哭思庵 벗을 보내며 - 성혼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2-16    조회 : 5602
  

        哭思庵                             벗을 보내며

            成渾                                          성혼

          世外雲山深復深                                세상 너머 구름산 깊고 또 깊어

          溪邊草屋已難尋                                시냇가 초가집 찾기조차 어려워라

          拜鵑窩上三更月                                그대 집 위 하얗게 뜬 삼경의 저 달

          應照先生一片心                                틀림없이 그대의 맘 비추고 있으리



  재상을 지낸 사암(思庵) 박순(朴淳, 1523-1589)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를 조문하는 만가 (輓歌)가 수백 편이었으나 유독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의 절구(絶句) 한 수가  절창(絶唱)이었다. 그 시 “세상 너머 구름산 깊고 또 깊어/시냇가 초가집 찾기조차 어려워라/그대 집 위 하얗게 뜬 삼경의 저 달/틀림없이 그대의 맘 비추고 있으리”는 무한히 비감하고 아픈 마음을 말로 드러내지 않았으나, 서로 깊이 이해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지을 수 있으랴.  (허균, <성수시화>에서)

  思庵相捐舍 挽歌殆數百篇 獨成牛溪一絶爲絶唱. 其詩 世外雲山深復深 溪邊草屋已難尋 拜鵑  窩上三更月 應照先生一片心 無限感傷之意 不露言表 非相知之深 則焉有是作乎. (許 筠,<惺叟詩話>)

  우계 성혼이 사암 박순을 조문한 시는 이렇다. “세상 너머 구름산 깊고 또 깊어/시냇가 초가집 찾기조차 어려워라/그대 집 위 하얗게 뜬 삼경의 저 달/일찍이 그대의 맘 비추었으리” 가히 훌륭한 만가라고 하겠다. 배견와(拜鵑窩)는 사암이 거처하던 집 이름이다. (신흠, <청창연담>에서)

  成牛溪渾 哭思庵詩曰 世外雲山深復深 溪邊草屋已難深 拜鵑窩上三更月 曾照先生一片心. 可謂善哭思庵矣. 拜鵑窩 卽思庵窩名也.  (申欽, <晴窓軟談>)

 

벗 하나가 먼 길을 떠났습니다. 잠시 쉬고 오마며 비행기에 오른 친구는 남반구의 아득한 타국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 한 줌 재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전, 그 친구를 영결하는 자리가 경기도 포천의 한 절에서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딸의 별사(別詞)는 그렇게 끝났다. 이승과 저승 사이

  사실은 귀가 없는 벽이겠지만,

  남은 자의 목소리를

  슬픔의 힘으로 떠밀어 넣는다. 그 무너질 듯 아픈 저음(低音)에

  우선 운악산이 주저앉아

  괴로운 머리를 털 듯 진눈개비를 뿌린다.

 
  반쪽이가 정말로 반쪽이가 되어

  퀭한 눈에 글썽한 감정을 매달고 있는

  도성사 명부전 앞 풍경은

  화면이 지직거려 그저 옛날 영화 한 편이다.

  그것이 꿈이라면 그 소문들이 농담이라면

  그는 높고 쉰 목소리로 저쯤에서 달려 나와야 하리라.

  솔잎 끝에 달린 물방울 같이

  좋은 기억들이 굵어지며 눈시울을 간질일 때

  생(生)이란 저렇듯 툭 떨어지는 한 방울

  뉘우침 같은 것이다. 제동이 걸리지 않은 추억들이

  멈춰서야 할 자리에서 벽을 치지만

  배웅은 이쯤에서 멈춰야 하는 걸

  알고 있다.

  그저 혼자 걸어가는 등을 바라보며 울 때

  굵어진 송이눈, 이마를 때린다.

  눈물 콧물 말아 먹는 공양은 더욱 달콤하고

  사람 하나가 새나가버린 허기도 잊는다.

  천천히 절 마당을 도는 순간

  어이없던 일들이 다 이해된 듯

  우린 담담해진다. 그대,

  가벼운 안녕처럼 손을 흔들며,

  죽어서 돌아가는 길과 살아서 돌아가는 길의

  안녕을 나눈다.
 
  그러고 보니 납골당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들이

  그대로 이승의 마음들이다. 귀가를 기다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스케줄.

