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珠歌 신령한 구슬 - 나옹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6-16    조회 : 5078
  

         靈珠歌                             신령한 구슬

               懶翁                                                    나옹

          晨朝喫粥齋時飯                              이른 아침 죽을 뜨고 점심에는 밥 먹으며

          渴則呼兒茶一椀                              목마르면 아이 불러 차 한 잔을 달이게 하네

          門外日沈山寂寥                              문 밖으로 해지면 산은 마냥 적요롭고 

          月明窓畔白雲散                              달 밝은 창가로는 흰구름이 흩어지네



齋餐朝粥이라는 말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절집에서 아침에 죽을 뜨고 점심에 밥 먹는 관습은 꽤 오랜 내력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도 이제 옛말, 요즈음에는 이 오랜 불문율도 거의 사라져가고 있어서 겨우 안거 때나 절 형편 따라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다행이랄까, 저 사는 곳은 그나마 안거 때는 아침마다 죽이 상에 오릅니다. 나물죽, 흰죽, 잣죽 따위가 번갈아 오르기도 하고, 이따금은 경상도 사람들이 ‘갱시기’라고 부르는, 콩나물과 묵은 김치를 함께 넣고 물을 넉넉히 부어 끓인 흰죽이 오르기도 합니다. 햇발이 오르기 훨씬 전인 아침 5시 50분, 산천을 가득 채운 청신한 공기를 마시며 큰방으로 향합니다. 세 번 죽비소리가 울린 뒤 되직하게 끓인 죽 한 바루를 받아든 기쁨이라니!

돌아서면 배고파지는 것이 죽이라고 합니다만, 그래서 가난한 시절을 겪은 어르신들은 외면하기 일쑤인 음식이 죽이긴 합니다만, 요즘처럼 먹을 것 넘쳐나 도리어 탈인 세상에서는 쉬 출출해지는 점이 오히려 미덕입니다. 아침이 이른 탓도 있지만 죽을 먹고 나면 점심때가 채 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시장기가 돕니다. 내 몸의 어딘가에 가득차지 않은 여백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실감되면서 티미하던 머리는 한결 명징해 집니다. 그 빈 느낌이 좋습니다. 그럴 때 저는 헛헛한 기분을 즐기면서 비어 있을 때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짐을 체감합니다. 대저 자유는 비어 있음에 깃듦이 예사인 모양입니다. 죽은 채우기가 아니라 비우기를 가르치는 음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근자 들어 차를 마시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목마르면 마시고, 쉬고 싶을 때 끓이고, 졸릴 때도 찻잔을 끌어당깁니다. 부를 아이가 없으니 손수 물을 떠오고, 찻잔을 헹구고, 차를 우립니다. 혼자 마시는 차에 일정한 법도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냥 되는대로 마십니다. 간편하게 유리잔에도 마시고, 머그잔에도 마시고, 찻사발에도 마시고 대중이 없습니다. 격식 차려 차를 제대로 마시는 분들이 본다면 웃을 일이나 뭐 그다지 괘념치 않습니다. 혼자 마시는 차를 神이라 이른 옛말을 위안 삼아 혼자 즐길 따름입니다.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제 방식대로 차를 내곤 합니다. 우린 차를 자그마한 찻종에 몇 차례씩 나누어 돌리는 것이 아니라, 찻사발에 넉넉히 따뤄 한 차례 대접하면 그걸로 그만입니다. 다녀가신 분들 가운데는 드러내 말은 안 해도 아마도 어지간히 무식하다 속으로 비웃은 분들이 적잖았을 겝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것이 저 나름의 茶風이라 여기며 당분간은 이 방식을 고칠 마음이 없습니다. 차의 정신 또한 자유가 아니던가, 하는 변명거리를 장만하여 두고서 말입니다. 사람이 차를 마셔야지 차가 사람을 마시게 해서야 쓰나, 하는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가면서 말입니다.

하루 가운데 어느 시간을 사랑하시나요? 저의 경우는 해가 아주 진 뒤 차분히 깊어가는 저녁 시간입니다. 뉘엿뉘엿 해가 기울고 땅거미가 지는 시각에는 딱히 상실감은 아니지만 말할 수 없이 아득한 느낌에 넋을 잃을 때가 잦습니다. 시시각각 흐름이 감지되는 그런 때가 지나고 나면 이제 시간은 묵직히 가라앉으며 고요만이 차오릅니다. 산중이야 그것이 더욱 도드라져 관람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자리를 적요로움이 가득 채웁니다. 그럴 때는 소쩍새 울음, 창문을 밝히는 달빛, 흩어지는 구름이 도리어 고요함을 한층 깊게 합니다. 마치 매미 울음에 숲이 더욱 고요해지고 새 소리에 산이 한결 그윽해지듯이[蟬噪林逾靜/鳥鳴山更幽].

市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자거리에 숨는다는 뜻입니다. 조용한 시골이나 산중에 숨어사는 일이야 대수로울 리 없고, 사람 북적이는 市井에서 和光同塵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隱居라는 얘기입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한가로우면 어디인들 조용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과 비슷한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경지야 제 일이 아니거니 언감생심, 감히 넘볼 일이 있겠습니까. 하여 저는 제 깜냥대로 萬籟俱寂, 모든 소음과 잡답을 어둠이 거두어간 초저녁의 靜謐을 사랑합니다. 이럴 때 저는 그 고요함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미닫이를 열고 나갑니다. 마루에 서서 가는 듯 마는 듯 하늘 호수를 헤쳐가는 달을 바라보기도 하고, 파초 잎 일렁이는 뜰을 거닐기도 합니다. 그제서야 오롯이 자신과 마주서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오늘이 음력 오월 열사흘, 내일 모레면 結制한 지 어느덧 한 달입니다. 九旬 安居 세 토막 가운데 벌써 한 토막이 아무런 자취도 없이 손을 빠져 나갔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무심한 세월을 탓할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때로는 밍밍하고 심심하게 흐르는 시간도 그런대로 견딜 만합니다. 간밤에도 너울처럼 엷은 달무리를 쓴 달이 늦도록 부드러운 달빛을 뿌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