曲池荷 연꽃 - 노조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9-05    조회 : 5385
  

      曲池荷                                연 꽃

      盧照隣(唐)                                 노조린(당)

          浮香繞曲岸                                굽이진 언덕 에워싸고 향기는 떠도는데

          圓影覆華池                                둥근 연잎 그림자 못물 위에 가득해라

          常恐秋風早                                이른 가을바람에 꺾이고 떨어져도

          飄零君不知                                그대는 모르실까 차마 두렵네



사람의 심성 안에는 본디 좀 삐딱해서 뭐랄까, 놀부 심보 같은 게 얼마간은 들어있는가 봅니다. 무안이다, 덕진공원이다 연꽃으로 유명해진지도 벌써 오래건만 언젠가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해마다 꽃철이 되어 사람들 입초시에 오르내리고 매스컴이 그닥 싫지 않은 호들갑을 떨 때는 정작 시큰둥하여 여직 발길 한번 못하고, 아니 안하고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연찮게도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두 군데나 연밭을 연달아 구경했습니다. 

엿새 전, 볼 일로 경주에 들렀다가 안압지를 지나다 보니 전에 보지 못하던 연밭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도 시 당국에서 논밭을 매입하여 근자에 조성한 것인 듯했습니다. 길가에 차를 잠시 세워둔 선남선녀들은 한 손을 길게 뻗쳐 이른바 ‘디카폰’을 누르기에 여념이 없었고, 늦더위를 피해 나오셨는지 손주 손을 잡고 산보 삼아 연밭 사잇길을 느긋이 걷고 있는 할머니,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가장도 눈에 띄었습니다. ‘연꽃이 이렇게 늦게 피던가?’ 얼핏 이런 생각을 하면서 덩달아 찻길 가장자리에 차를 세워두고 저 역시 연밭 안으로 발길을 들여놓았습니다. 기운 저녁 햇살을 받아 고운 빛깔이 한결 투명해진 연꽃들은 한창 때를 넘기고 있는 듯,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 적잖았습니다. ‘흐음, 경주시에서 그나마 신통한 생각을 했구만.’하는 시건방진 생각을 하며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어제는 몇몇 분과 함께 논산 가까이 절을 짓고 사는 스님을 찾았다가 부여까지 발길이 닿았습니다. 궁남지도 옛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몇 년 전 찾았을 때는 가으로 버드나무 늘어선 못 하나 달랑 있는 모습이 우리 역사 속의 백제를 보는 것 같이 허허롭더니, 이제는 그 주위로 둥글게 수만 평 연밭을 만들어 조금은 허전한 인상을 눅여주고 있었습니다. 연꽃은 끝물이었습니다. 수련, 노랑어리연꽃, 가시연꽃, 황금련, 백련 하여 갖은 연꽃들을 종류별로 심어둔 연밭에서는 새로이 꽃대를 내미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파란 연밥, 이미 蓮實을 떨구어버리고 색이 바래가는 연줄기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듬성듬성한 꽃들 사이로 파란 연밥이 무수히 솟아 있는 모습도, 가벼운 바람에 일렁대는 커다란 연잎들도 장관으로 피어 있는 연꽃을 보지 못한 제 눈에는 여간한 구경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몇 해 전에는 양주의 봉선사엘 갔다가 절 앞 논 여러 마지기를 연밭으로 만든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패션만 유행하는 게 아닌가보지요? 꽃밭 만드는 게 유행이라면 굳이 탓할 일은 아닐 듯합니다. 탓이라니요, 탓이라면 오히려 그리 멀리 있지 않은 연꽃들이 이른 가을바람에 모두 꺾이고 떨어지도록 아무런 아랑곳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저처럼 게으르고 무뎌서 뒷북이나 치는 심성을 핀잔해야지 싶습니다. 그저 수굿이, 남들 다 할 때 못 이기는 체하고 저도 얼결에 따라나서는 것 또한 아름다운 미덕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