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雷 봄우레 - 장유병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3-01    조회 : 5775
  
 

        新雷                             봄 우레

       張維屛(淸)                             장유병(청)

        造物無言却有情                        조물주 말이 없되 뜻만은 분명하여

        每於寒盡覺春生                        언제나 추위 다하면 봄은 이내 오느니

        千紅萬紫安排著                        울긋불긋 온갖 꽃 마련하여 두고서

        只待新雷第一聲                        봄 우레 첫 소리만을 기다리고 있으시리



지난 겨울 추위가 매섭긴 매서웠던가 봅니다. 법당 뒤 제법 너른 대숲에 누렇게 잎이 마른 대나무가 적지 않습니다. 대나무는 60년쯤에 한번 꽃을 피우면 생명을 다한다고 합니다. 여러 해 전 그렇게 꽃을 피우곤 일시에 시들어 말라버린 대숲을 본 적은 있습니다만, 추위 때문에 푸른빛을 잃고 스러지는 대나무는 처음 봅니다.

작년 봄 옮겨 심은 매화나무 네 그루 가운데 한 그루가 아무래도 걱정입니다. 다른 녀석들은 듬성듬성 꽃망울을 맺어 힘드나마 겨울을 견딘 듯한데, 이 녀석은 소식이 감감합니다. 천리향도 추위의 피해를 적잖이 입었습니다. 올 봄에는 알맞은 자리를 잡아 주려고 지난 봄 기단 밑에 임시로 옮겨 두었더니 잎과 꽃눈이 제법 많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치자나무 한 그루도 놓치고 말 것 같습니다. 선사 받은 화분에 있던 것을 댓돌 곁에 옮겨 심었더니 여름 지나고 가을 깊도록 꽃도 여러 송이 피우고 잔가지도 이리저리 벋으며 잘 자라주어 무척 대견스럽고 고마웠는데 지금은 마른 잎만을 매단 채 기척이 없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난 산길을 30분쯤 오르면 옛 암자터 입구에 부도만 다섯 점 고즈넉이 남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한가할 때, 걷고 싶을 때, 갑갑할 때, 쓸쓸할 때 한번씩 그곳까지 천천히 걷곤 합니다. 먼지처럼 가는 눈발을 맞으며 길을 올랐습니다. 오늘은 다섯 점 부도가 늦은 봄눈을 소복이 이고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치어다 본 하늘은 무수히 뻗친 잔가지 끝에서 김이 서린 듯 부옇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저 하늘 어디쯤에 봄 우레가 숨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