  동승하지 못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함께 여행가자던 약속을 남겨두고

  부웅, 우린 새로운 바퀴자국을 내며

  살아 있는 길로 그만

  돌아온다.
 

어느 분은 이렇게 그 친구를 떠나보냈습니다. 또 한 분은 작별의 말을 이렇게 건넸습니다.
 

  오랫동안 어른의 학교에 글을 올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저를 이렇게 불러내십니다. 부음을 듣고 내내 마음 안에서 떠돌던 말들이 목까지 차오른, 지금이 아니면 전하지 못할 것 같은 말을 편지로 씁니다.

  멀게 느껴지는 선생님은 지우고 선배님, 아니 선배라 부릅니다. 이별식장에서 어떤 분은 선배는 반가움과 길조의 상징인 까치라 부르시더군요. 처음 뵈었을 때부터 ‘나는 다감한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선배는 목련과 흡사한 상이었어요.

  최현주, 박은아, 박종순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좋은 친구가 될 거라던 말씀은 첫 수업때부터 씩씩한 척 하지만 사실은 낯가림이 심한 절 알아보시고 하신 말씀인 거지요. 늘 외로 꼰 듯한 저의 고개를 바로 세우게 된 것도 생각해 보면 선배의 친절 때문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다감한 사람이 아닌 이기적인 제게 그런 선배의 모습은 어느 사이 어른의  학교를 가고 싶어지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난 연말에 당한 사고 때문에 한 달 동안이나 있어야 했던 병상 생활 중에도 선배는 자 꾸 떠오르던 얼굴이었습니다.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죠. 삭막한 일상 중 말랑하고 따뜻한 부분, 그래서 누구든 맥없이 무장해제하고 그 따뜻한 것에 이끌리게 되는 그런 사람요. 다시 보게 되면 더 가까이 다가서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홀연 우리 곁을 떠나버린  선배에게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친절한 선배라곤 못 부르겠어요. ㅠ ㅠ ㅠ

 

  아름다운 별리식(別離式)이었습니다. 선배가 소중히 하셨던 분신들. 가족들. 모두가 선배를 닮아 있었어요. 복받치는 슬픔을 참고 선배를 잘 보내려는, 전체를 보고 의식을 관장하는 교수님, 성은 양과 장남 모습에, 망자를 보낸 슬픔보다는 참석하신 분들을 배려하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명예도 부도 아닌 단지 선배의 향기로 맺어졌던 세상의  인연들이 모여 선배와의 따뜻했던 일화를 소개하던 시간, 그 기억의 모자이크가 이윽고는  한 사람의 지난 삶의 훌륭히 형상화해냈던 자리였습니다.

 

  온화한 대지에 내리던 함박눈은 양윤애 선생님의 말씀처럼 선배의 축복으로 내리는 선물인 양 느껴졌습니다. 보셨는지요. 식장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이 그 눈 내리는 풍경보다 더 진솔한 풍경이었던 것을요. 선배의 향기에 취한 듯 맑은 얼굴들. 천명례라는 한 사람이 이 땅에 와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어떤 화려한 수사의 설명 없이도 모두들 더 잘 알게    된 날이었습니다.

  좋았던 선배.

  당장에 어른의 학교가 쓸쓸하겠지만 늘 우리와 함께 하시리라 여기겠습니다. 서은, 저기  어쩌구 하며 불쑥 말을 건넬 것만 같은 선배의 모습이 내내 눈에 밟히겠지만 그 그리움을  힘으로 삼아 어른의 학교는 더 따뜻해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없던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에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종지 그릇 같은 저도 선배 생각하면서 먼저 손 내밀어 보렵니다.

 

  곧 새 봄이 되겠지요.

  스님 계신 마당에 여느 해처럼 목련이 필 것이구요.

  꽃이 피면 선배를 보듯 어여삐 보겠습니다.

  목련꽃 함께 즐기던 지난해 봄을 기억하면서요.

  명례 선배

  계신 곳에서 내내 행복하시길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보름을 넘긴 새벽달이 막막한 밤하늘을 헤쳐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밤하늘은 왜 저리도 넓고 막막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때 이른, 그래서 안타까운 친구의 돌아올 길 없는 여행에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작별의 말도 미처 챙겨 두지 못한 저는 그저 하늘의 저 달을 친구도 어디쯤에선가 바라다보리라 믿을 따름입니다.