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酒擧白韻술잔에 봄을 담아 - 이행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3-16    조회 : 5607
  


     溫酒擧白韻                    술잔에 봄을 담아

            李荇                                       이행

          山間殘雪尙成堆                           산골에는 아직도 잔설 쌓여 그득하니

          何事春風晩未回                           무슨 일로 봄바람은 이리도 더디더냐

          直把人功欺造化                           짐짓 사람의 힘으로 조물주를 속여 볼까

          一團和氣兩三杯                           한 아름 봄기운이 술잔에는 담겼느니



볼 일이 있어 낮에 잠깐 시내에 나갔더니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정말 장날이었습니다. 큰 길 가의 보도는 물론 샛골목 사이사이로도 장이 서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어슬렁거리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장구경을 했습니다.

안 파는 물건이 없어 보였습니다. 온갖 공산품이 알록달록 많이도 쌓여 있었지만 때가 때인지라 눈길은 절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남새, 나물, 꽃, 나무들로 향했습니다. 남새로야 이미 절기의 변화를 읽을 수 없게 된 지 오래입니다만, 아직 나물들에는 그런대로 계절의 내음이 담겨 있지 않던가요? 후미진 골목에서, 위험한 차도 옆에서 좌판도 없이 나물을 파는 할매들의 보시기, 양재기에는 달래, 냉이, 쑥은 기본이고 돌나물, 돌미나리, 꽃다지에 원추리까지 봄나물들이 소복소복 복스럽게도 담겨 있었습니다. 살짝 데쳐 사근사근하게 무친 원추리를 생각하니 어금니 안쪽이 뻐근해지며 침이 괴어올랐습니다. 돌미나리 향기가 코에 스치는 듯했습니다.

봄꽃을 파는 꽃전에 수선화가 빠질 리 없습니다. 매발톱꽃, 금낭화도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빛깔이 너무 요란스러워 그리 달갑지 않던 서양 꽃들도 정다워 보였습니다. 시클라멘, 히야신스, 제라늄, 부겐베리아, 스위트 라벤다, 사랑초, 허브, 게발선인장, 산세비에리아……. 나무들은 대부분 잎이 나지 않아 얼른 무슨 나무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린 묘목도 있고, 뿌리를 거적으로 감싼 꽤 큰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치자나무가 눈에 띄길래 살까말까 망설이다 그냥 돌아섰습니다. 아직 좀 이른 것 같기도 하고, 나무가 아주 싱싱해 보이지도 않아서.

장을 한 바퀴 휘 둘러본 뒤 금낭화 두 뿌리와 딸기 한 봉지를 사가지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나물 파는 할매들, 꽃 파는 아낙네, 나무장수 아저씨, 트럭을 대놓고 딸기를 팔던 총각이 봄을 파는 사람들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