葛驛雜詠 비오는 여름 아침 - 김창흡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8-01    조회 : 5534
  

      葛驛雜詠                     비오는 여름 아침

          金昌翕                                    김창흡

          風中雨脚打窓深                    바람 안은 빗발이 창문 깊이 들이쳐

          臥聽詹鈴尙擁衾                    상기도 이불 껴안고 처마 끝 방울소리 누워서 듣네

          認得群鷄下塒早                    닭들은 일찌감치 횃대에서 내려왔겠고

          滿階蝸蚓産蒸陰                    섬돌 가득 달팽이 지렁이 눅진한 여름 기운 피워올리리

          (第一二八首)



장마가 끝났다는데도 꿉꿉하고 눅눅한 공기가 가시지를 않고 있습니다. 더위도 더위지만 장마 끝의 이 눅진하고 끈적한 기운에 자칫하면 기분이 저상되기 일쑤입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따끔따금 강렬하긴 해도 물기 하나 섞이지 않은 몽골의 여름 공기를 한 달 가까이 숨쉬다 돌아온 몸이 유난스레 여름을 탑니다. 달리 뾰족한 수도 없어 아침을 여는 매미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까지 이따금씩 이불 껴안고 뒤척이는 ‘재미’로 견딥니다.

산중에 있다 보니 벌레들과 함께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자다 지네에 물리기도 하고, 벌에 쏘이고 모기에 피를 빨리기는 예사이며, 커다란 두꺼비에게 실마루 밑을 양보하기도 해야 하고 뒤란 축대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혀를 낼름대는 꽃뱀과 눈을 맞추기도 해야 합니다. 저들도 제 삶이 있으니 제 몫을 내 줄 도리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상처럼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이 벌레들의 죽음입니다. 굳이 무슨 사고가 아니더라도 수명이 짧은 벌레들이 자연사하는 모습은 집 안팎에서 흔히 눈에 띕니다. 개미, 벌, 나방 따위 벌레들은 모두 혼자 죽어 갑니다. 꽤 긴 시간 동안 차츰차츰 다리와 날개의 움직임이 무뎌지다가 마침내 미동조차 사라집니다. 안간힘을 다해 제 몸을 움직여 보려는 노력이 처연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저는 가벼운 한숨을 조금씩 나누어 내쉴 수 있을 뿐 거기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특히 지렁이의 임종은 차마 보아내기 민망합니다. 어쩐 일로 제 살기 좋은 땅 속을 두고 지상으로 나온 지렁이는 얼마 오래지 않은 시간 내에 축축한 몸을 흙과 모래로 뒤발을 한 채 한없이 온 몸을 꿈틀대고 뒤척이다 고스란히 사그라들고 맙니다. 다음날쯤 보면 햇볕에 껍질처럼 바싹 말라버렸거나, 겨자씨보다 작은 붉은 개미들이 가득 달라붙어 흔적도 없이 녹여 없앴기 일쑤입니다. 어두운 땅 밑이 제 집인 지렁이도 죽음의 순간만큼은 저 환한 햇빛 아래서 맞이하고 싶은 걸까요?

겨우 한 달을 떠나 있던 사이, 절에서는 노스님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당신 사시는 집 담장 안팎에 해마다 꽃밭을 가꾸던 스님이었습니다. “뭐하러 꽃은 심으세요, 힘들게?” 하면 “재밌잖아.”하시던 분입니다. 가을이면 나무에 오르지 못하는 걸 못내 안타까워하며 긴 장대로 딴 땡감을 깎아 말려서 곶감을 만드시던 노장님이었습니다. 스님 사시던 집 담장 안팎에 칸나, 다알리아, 백합, 봉숭아, 금잔화 따위가 주인 떠난 줄도 모르고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올 가을에는 누가 곶감을 깎을지, 늦은 가을, 꽃들이 진 저들을 누가 뽑아 꽃밭을 정리할지, 그리고 내년에는 또 누가 담장가에 봉선화랑 채송화를 심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