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興 봄 흥취 - 무원형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5-01    조회 : 5621
  

          春興                                 봄 흥취

           武元衡(唐)                                            무원형(당)

          楊柳陰陰細雨晴                                 수양버들 푸른 그림자 보슬비는 개어서

          殘花落盡見流鶯                                 남은 꽃 마저 지자 뵈느니 흐르는 꾀꼬리

          春風一夜吹鄕夢                                 봄바람 하룻밤에 고향 꿈을 불어 보내

          夢逐春風到洛城                                 그 꿈이 바람 따라 서울에 닿느니!

                        

  인사동 거리에 잊을 만하면 한번씩 들르는 가게가 한 군데 있습니다. 90년도 더 된 늙은 붓가게입니다. 붓가게라고는 하나 붓 하나만으로는 장사가 안 되어 먹과 벼루와 종이를 더한 문방사우에 필통이니, 연적이니, 갖가지 印材니 하여 고만고만한 물건을 두 평 남짓 좁은 공간에 빼곡이 쟁여두고 파는 老鋪입니다. 개중에는 제법 세월의 더께가 앉은 놈들도 더러 섞여 있어 가게의 묵은 나이가 아주 무색하지는 않습니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 가게를 비우기가 일쑤인 주인―키 크고 싱거운 아우님이 금세 웃음이 굴러떨어질 듯한 눈길로 농을 던지고, 구석진 책상에선 돋보기 안경 너머로 돌가루를 불어가며 篆刻에 골몰하던 일가붙이 형님이 덤덤하게 눈인사를 건네는 곳입니다.

  두어 해 전 上京한 길에 잠시 짬이 나 다리쉼도 할 겸 이 묵은 가게에 발길을 들여놓은 적이 있습니다. 두 주인과 별로 긴할 것도 없는 얘기를 주고받다가 우연히 눈길이 한 곳에 머물렀습니다. 옥 비스름한 짙은 쑥빛 돌을 다듬어 만든 조막만한 墨壺(?) 하나가 그 자리에 얌전히 놓여 있었습니다. 어깨에는 늘씬하게 휘어진 자루 끝에 여의주를 문 용머리를 자잘하게 새긴 먹숟가락까지 걸쳐져 있었습니다.
  

  손 안에 쥐고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다른 무늬는 아무 것도 없고 오로지 사방을 돌아가며 가득 새긴 글씨만이 가지런했습니다. 칼로 새긴 글씨가 우리네 펜글씨보다 획이 분명하고 칼칼하여 이른바 ‘칼맛’이 여간 아니었습니다. 글씨는 한 줄에 석 자씩, 면마다 다섯 줄로 새겼는데, 마지막 줄은 ‘世倬’이라는 이름과 그 아래 사방 5mm 쯤 되는 작은 공간 안에 깨알만한 篆書로 ‘十石居士’라고 돋을새김한 落款을 넣어 마무리했습니다. 밑바닥을 뒤집어 보았더니 거기에도 한가운데 네모진 도장 모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방 1.5cm 크기 안에 도드라지게 새긴 것은 ‘煙雲供養’ 네 글자였습니다. 이 또한 전서체 글씨였습니다.

  글의 내용은 絶句 두 수였습니다. 앞의 시는 “石路泉流兩寺分/尋常鐘磬隔山聞/山僧半在中峰住/共占淸猿與白雲”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옮기자면 “돌길 흐르는 샘물 두 절을 나누어서/언제나 종소리 풍경소리 건너편 산에서 들려오나/스님네 반 넘어 中峰에서 살기에/흰 구름 원숭이 울음 함께 누리지” 정도 되지 않을까요? 뒤의 시는 바로 위에 소개한 그대로였습니다.
  

  새김질도 맘에 들고, 무엇보다 두 수의 시 내용이 고루 울림이 좋아 값을 물었습니다. 부르는 금이 생각보다 헐했습니다. 그만하면 군말 없이 주머니에 넣고 나와도 좋으련만 흥정은 깎는 맛이라고, 더 내라거니 그리는 못하겠다거니 실없는 장난 같은 실랑이 끝에 주섬주섬 조래기에 챙겨 넣고 가게를 나섰습니다.

  책꽂이 한켠에 놓인 이 작은 물건을 이따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뒤적이며 적힌 시를 읊조릴 뿐, 정작 새긴 이가 어떤 사람인지, 글의 제목은 무엇무엇이며 지은이는 또 누구누구인지 알려고도 않은 채, 아니 실은 궁금은 하면서도 게으른 성정 탓에 확인을 미루며 그렁저렁 두어 해가 흘렀습니다. 그 어지간한 게으름을 겨우 떨치고 인명사전을 들추고 자료를 뒤적여 대강의 내력을 살펴본 게 지난 초봄, 버들잎 움트던 무렵이었습니다.

  두 수의 시는 모두 唐詩였습니다. 하나는 이미 적어 올린 바와 같고, 다른 하나는 權德輿의 <贈天竺靈隱二寺主/천축․영은 두 절의 寺主에게>였습니다. 자료에 따라서는 제목을 <戱贈天竺靈隱二寺寺主/장난삼아 천축․영은 두 절의 사주에게 주다>로 조금 달리 적고 있는 데도 보였습니다. 내용 가운데도 차이가 있어서 ‘淸猿/맑은 원숭이 울음’을 ‘靑巒/푸른 뫼’로 적은 기록이 셋 가운데 하나는 될 듯했습니다.

