어 살며

         朱熹(宋)                                                주희(송)

          晨窓林影開                                      새벽 창 날마다 숲 그늘로 열리고

          夜枕山泉響                                      산골 샘물소리 언제나 밤 베개로 높아라

          隱居復何求                                      숨어 살며 무엇을 구하느냐고?

          無言道心長                                      말없이 道心만을 기를 뿐.

          (<武夷精舍雜詠>中 第三首)



  한때 신영복 선생님을 모시고 몇몇 사람이 글씨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혼자 연습하던 글씨를 일주일에 한 차례씩 함께 모여 쓰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 선생님은 말없이 지켜보시기도 하고, 손수 붓을 놀려 설명을 곁들이시기도 하고, 이런저런 말씀을 건네시기도 하고, 묻는 말에 차분히 응대하시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손에 들린 붓이 참 자유롭게 움직이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함께 글씨 쓰던 분들이 신 선생님을 모시고 절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습니다. 이튿날은 등산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만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생각을 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벼루와 종이를 준비하여 신 선생님께 글씨를 청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청에 따라 이런 글귀 저런 구절을 종이 위에 옮기시던 선생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또 무얼 적을까요?”

  “숲이요, 숲 한 글자만 쓰시는 건 어떨지요.”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저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바를 얼른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서두조차 하지 않은 한지 한 장을 통째로 펼쳐놓으시더니 단숨에 ‘숲’ 한 글자만을 큼지막하게 쓰시고는 붓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때 쓰신 글씨를 가끔씩 펼쳐보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가벼운 전율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갑니다. 내심으로는 ‘아마도 선생님 글씨 가운데도 손꼽히는 명품일 걸’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숲, 온 생명이 깃드는 곳입니다. 숲에서 뭇 생명이 잉태되고 성장하고 사멸해갑니다. 확실히 숲은 생명의 공간, 살림의 공간입니다. 그곳에서는 온갖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삶을 누리는 곳이 숲입니다.

  아마도 그 숲의 덕을 절집만큼 톡톡히 누리는 곳이 따로 없지 싶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늘 숲 그늘로 아침을 열고 계곡 물소리를 베고 잠이 듭니다. 더없이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문제는 저 자신입니다. 그렇게 고맙고 감사한 숲에서 뭐하고 사느냐고 누가 물을까 은근히 겁이 납니다. 그럴 때 말없이 도 닦는 마음만을 기를 뿐이라고 응수할 자신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숲의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고, 게으르지 않으려고, 성실히 오늘을 살려고 애쓸 따름입니다. 

[lys12300] 08-09-16
신영복교수님의 강의를 듣기위해
"더불어 숲"학교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더불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