荏子島 임자도 - 조희룡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9-17    조회 : 5634
  

        荏子島                            임자도

             趙熙龍                                           조희룡

          蕎麥花開夕照明                         메밀꽃 피어나서 저녁노을 환한데

          斷橋衰柳獨蟬鳴                         끊긴 다리 시든 버들 외로운 매미소리

          草人相對堠人立                         허수아비 나무 장승 마주 서서는

          似護平田萬斛情                         만석지기 너른 들판 지키자는 마음이리 



꼬박 사흘을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온통 파아란 얼굴을 내밀고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져 내립니다. 계곡을 휘도는 세찬 물소리만 분수처럼 허공으로 흩어질 뿐, 비 그친 9월의 산사는 조신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줄기까지 흠뻑 젖은 느티나무, 감나무, 잣나무, 전나무, 소나무, 모과나무들은 제 몸을 말리느라 미동도 않습니다. 너른 파초 잎에 올라앉은 여치 한 마리도 눅눅해진 날개를 말리려는지 햇살을 담뿍 받고 있을 뿐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석탑의 지붕돌, 돌담장의 기와 이랑을 덮은 이끼들은 빗물을 한껏 머금고 파랗게 피어났습니다. 마당에 비치는 햇빛에 반사되어 처마 깊숙한 안쪽까지 단청빛이 곱게 살아났습니다. 지붕 높이로 크게 번진 파초잎들의 너울거림은 오히려 정적의 깊이를 더할 따름입니다. 고요하지만 분명 정지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이 고즈넉함 속에서 생명 없는 것들조차 살아남을 느낍니다. 문득 9월의 맑은 햇빛은 어쩌면 들판에 선 허수아비, 마당가에 뿌리박힌 돌 하나까지도 살아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