  글씨를 새긴 사람 ‘世倬’은 중국 淸代의 서화가 李世倬(1687-1770)이었습니다. ‘十石居士’는 그의 별호 가운데 하나였구요. 그는 指頭畵로 유명한 高其佩(? -1734)의 외조카로, 외삼촌의 솜씨를 따라 배운 탓에 지두화에 능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산수, 인물, 화조, 과품 따위 각 체의 그림을 잘 그려 ‘畵中十哲’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는 소개도 있었습니다. 짐작컨대 손재주 남다른 그가 篆刻에도 일가를 이루었던 듯, 간장 종지만한 작은 돌 위에 솜씨를 부려본 모양입니다.             

  ‘煙雲供養’은 원래 道家에서 음식물을 멀리하고 氣를 섭취하여 장생불사를 기원하는 뜻으로 쓰던 말입니다. 나중에는 선비들 사이에서 주로 산수화를 감상함으로써 성정을 도야하고 마음에 흥취를 간직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秋史 선생이 燕京에 갔을 때 사귄 朱鶴年(1760-1834)에게 써서 보낸 <涵秋閣 行書對聯>에도 이 글귀가 보입니다. 선생은 이 작품에 “古木寒雅客到時/詩情借與畵情移/煙雲供養知無盡/笏外秋光滿硯池”라고 자작시 한 수를 挾書로 적어 넣으며 叱正을 청하고 있습니다. 뜻은 대충 “고목 위에 겨울 까마귀, 손님이 오시려나?/詩情은 어느덧 畵情으로 옮겨가네/알겠느니, 연운공양 끝이 없음을/ 笏 밖의 가을빛 硯池에 가득하리” 정도 되지 싶습니다.
  

  사연을 알고 나니 물건이 한결 좋아 보였습니다. 갑자기 격조가 더 높아진 듯, 아취가 곱절로 늘어난 듯 종전과 달리 보였습니다. 손 안에 들고 살피는 일이 조금 더 잦아졌습니다. 무슨 횡재라고 한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일없이 콧노래가 흥얼거려지고 비슬비슬 웃음이 비어져 나왔습니다. 이녁 눈이 아주 영 허무치는 않구만, 하고 자신에게 중얼거리는 저 자신을 바라보며 苦笑를 금치 못하기도 했습니다.   

  헌데 이런 횡재 아닌 횡재도 더 이상은 어려울 모양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참석해야 할 회의가 있어 서울엘 다녀왔습니다. 그 날 약속 때문에 인사동을 지나다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습니다. 그 늙은 점포, 붙박이로만 여겼던 묵은 가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던 까닭입니다. 대신 그 자리에서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는지 커다란 통유리 안팎을 드나들며 허리에 연장을 찬 목수 몇 사람이 인테리어 공사에 한창이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변화가 마치 너무 오랫동안 걸음을 하지 않은 제 탓인가 싶어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인사동이 전만 같지 못함은 내남없이 누구나 보아서 알고 들어서 눈치채고 있는 일입니다. 인사동의 인사동다움을 지키던 가게와 사람들은 외지고 한적한 뒷골목으로 물러앉아 긴긴 해를 꾸벅꾸벅 졸음과 싸우며 보내기 예사입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인파와 빌딩과 가짜와 허접한 얼치기입니다. 이제 인사동은 오로지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말이나 해묵은 글 속에만 살아있을 따름입니다. 

 

  넓도 좁도 않은 거리 양 가로는 고서점, 골동가게, 표구점, 꽃가게 그리고 대폿집 등속이 더러는 맞붙어서 더러는 건너보며 자리잡고 있다. … 이렇다 하늘을 가릴 높은 빌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층 아니면 이층 그저 그만그만한 집들이 알맞게 들어선 거리의 왼편 아니면 바른편 길을 남으로 향해 어슬렁이다가 골동가게 앞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잠시 눈을 판다. 신라 토기, 아무렇게나 생긴 그 수더분한 꼴을 나는 좋아한다. 때로 가게 안에까지 들어가 퀴퀴하고 잡연한 옛것 속에 서서 두리번대다가 나올 때도 있으나 그것은 예외에 속한다. 고서점 앞에서는 더미로 쌓인 책들에서 그 속에 담겼을 갖가지 사람들의 갖은 짓거리들이 그저 덧없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표구가게를 지나칠 때는 바지런한 풀손질이며 종이나 비단을 서두하는 품들이 정갈하게 생각된다. 오랜 세월의 때로 묵직해보이는 서화라도 놓였을라치면 먼발치에서 쳐다보는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라도 꼭 수장해보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히는 일은 별로 없다. …

무슨 인생의 심오를 오뇌하는 것에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니, 내 허전함이란 관훈동 치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으로도 족히 달래지는 시시한 것이다. 주머니에 돈푼이나 지녀 눈에 띄는 고물 한 점 아니면 헌 책 한 권과 바꾸어 돌아오는 날이면 울울하던 마음의 구름은 개고 휘파람이나 불며 붓방아를 찧을 양으로 거들거들 돌아올 마음이 된다.   

                                                             예용해, <관훈동>『이바구저바구』에서

  이렇게 목적없이 거들거릴 수 있던 예전의 인사동은 자우룩한 안개 너머로 가뭇없이 스러진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인사동의 분위기도 시름시름 봄 감기 앓는 노인네처럼 시나브로 사위고 있는 것이 요즘의 실정입니다. 하니 묵은 가게 하나 사라진들 무슨 대수이겠습니까만, 그래도 하필 수양버들 푸른 그늘 울울히 짙어지는 봄날 먼 길 떠나보내는 심사가 종내 편치는 않은 걸 어쩌겠습니까. 하찮은 물건 얘기로 시작해 시대에 뒤진 푸념으로 끝을 맺는 이 글이 정녕 옛것에 대한 찬사인지, 아니면 스러지는 옛것에 대한 輓歌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