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仙花 수선화 - 김정희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1-17    조회 : 5788
  

       水仙花                                수선화

              金正喜                                       김정희

        一點冬心朶朶圓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品於幽澹冷雋邊                                 그윽하고 담담하고 시리도록 빼어났네

        梅高猶未離庭砌                                 매화가 고상하나 뜰을 넘지 못하는데 

        淸水眞看解脫仙                                 맑은 물에 참으로 해탈한 신선일세



제주엘 다녀왔습니다. 이태 전인가, 제주 돌담을 보겠다고 몇몇 분과 함께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돌담 아래 끝물의 수선화가 지천인 모습을 보며 누구랄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수선화를 ‘제대로’ 보러 다시 와야 한다고들 이야기를 주고받았더랬습니다. 그래서 꾸민 제주행이었습니다. 이름하여 수선화 기행.

수선화와 처음 마주친 것은 일출봉 앞에 떠있는 작은 섬, 牛島에서였습니다. 구불구불 蛇行하는 야트막한 돌담을 따라 고샅길을 더듬던 승합차가 멈추어선 자리, 예의 그 무릎도 채 차지 않는 검은 현무암 돌담 아래 갓 봉오리를 내밀기 시작하는 수선화가 드문드문 포기지어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대면은 두모악의 김영갑 갤러리에서였습니다. 갤러리는 문을 닫은 학교 교정의 가장 모범적인 리노베이션 사례로 꼽아도 좋을 듯했습니다. 사진은 한 장 한 장이 詩였습니다, 제주의 자연과 풍광을 읊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 시를 쓰듯 셔터를 누르던 작가가 떠나간 자리, 틀림없이 그의 손길이 닿았음직한 돌담 가장자리 볕드는 곳마다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수선화가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하늘도 바다도 검은 어둠으로 출렁이기 시작하는 저녁 어스름, 제주의 바람을 그리는 화가 강요배 선생의 화실에서 세 번째로 수선화를 만났습니다. 뜰 한 켠이 그대로 수선화밭이었습니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하얗게 켜든 꽃등불 무더기였습니다.

  수선화는 과연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 江浙 이남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은 마을마다 동네마다 한 치, 한 자쯤의 땅에도 수선화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花品은 대단히 커서 한 줄기에 많게는 열 몇 송이에 이르고, 예닐곱이나  대여섯 송이가 안 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꽃은 정월 그믐 이월 초에 피어서 삼월이 되면 산과 들, 밭두둑이 흰구름이 질펀하게 깔린 듯, 白雪이 드넓게 쌓인 듯해지는데, 제가 귀양살이 하는 집의 동쪽이나 서쪽이 모두 그러합니다. 움막 속에서 초췌해가는 이 몸을 돌아보건대 어찌 언급할 처지이겠습니까만, 눈을 감으면 그만이거니와 눈을 뜨면 눈에 가득 밀려드니 어떻게 해야 눈을 차단하여 보이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고장 사람들은 이것이 귀한 줄을 몰라서 소와 말에게 먹이고 발로 밟아버리기도 합니다. 또 보리밭에 많이 나는 까닭에 마을의 장정이나 아이들이 호미로 캐어버리고는 하는데, 캐내도 다시 나곤 하기 때문에 마치 원수 보듯 합니다. 사물이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이와 같습니다. 또 ‘千葉’이라는 종류가 있습니다. 처음 포기가 벌 때는 마치 국화의 靑龍鬚와 같아서 서울에서 보던 천엽과는 크게 다르니 하나의 奇品입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삼가 큰 뿌리를 골라서 보내드리려고 합니다만, 그때 인편이 늦어지지나 않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주 유배 시절 추사 선생은 평생의 지기였던 彛齋 權敦仁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제주의 수선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뭍에서는 쉽게 볼 수도 없는 수선화를 제주 사람들이 푸대접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편지에서만이 아니라 시를 지어서까지 섭섭한 심사를 토로하고 있습니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 한결같이 웃는 얼굴                        碧海靑天一解顔

신선의 맑은 풍모 마침내 아끼지 않았어라                      仙緣到底未終慳

호미 끝에 버려진 심상한 이 물건을                               鋤頭棄擲尋常物

밝은 창 정갈한 책상 그 사이에 공양하네                        供養窓明几淨間

오늘 아침 수선화가 조롱조롱 매단 꽃을 모두 피워올렸습니다. 강 선생께서 나눠주신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로 크고 작은 화분 두 개에 옮겨심어 책상과 탁자 위에 올려놓았더니, 한 송이 두 송이 차례로 꽃을 피우다가 마침내 만개하였습니다. 제주사람들은 수선화를 金盞玉臺라고 한답니다. 노란 화심, 비취빛 잎과 대궁의 품새가 형용에 가깝습니다. 雅客이라는 별칭도 수선화는 지니고 있습니다. 싱싱하고 끼끗한 자태에 맑은 향기까지 갖춘 이 귀한 손님으로 하여 겨울 한 동안을 조촐하게 보낼 수 있겠습니다.  

[cecile0079] 08-01-23
아름다운 詩와 좋은 글, 감상하며, 머물다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