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坐밤에 앉아 - 장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11-16    조회 : 5583
  

         夜 坐                                 밤에 앉아

          張耒(宋)                                      장뢰(송)

          庭戶無人秋月明                                   사람 없는 뜨락에 홀로 밝은 가을달

          夜霜欲落氣先淸                                   밤서리가 내리려나 공기 먼저 맑아지네

          梧桐眞不甘衰謝                                   오동나무 참으로 시들기가 싫은 게지

          數葉迎風尙有聲                                   바람 맞은 몇 잎은 여전히 수런수런



요즘 날씨는 마냥 늑장을 부리다 기적이 울린 뒤에야 허둥대며 짐보따리 챙겨들고 마지막 열차에 뛰어오르는 어줍잖은 승객 같습니다. 여름인지 가을인지 헷갈리게 하더니 뒤늦게야 정신이 들었는지 서둘러 길 떠날 채비를 합니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구름도 흘러가고 별들도 반짝이고……. 진작에 차분히 제 길을 갈 일이지 이게 웬 소란이람.

차분히 등을 돌리든 부산하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든 가을이 떠나감은 정한 이치이니 내 할 일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라 댓돌 아래서 누렇게 시들어가는 실창포 무더기를 베어냈습니다. 담장가에서 마른 잎이 늘어가는 옥잠화 포기들, 딱딱하게 굳어버린 부용꽃 줄기들도 베어내고, 어지러운 바람에 너울대던 잎들이 마구 꺾여버린 파초들도 둥치만을 남겨 보온 덮개와 비닐로 감싸주었습니다. 마당이 한결 시원하게 넓어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휑하니 허전해 보이기도 합니다.

밤이 들자 뒷숲을 이따금 바람이 한 차례씩 훑고 지나갑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 남지 않은 잎을 매단 벽오동나무가 덩달아 수런수런 몸을 뒤챕니다. 바람소리에, 수런거림에 허리께가 허전한 듯도 합니다.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고는 무심히 이 마른 바람의 계절을 넘기기가 쉽지 않을 듯도 싶습니다.

늦도록 지난해 가을 세상을 떠난 정운영 선생의 칼럼집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의지하지 않고는 허리 곧추세워 반듯이 앉지 못하는 자신에 혀를 끌끌 차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그것이 지금의 제 모습이니 어쩌겠습니까. 곰은 먹이를 잔뜩 먹고 높은 나무로 올라가 제 몸을 지상에 여러 차례 떨어뜨려 봄으로써 겨울잠을 준비한다던가요? 부디 여러분의 늦가을이 겨울을 준비하는 요긴한 때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