早 起 일찍 일어나 - 이상은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4-16    조회 : 6291
  

        早 起                            일찍 일어나

         李商隱(唐)                                         이상은(당)

            風露澹淸晨                                      바람이 이슬 흔드는 맑은 새벽에

            簾間獨起人                                      발 너머 홀로 일어나는 사람이여

            鶯花啼友笑                                      꾀꼬리 지저귀고 꽃은 웃는데

            畢竟是誰春                                      필경 이 봄은 누구의 봄이런가?



벚꽃이 진 자리에 철쭉, 영산홍, 황매화, 만첩매, 자목련, 명자꽃, 산복숭아, 돌배나무, 조팝나무, 산벚꽃…… 따위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특히 산벚꽃에 정이 갑니다. 연초록 새순이 번져가는 봄 산에 다문다문 박혀서 한 템포 늦게, 그러나 너무 늦지는 않게 피어나는 자태가 반갑습니다. 애써 자신을 감추려 않고, 굳이 자신을 드러내려 않는 그 수수하고 담박함이 마음에 듭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엷은 꽃구름 같은, 흰빛도 분홍빛도 아닌 빛깔이 은은하고 연연하여 편안합니다. 그리움에 빛깔이 있다면 아마도 산벚꽃의 빛깔이 그에 가깝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일찍이 濂溪先生은 연꽃을 두고 “멀리서 바라보기 알맞고 너무 가까이 두기에는 적당치 않다(可遠觀而不可褻翫)”고 했습니다만, 산벚꽃이야말로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우리에게 허락하는 여백이 고맙습니다. 그 거리가 좋습니다. 벚꽃이 봄이 선사하는 화사한 축복이듯 산벚꽃도 자연이 내린 조촐한 선물입니다. 

밤새 소곤소곤 내리던 봄비가 창문이 훤해진 지금도 여전히 자분대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리도 순하고 곱게 내리는지, 잠든 아가의 숨소리 같습니다. 봄비 속에 한참 동안 부산을 떨던 새소리도 멀어진 이 시각엔 낙숫물 소리만이 도란도란 자꾸 말을 걸어 오고 있습니다. 꽃은 웃고, 새는 노래하고, 봄비는 나 좀 보라, 나 좀 보라 사근사근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새벽에 홀로 일어나 필경 이 봄은 누구의 봄이냐고 묻는 건 너무 야속한 일인가요, 너무 잔인한 물음인가요? 봄이 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